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 현대어 완역
작자 미상 | 조선 말기 판소리계 소설 | 완판 84장본 기반
― 상 권 ―
1. 태평성세의 남원 — 월매와 성 참판
숙종대왕께서 옥좌에 오르신 초기의 일이다. 임금의 크신 덕이 온 강토에 흘러넘쳐 성스러운 아들과 손자 대대로 이어지니, 북과 옥피리 소리는 요순 시절의 태평가를 떠올리게 하고, 의관과 문물은 하나라의 우왕과 은나라의 탕왕의 치세에 버금갈 만하였다. 임금 곁의 신하들은 나라의 주춧돌이요, 군을 지키는 장수들은 나라의 방패였다. 조정에서 흘러나오는 덕화(德化)가 시골 구석구석까지 퍼지니 사방이 굳건하고 원근이 모두 평온하였다. 충신이 조정에 가득하고 효자와 열녀가 집집마다 넘쳤다. 참으로 아름답고 아름다운지고. 비는 때맞추어 내리고 바람은 순하게 불어 백성들은 배불리 먹고 즐겁게 지내며 곳곳에서 태평가를 불렀다.
이 무렵, 전라도 남원부에 월매(月梅)라는 기생이 살고 있었다. 삼남(三南)에서 으뜸가는 명기(名妓)로 이름이 높던 그녀는 일찍이 기적(妓籍)에서 빠져나와 성(成) 참판이라 하는 양반과 살림을 꾸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사십을 훌쩍 넘도록 슬하에 핏줄 하나 없으니, 이것이 늘 가슴에 맺힌 한이 되어 탄식과 시름이 병이 될 지경이었다. 하루는 크게 마음을 다잡고 옛사람들의 지혜를 떠올린 월매가 가군(家君)을 조용히 불러 앉혀 공손히 아뢰었다.
“들으시오. 전생에 어떤 인연이 닿았는지 이 세상에서 부부의 연을 맺어, 기생 시절의 행실을 모두 버리고 예절도 숭상하고 여공(女功)도 힘써 왔건만, 무슨 죄가 그리도 무거운지 핏줄 하나 없으니 혈육도 없고 친족도 없는 우리 신세에 조상의 제사는 누가 지내며 훗날의 장례는 어찌 치른단 말이오. 명산대찰에 공을 들여서라도 남녀 간에 아이 하나만 점지받는다면 평생 한을 풀 것이니, 당신의 뜻은 어떠하시오?”
성 참판이 이르기를, “일생의 신세를 생각하면 당신 말이 당연하나, 빌어서 자식을 얻는다면 자식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하니, 월매가 대답하였다. “천하의 대성인 공자께서도 이구산에 빌어서 나셨고, 정나라의 정자산도 우형산에 빌어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 아동방에도 명산대천이 있거늘, 우리도 정성이나 한번 드려봅시다.”
공들여 쌓은 탑은 무너지지 않고, 정성껏 심은 나무는 꺾이지 않는 법이다. 그날부터 월매는 목욕재계하고 몸을 정결히 한 뒤 명산승지를 두루 찾아 나섰다. 지리산 깊은 품에 안겨 반야봉에 올라서니 사방이 명산대천으로 완연하였다. 상봉에 제단을 쌓고 제물을 차려 놓은 뒤 땅바닥에 엎드려 천신만고(千辛萬苦)로 빌고 또 빌었더니, 산신령의 덕이셨는지 오월 오일 갑자일에 한 꿈을 얻었다.
