韓民族의 정체성

[요약: 참어머님은 옥중에서 한결같이 “한민족이 선민임을 알게 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우리 민족은 단군신화의 홍익인간 정신부터 심청의 효, 춘향의 절개, 유관순의 충절,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이르기까지 깊은 심정을 면면히 이어온 선민입니다. 이 모든 역사는 참부모님의 탄생의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이제 참어머님은 옥중 고난 가운데서도 효·열·충을 한 몸에 완성하며 거룩한 성(聖)의 역사를 써 가고 계십니다. 선민의식은 특권이 아니라 제물의식이며,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큰 사랑으로 희생할 때 하늘은 도리어 가장 높이 들어 쓰십니다. 한민족선민대서사시는 이 순간에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쓰여지고 있는 살아 있는 서사입니다. 우리가 한민족의 정체성을 되찾아 참부모님을 중심하고 이 대서사시를 완성하는 그날, 흩어졌던 인류는 한 하늘부모님 아래 한 가족이 될 것입니다.]

(참아버님 1969.9.21) 하나님이 복귀역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최종목적이 어디냐? 참된 부모에 있습니다. 참된 부모를 요구하는 것은 참된 가정을 대표하기 위한 것이요, 참된 종족, 참된 민족, 참된 국가, 참된 세계를 대표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거꾸로 보면 세계를 대표해서는 국가가 제물 되어야 하고, 민족이, 특정 종족이, 특정 가정이 제물 되어야 합니다. 결국 부모에 귀결됩니다.

(참아버님 1972.3.24)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사탄편 개인, 가정, 종족, 국가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편 개인은 있지만 그 기준에 올라온 가정 종족 민족 국가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메시아가 오셔서 가정을 세우고, 종족, 국가를 세울 수 있는 터전이 없어서는 일반 사람이 올라갈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메시아를 중심하고 같이 올라갈 수 있는 개인, 가정을 거쳐서 준비해 놓은 것이 이스라엘 선민입니다. 선민은 국가권을 넘어서야지 넘어서지 못하면 큰일 납니다. 그렇지만 이 선을 넘어서려면 자기들끼리는 넘어설 길이 없습니다.

(참어머님 2013.12.06) 우리 민족은 상고시대부터 倍達民族이라 불렀습니다. 배달은 밝은 나라, 환한 나라, 하늘을 숭상하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늘은 노아, 아브라함 등 중심인물을 세워 역사를 해오시면서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해 예수님을 보내신 것처럼, 오래전부터 천손민족이요 홍익인간의 사상을 가진 선민으로 한민족을 택해 준비하셨습니다. 우리는 한민족이 후천개벽시대에 평화왕국 창건의 선봉에 세우기 위해 선민의 혈족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들어가며 ― 어머님이 옥중에서 반복하시는 단 한마디

사랑하는 식구 여러분. 우리는 한민족선민대서사시를 한 장 한 장 함께 넘겨 왔습니다. 신화로 시작해, 심청의 효, 춘향의 절개, 유관순의 충절, 그리고 한글을 거쳐 마침내 참부모님께 이르렀습니다. 오늘은 그  그림을 한 폭의 큰 화폭에 담아, 우리 가슴에 새기는 시간입니다.

먼저 한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참어머님께서 옥중에 계십니다. 면회 오는 식구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보통이라면 법적인 대응을 말씀하시거나, 잘못된 재판을 문제 삼으시거나, 시위를 하라 하실 법합니다. 그런데 어머님의 입에서는

한민족이 선민임을 알게 해야 한다. 한민족선민대서사시를 전 국민에게 교육하라.”

처음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이 급박한 상황에 그 말씀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러나 저는 그 말씀 속에서 어머님의 가장 깊은 염려를 봅니다. 어머님께서는 지금 당신의 고통보다, 이 한민족이 자기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을 더 염려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그 정체성을 모르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길을 잃고도 잃은 줄조차 모릅니다. 어머님의 절규는 이것입니다. ‘이 배달민족은 참부모님을 맞이하여 전 세계를 구원할 숙명을 가진 민족이다. 그것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깨달아야 한다.’