서기(瑞氣)가 허공에 서리고 오색 무지개가 영롱하더니, 선녀 하나가 청학을 타고 내려왔다. 머리에는 꽃으로 엮은 관을 쓰고 몸에는 채색 옷을 두른 그 선녀가, 손에 계화(桂花) 한 가지를 들고 당(堂)에 올라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아뢰었다. ‘저는 낙포(洛浦)의 딸이었는데, 반도(蟠桃) 복숭아를 진상하러 옥경(玉京)에 갔다가 광한전에서 적송자(赤松子)를 만나 못다 나눈 회포를 풀던 중 시간을 어긴 것이 죄가 되어 상제(上帝)께 대노를 사고 진토(塵土)에 내침을 받았습니다. 갈 바를 모르고 헤매다가 두류산 신령께서 부인 댁으로 인도하시기에 찾아왔사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주옵소서.’ 하고는 품속으로 달려드는데, 학의 울음소리에 놀라 깨어 보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다.
황홀하게 흔들리는 정신을 가다듬어 가군에게 꿈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천행으로 그달부터 태기(胎氣)가 있었다. 열 달이 차매 하루는 향기가 방 안에 가득하고 채색 구름이 영롱하더니 혼미한 가운데 아이를 낳았으니 옥 같은 딸아이였다. 월매의 일구월심(日久月深) 바라던 마음이 아들은 아니었으나 잠시나마 풀리는 듯하였다. 그 사랑함을 어찌 다 형언하랴. 이름을 춘향(春香)이라 지어 장중보옥(掌中寶玉)처럼 길러내니, 효행이 둘도 없고 인자함이 기린(麒麟) 같았다. 칠팔 세가 되매 서책을 가까이하여 예절과 정절을 일삼으니 일읍(一邑)이 칭송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2. 이한림의 남원 부임과 이도령
이때 서울 삼청동에 이한림(李翰林)이라 하는 양반이 살고 있었다. 대대로 이름난 가문이요 충신의 후예였다. 어느 날 임금께서 충효록(忠孝錄)을 살펴보시고 충효자를 택하여 지방관으로 임용하실 때, 이한림에게 남원 부사(府使)의 직을 내리셨다. 이한림이 임금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행차를 꾸려 남원에 도임하여 백성을 잘 다스리니, 사방이 무탈하고 고을 백성들이 선정을 기쁘게 칭송하였다. 비는 고르게 내리고 바람은 순조롭고 백성이 부모에게 효도하니 참으로 요순 시절이 따로 없었다.
이때는 어느 때인가. 봄날이 무르익어 놀기 좋은 삼춘(三春)이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은 짝을 지어 쌍쌍이 날아들며 온갖 봄정취를 다투는데, 남산에 꽃이 피어 붉게 물들고 수양버들 천 가닥 만 가닥이 드리운 사이로 꾀꼬리가 벗을 부른다. 나무마다 잎이 무성하게 우거지니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절기였다.
이 무렵, 사또의 자제 이도령(李道令)은 나이가 이팔(二八) 열여섯이요 풍채는 당나라의 문인 두목지(杜牧之)를 방불케 하였다. 도량은 창해(滄海)처럼 넓고 지혜는 활달하며 문장은 이태백(李太白)이요 필법은 왕희지(王羲之)라 하였다. 하루는 방자를 불러 이르기를, ‘이 고을에 경치 좋은 곳이 어디냐. 시흥과 봄흥이 도도하니 절경을 일러보아라.’ 방자가 여쭈기를, ‘글공부 하시는 도련님이 경치 찾아 나다니시는 것은 부질없지 않습니까.’ 이도령이 말씀하시기를, ‘너 참 무식한 소리를 하는구나. 예로부터 문장재사(文章才士)도 절승강산을 구경하는 것이 풍월과 작문의 근본이 되는 법이니라. 이태백이 채석강에 놀았고, 소동파가 적벽강 가을 달에 놀았으니, 어찌 아니 놀 수 있겠느냐.’
방자가 이에 사방의 경개를 아뢰었다. ‘전라도 남원의 경치를 들어보시오. 남문 밖을 나가시면 광한루(廣寒樓)와 오작교(烏鵲橋), 영주각(瀛州閣)이 장관이옵니다. 처분대로 가사이다.’ 도련님이 이르기를, ‘말로만 들어도 광한루와 오작교가 절경이구나. 구경 가자.’