1. 우리는 본래 어떤 민족이었는가 ― 단군신화의 계시

그렇다면 우리는 본래 어떤 민족입니까? 그 뿌리를 찾아 신화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참부모님께서는 한민족을 동이민족, 곧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사랑하여 오천 년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남을 침략한 적 없는 민족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환(桓)자와 한(韓)자는 같은 의미로 쓰였다고 말합니다.’ 의미로는 한없이 크다, 환하게 밝다, 무한하다, 하나, 한처음,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 신화를 그저 옛이야기로만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섭리의 눈으로 읽으면 놀라운 계시가 드러납니다. 환인은 하늘부모님이요, 서자 환웅은 하늘편 아벨의 자리입니다. 天符印 세 개, 부적符는 액을 쫓아내고 축복을 불러들입니다. 그러니 하늘이 주신 3대 축복인 생육하고, 번성하고, 주관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신단수는 신께 참인간이 되길 소망하는 생명나무로 해석합니다. 곰과 호랑이는 약육강식의 동물적 가치에 떨어진 타락인간이며, ‘백일 동안 해를 보지 말라’는 것은 창세기의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성적 순결의 계명이었습니다.

호랑이는 그 금기를 견디지 못해 사람이 되지 못했지만, 곰은 삼칠일의 시련을 이겨내고 마침내 웅녀가 되어 단군왕검을 낳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참사랑과 인내로 참세상을 펼치라는 한민족을 향한 하늘의 첫 계명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순결과 평화와 홍익인간의 심성을 신화 속에 새긴, 세상에 둘도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특이하게도 단군신화는 성경의 창세신화와 같은 말씀을 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2. 생명을 넘어선 모심 ― 심청의 효정(孝情)

그 순결한 혈통 위에 하늘이 길러내신 첫 번째 심정이 ‘효정’입니다. 한민족이 선민으로 부름받은 배경에는 바로 이 효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효를 가장 깊이 담아낸 대표적 이야기가 심청전입니다.

여섯 살 어린 심청이 눈먼 아버지를 위해 추운 겨울에 맨발로 밥을 빌러 나섭니다. 보십시오. 이 소녀에게는 ‘효를 한다’는 의식조차 없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눈먼 아버지였지만, 자신이 핏덩이 일때부터 동냥해서 자신을 길러내신 홀아버지를 지극히 사랑하기에 저절로 움직일 뿐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효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 말에도 한국의 ‘효’를 정확히 번역할 단어가 없습니다. 성경의 히브리어와 헬라어조차 의무와 책임을 강조하는 ‘공경하라, 경외하라, 순종하라’고만 할 뿐, 우리의 효심과는 그 결이 다릅니다.

그러나 심청의 효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 바닷물에 제 생명을 던집니다. 외국인들은 이 대목을 이해하기 어려워 합니다. 어떻게 아비의 눈을 뜨게 하려고 목숨까지 바치는 게 효가 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심청의 효의 서사는 합리적인 효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 소녀의 효심은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지 못하면 자식으로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는 그 효입니다. 그 마음에 하늘이 감동하시어 눈먼 아버지 한 사람만이 아니라 온 세상 맹인의 눈이 한꺼번에 떠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 속에 숨은 하늘의 계시를 보십시오. 에덴에서 해와가 타락하여 천지가 암흑에 빠졌을 때, 천지를 잃으신 하나님은 앞 못 보는 심봉사처럼 앞이 안 보이는 복귀의 길을 헤쳐 나오셨습니다. 그 풀 수 없는 하나님의 한은, 오직 심청처럼 생명을 넘어선 효정을 통해서만 풀린다는 것 ― 이것이 심청전을 통해 하늘이 가르치신 서사입니다.

3. 죽음도 꺾지 못한 일편단심 ― 춘향의 절개(節介)

효가 부모를 향한 종적 사랑이라면, 이제 부부를 향한 변치 않는 횡적 사랑, 곧 ‘열(烈)’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더 깊은 질문 앞에 섭니다. 인류의 타락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참부모님께서 밝혀 주신 대로, 그것은 순결을 잃어버린 음란의 문제였습니다. 타락이 음란이었다면 복귀는 순결이어야 하고, 타락이 욕정이었다면 복귀는 변치 않는 일편단심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늘은 순결과 정절을 생명보다 귀히 여기는 민족을 찾으셔야 했습니다. 흰옷을 즐겨 입어 백의민족이라 불린 우리 민족이 바로 그 그릇이었습니다. 흰색은 더럽혀지지 않은 순결의 색입니다. 그 절개의 심성을 가장 아름답게 피워낸 꽃이 춘향입니다.