3. 광한루에서의 봄 구경
이도령의 거동을 보라. 사또 앞에 들어가 공손히 여쭈기를, ‘오늘 날씨가 화창하니 잠깐 나가 풍월을 음영(吟詠)하고 싶습니다. 나들이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또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허락하시고 이르시기를, ‘남쪽 고을의 풍물을 구경하고 돌아오되 시제(詩題)도 생각하여 오너라.’ 도령이 대답하기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물러나와, ‘방자야, 나귀 안장 지워라.’
방자가 분부를 듣고 나귀에 안장을 지운다. 이도령의 차림새를 보라. 옥처럼 맑은 얼굴, 갓 구운 떡처럼 탐스러운 채머리를 곱게 빗어 밀기름에 단정히 재운 뒤 비단 댕기를 맵시 있게 잡아 땋고, 고운 접동베 적삼 위에 겹 저고리와 도포를 갖춰 입고 검은 비단 띠를 가슴에 눌러 매었다. 금을 두드려 만든 부채로 햇빛을 가리며 넓은 관가 길을 생기 있게 걸어 나가는 모습은, 봄 강남을 노닐던 두목지의 풍채인가, 아니면 절세가인을 옆에 두고 시를 읊던 주랑(周郞)의 기상인가.
광한루에 올라 사방을 살펴보니 경개가 참으로 장대하였다. 아침 안개가 붉은 성벽 위를 맴돌고, 녹음 짙은 나무들 사이로 저문 봄바람이 꽃과 버들을 감싸 돌았다. 누각의 단청이 눈부시게 빛나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봄빛을 자랑하였다. 오작교가 분명하거늘 견우와 직녀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 절경에 풍월이 없을 수 없어, 이도령이 흥이 솟구쳐 시 두 구절을 읊었다.
높고 높은 오작교에 선녀가 내려앉고 (高明烏鵲仙)
광한루의 옥 같은 계수나무 아래 달이 뜨네 (廣寒玉桂樓).
묻노라, 천상에서 직녀는 어디 있는가 (且問天上誰織女),
마침 오늘 이곳에 내가 견우가 되었구나 (只興今日我牽牛).
내아(內衙)에서 잔칫상이 나오거늘 술 한 잔을 들이킨 뒤 통인과 방자를 물리고, 취흥이 도도하여 담배를 입에 물고 이리저리 거닐었다. 저 맞은편 한 곳을 바라보니, 어떠한 미인 하나가 봄정취를 이기지 못하여 두견화를 꺾어 머리에 꽂아보고, 함박꽃을 꺾어 입에 살짝 물어보고, 버들잎을 훑어 물에 훨훨 띄워 보내는데, 황금빛 꾀꼬리가 숲속으로 날아들며 그 봄 풍경을 더욱 빛나게 하였다. 광한루의 빼어난 경치도 좋거니와 오작교의 그 정취야말로 더욱 절경이었다.
4. 그네 장면 — 춘향의 등장
이때는 삼월이라 하였지만 실은 오월 단오일이었다. 천중절(天中節)이라 이르는 가장 좋은 명절이다. 이때 월매의 딸 춘향이도 시서음률(詩書音律)에 능통하였으니, 단오의 즐거움을 모를 리가 없었다. 향단을 앞세우고 그네를 뛰러 나설 때, 난초처럼 고운 머리를 두 귀에 눌러 곱게 땋아 금봉채(金鳳釵)로 단정히 꾸미고, 가는 허리에 두른 치마 자락이 미양(眉楊)의 가는 버들가지처럼 힘없이 드리워진 듯, 아름답고 고운 태도로 아장아장 흐늘흐늘 가만가만 걸어 장림(長林) 속으로 들어갔다.