열여섯 춘향은 이몽룡과 하늘 앞에 백년가약을 맺습니다. 그러나 변사또의 수청 강요 앞에서 그녀는 형틀에 묶여 매를 맞으면서도 십장가로 응수합니다. ‘한 대 맞고 영영 죽어도 이도령은 못 잊겠소.’ 옥 같은 몸에서 붉은 피가 솟고 피눈물이 흘러도, 춘향의 일편단심은 끝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깨끗한 사랑이 생명보다 귀하다는 것을 그녀는 온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차가운 옥방에서 기약 없이 임을 기다리던 그 모습이, 지금 옥중에 계신 참어머님의 고난과 그대로 겹쳐집니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하늘은 끝내 그 정절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과거시험에 떨어져 거지차림으로 변장하여 돌아온 이도령이었지만, 낭군이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제 꿈에도 그리는 낭군을 보았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이 소녀의 참사랑을 봅니다. ― 이것이 우리 한민족의 러브스토리입니다. 그에 비해 서양인들의 사랑에 대해 아버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서양인들은 만나기만 하면 포옹하고 키스를 아주 쉽게 하지만, 마치 파리 한 마리가 살짝 앉았다가 날아가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사랑 이야기와는 차원이 다른 드라마틱한 러브스토리를 한민족의 가슴속에 간직한 민족입니다.

4. 가장 어두울 때 가장 빛난 충 ― 유관순의 충절(忠節)

효는 부자간에 피는 종적 꽃이요, 열은 부부간에 피는 횡적 꽃이라면 충은 무엇입니까? 종적인 나라사랑에 횡적인 백성사랑이 어우러져 있는 입체적인 사랑입니다. 한자를 보면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 곧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자기가 중심이면 언제든 배신하지만, 나라와 하나님이 중심이면 큰 가치를 위해 생명도 조국을 위해 바칠 수 있습니다. 그 충절의 가장 애국적 표상이 유관순 열사입니다.

만 열여섯, 그 작은 가슴에 어찌 그리 큰 불이 일었을까요. 아우내 장터에서 그녀가 만세를 선창하자 함성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날 어머니 아버지를 포함해 열아홉 분이 그 자리에서 순국했습니다. 숨진 부모 앞에 보통의 소녀라면 통곡하며 혼절했을 그 자리에서, 유관순은 도리어 헌병대를 향해 다시 걸어가 항의했습니다. 결국 주모자로 체포되었지만 법정에서는 ‘나는 너희의 재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상고조차 거부했고, 서대문 옥중에서도 매일 아침저녁 만세를 멈추지 않다가 마침내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하셨습니다.

그 충절은 이 민족이 애국심을 더 극적으로 꾸민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가문에서 아홉 명의 독립유공자가 나온, 온 집안이 함께 걸은 애국충정의 가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충은 그 결이 다릅니다. 세상 나라도 모두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맘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민족의 충은 뭐가 독특하냐, 가장 어두울 때 더 빛났고, 왕이나 귀족이 아닌 모든 백성이 주체였으며, 남의 나라를 쉽게 침략하지 않은 ‘애인(愛人)의 충’이었습니다. 일반적인 강대국들은 약소국을 쉽게 침범하지만, 한민족의 충은 타민족을 지배하려는 배타적인 애국심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애국운동의 역사속에는 참아버님을 중심한 가문의 독립운동의 역사가 아버님의 가문에 문윤국 종조부님을 통해 증거되고 있습니다. 참어머님을 중심하고도 3대 모녀의 애국충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어머님의 자서전 첫 장에는, 1919년 그날 어린 홍순애 대모님을 등에 업고 만세를 부르신 조원모 외할머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홍순애 대모님도 1945년 8월 세 살배기 참어머님을 업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우연이겠습니까? 한민족의 충절은 단지 나라를 지킨 역사가 아니라, 참부모님의 탄생을 준비한 충절의 정성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5. 심정을 담는 그릇 ― 한글

그렇다면 이 깊은 효와 열과 충의 심정을, 우리 민족은 어떻게 가슴에 새기고 후대에 물려줄 수 있었습니까? 바로 한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글은 창제자와 창제일과 창제원리가 모두 기록된, 인류 역사상 유일한 문자입니다. 세종대왕은 신하들의 목숨 건 반대를 무릅쓰고 오직 백성을 향한 애민정신 하나로 이 글자를 친히 만드셨습니다. 군주가 백성의 삶을 위해 새 문자를 창제한 사례는 세계 역사에 세종대왕이 유일합니다. 아무리 세종대왕이 똑똑해도 한 나라의 글자를 어찌 혼자 만드실 수 있단 말입니까? 세종대왕이 46세 때 만드셨지만, 시작은 아마도 내가 왕이 되면 모든 백성이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글을 만들어야겠다는 뜻을 세운 것은 16세 전후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젊었을 때부터 뜻을 세우고 어떻게 글을 지어야 할까 고심고심하는 가운데  세종대왕이 부모의 심정으로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는 것에 하늘이 감동하사 계시적으로 한글을 지어 주셨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한글은 하나님이 창제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전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가장 실용적이고, 문학적이고, 심정적인 완벽에 가까운 언어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글의 진짜 위대함은 그것이 ‘심정의 언어’라는 데 있습니다. 정(情), 한(恨), 사무치다 ― 이 말들은 어떤 외국어로도 옮겨지지 않습니다. 특히 ‘한’은, 억울함을 가슴 깊이 삭이되 분노로 터뜨리지 않고 도리어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감정입니다. 지금 옥중에 계신 참어머님의 심정이 바로 이 한의 심정입니다. 고통과 슬픔에 가득차 있지만, 거기에 갇혀서 저주하지 않고, 사랑하기에 용서하고 해원하는 그 마음을 담아낼 한(恨)의 심정언어는 오직 우리 언어뿐입니다.

그래서 원리강론 마지막 절은, 재림주님을 부모로 모시는 한 가족 세계가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언어가 통일되어야 하며 그 조국어가 바로 한글이 될 것이라 선포했습니다.

6. 육천 년이 담긴 한 분의 탄생 ― 참부모님

자, 이 모든 신화와 효와 열과 충과 한글이 향하는 단 하나의 목적지가 있습니다. 바로 참부모님입니다. 어머님은 한 사람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하늘과 땅, 온 우주 만상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사천 년 하나님의 수고가 담겼다면, 참부모님의 탄생에는 육천 년 천주사적 기다림이 담겨 있습니다.

하늘은 제1 이스라엘을 택해 예수님을 보내셨으나 십자가로 뜻을 다 이루지 못하자, 제2 이스라엘로 기독교를 부르시고, 마침내 완성수를 향해 제3 선민으로 한민족을 일찍부터 택하시고 기르셨습니다. 단군의  건국 서사, 심청의 효의 서사, 춘향의 절개 서사, 유관순의 충절의 서사, 세종의 한글의 서사 ― 이 모든 것이 바로 그 ‘준비’였습니다. 그리고 그 준비된 선민의 기대 위에, 이 동방의 작은 한반도에 인류의 참부모님이 탄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이 있습니다. 모두 16세때 뜻을 세우고 충효열의 삶을 시작합니다. 웁니다. 이팔청춘 때입니다. 2*8=16. 참아버님도 16세때 묘두산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뜻을 세웁니다. 어머님도 그 시절에 아버님과 어린양 혼인잔치로 참부부의 길을 출발합니다. 이팔청춘때 뜻을 세우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하늘은 그 두 분을 역사를 움직여 지키셨습니다. 식민지의 어둠 속에서 태어나게 하시고, 한국전쟁 때는 소련이 안보리에 불참하는 기적으로 유엔 십육 개국을 참전시켜 두 분을 보호하셨기에 우리는 그 전쟁을 하늘의 성전이라 부릅니다. 수인번호 596번 아버님은 흥남감옥에서 내일이면 죽을 운명의 날이 다가옵니다. 어제까지 595번까지 끌려나가 죽었기에 오늘이 그날이었지만 하늘이 B29폭격기를 급하게 보내 흥남감옥에 폭격하여 아버님 살아서 나오시게 하셨습니다. 2008년 헬기 사고에서도 폭발 직전 16명 모두가 극적으로 탈출하도록 함께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늘은 참부모님을 지켜주셨습니다.

지금 참어머님께서 옥중의 큰 고난 가운데 계십니다. 어찌될까요? 심청은 인당수에 빠져 죽었지만 부활하여 해피엔딩이 되었습니다. 춘향은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극적인 이도령의 암행어사 출도로 영광된 가정을 가졌습니다. 유관순열사는 감옥에서 순국하셨지만 민족의 가슴속에 살아 계십니다.

어머님은 앞으로 어찌 될까요? 심청, 춘향, 유관순의 공통점은 하늘의 심정을 찔렀기에 하늘이 보호하사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지금 어머님은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이지만 가장 애천애인애국에 가장 뜨거운 심정의 피눈물을 흘리고 계실 것입니다. 하늘부모님도 매일 어머님의 상황에 가슴이 찢어질 것입니다. 앞으로 어찌될지 하늘은 아실까요? 하늘도 가슴 졸이며 지켜보실 만큼 심각한 상황입니다. 내일 어떻게 풀릴지 하늘도 모르니 그래서 심각합니다.

참아버님께서 인류역사의 마지막 고개는 하늘부모님과 영계가 함께해야 넘어갈 수 있다고 수없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때입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넘기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지극한 정성에 하늘이 감동하사 영계를 총동원해서 극적으로 뒤집어져야 합니다. 어머님을 탄압한 종교인과 정권과 언론과 검찰과 모든 사람들이 어머님께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하늘이 한이 풀립니다. 모두가 통곡해야 합니다. 인류역사 전기간에 사탄편이 사죄한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 때도 사탄은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대 역전의 드라마가 펼쳐질 날이 옵니다. 어머님께서 천주사적 탕감을 통해 전 인류가 회개로 통곡할 역사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천심 철야가 바로 정성의 탑을 쌓아가는 중입니다. 어머님과 우리가 하나되야 합니다.

앞이 안보이는 상황이지만 한민족선민대서사시의 꿈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참아버님은 ‘다 이루었다’ 하셨고, 참어머님은 ‘Holy Mother Han’이라 선포하셨습니다. 독생녀로 태어나심은 하늘과 조상의 공덕이지만, Holy Mother Han은 파란만장한 고난을 다 극복하시고 거룩한 성업을 완성해 가고 계신 거룩함의 이름입니다. 효를 완성하시고, 열을 완성하시고, 충을 완성하시어, 마침내 천주적 차원의 성(聖)으로 승화시키신 분 ― 바로 우리의 참어머님이십니다.

결론 ― 정체성을 되찾아 대서사시를 완성하라

사랑하는 식구님, 이제 우리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어머님은 왜 옥중에서 그토록 ‘한민족선민대서사시를 교육하라’ 하시는가. 이제 그 답이 보이십니까?

어머님께서 가장 두려워하시는 것은, 선민이 책임을 다하지 못해 나라를 잃고 이천 년을 방황했던 유대 민족의 역사가 이 땅에서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한때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릴 만큼 뜨거웠던 이 민족이, 정작 오신 참부모님을 향해 이천 년 전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던 그 말을 그대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하늘부모님의 딸이거든 왜 못 구해주느냐.’ 그것이 어머님의 가장 깊은 아픔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선민이란 축복만 받고 제 잘난 맛에 사는 교만한 민족이 아닙니다. 선민이란 고난을 이겨내고, 남을 위해 희생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민족입니다. 하늘의 선택받았기에 편한 것이 아니라, 선택받았기에 고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민의식은 특권의식이 아니라 제물의식입니다.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 가장 큰 사랑으로 희생할 때, 도리어 가장 높이 올리시는 것이 하늘의 탕감법입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한민족선민대서사시는 아직 완성된 서사가 아닙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쓰여지고 있는 살아 있는 서사입니다. 심청의 효심어린 희생·춘향의 절개를 건 옥방·유관순의 충절의 옥중 희생· 참어머님의 이 모든 서사를 압축한 옥중 고난을 통해 그 마지막 완성의 서사는 성(聖)이 되어야 합니다. 그 성을 지금 옥중에서 온몸으로 완성하고 계신 분이 바로 홀리마더한 참어머님이십니다. 그 마지막 장의 또 다른 주인공은, 어머님과 함께 걷는 바로 우리 축복가정입니다.

이제 아우내 장터의 그 대한독립만세! 처럼, 천일국 만세! 그 뜨거운 충절을 이어받읍시다. 우리의 손에는 만국이 하나 되는 천일국의 깃발이 들려 있고, 우리의 입에는 참부모님을 향한 외침이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처럼 불덩어리 같은 심정으로, 하늘이 들으시도록 옥중의 어머님께 들리도록 천심으로 부르짖읍시다. 우리가 한민족의 정체성을 되찾아, 참부모님을 중심하고 이 대서사시를 완성하는 그날, 흩어졌던 인류는 한 하늘부모님 아래 한 가족이 될 것입니다.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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