녹음방초가 짙게 우거져 금빛 잔디가 깔린 곳에 황금 꾀꼬리가 쌍쌍이 날아드는데, 무성한 버들가지에 백 척이나 될 듯한 그네를 높이 매었다. 초록빛 장옷과 남빛 홑치마를 훨훨 벗어 걸어두고, 자주색 수당혜(繡唐鞋)를 썩 벗어 던져두고, 흰 명주 속곳을 훌쩍 추켜올린 뒤, 연잎처럼 부드러운 두 손으로 그네 줄을 섬섬히 갈라 잡고 흰 버선 발로 섭적 올라서서 발구르며 굴러나갈 때, 세류(細柳)처럼 날씬한 고운 몸이 단정히 놀렸다.
“향단아, 밀어라.” 한 번 구르며 힘을 주고 두 번 구르며 힘을 주니, 발 아래 가는 티끌이 바람에 날리고 앞뒤로 점점 멀어지는데, 머리 위 나뭇잎은 몸을 따라 흔들흔들, 오고 갈 제 살펴보면 녹음 속의 붉은 치마 자락이 바람결에 내비치니, 아득한 하늘 흰 구름 사이로 번갯불이 번쩍이는 듯하였다. 앞으로 휙 나가는 양은 가벼운 제비가 복사꽃 한 잎 떨어지는 것을 쫓는 듯, 뒤로 번듯 도는 양은 광풍에 놀란 나비가 짝을 잃고 가다가 되돌아서는 듯, 무산(巫山)의 선녀가 구름을 타고 양대(陽臺) 위에 내려앉는 듯하여, 나뭇잎을 물어보기도 하고 꽃을 꺾어 머리에 살짝 꽂아보기도 하였다.
“이 애 향단아, 그네 바람이 세기로 정신이 어찔하구나. 그네줄 붙들어다오.” 붙들려고 무수히 나아가고 물러서며 한창 이리 노닐 적에, 시냇가 너럭바위 위에 옥비녀가 떨어져 쟁그랑 맑은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는 마치 산호 채로 옥 쟁반을 두드리는 듯하였다. 그 형용은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5. 이도령의 눈에 든 춘향
봄 제비가 삼춘(三春)을 채우고 날아가듯 세월은 덧없이 흐르는데, 이도령의 마음이 울적하고 정신이 어찔하여 별별 생각이 다 나는 것이었다.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를, ‘저이가 낙포(洛浦)의 선녀인가, 무산(巫山)의 선녀인가.’ 이도령이 혼비중천하여 온몸이 허공을 뜨는 것 같았다. ‘통인아.’ ‘예.’ ‘저 건너 화류 속에 오락가락 어른어른 희뜩희뜩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아라.’ 통인이 살펴보고 아뢰기를, ‘다른 무엇이 아니옵고, 이 고을 기생 월매의 딸 춘향이라는 계집아이이옵니다.’ 이도령이 엉겁결에 말하기를, ‘참으로 훌륭하다. 멋지다.’
통인이 아뢰기를, ‘제 어미는 기생이오나 춘향이는 도도하여 기생 구실을 마다하고 꽃잎과 나뭇잎에 글자도 생각하며, 여자의 솜씨와 문장을 겸전(兼全)하여 양갓집 처자와 다름이 없사옵니다.’ 이도령이 허허 웃고 방자를 불러 분부하기를, ‘들으니 기생의 딸이라 하니 급히 가서 불러오너라.’
방자가 아뢰기를, ‘설부화용(雪膚花容)이 남쪽에 유명하여 판서 병사 군수 현감 할 것 없이 높은 양반 오입쟁이들도 무수히 보려 하되 마음대로 못 보셨습니다. 온 세상에 둘도 없는 절색이요 만고의 여중군자(女中君子)이오니, 황공하온 말씀으로 불러오기 어렵습니다.’ 이도령이 크게 웃으며, ‘방자야, 네가 물각유주(物各有主)를 모르는구나. 형산의 백옥과 여수의 황금도 임자가 각각 있는 법이다. 잔말 말고 불러오너라.’
방자가 분부를 듣고 춘향을 부르러 건너갈 제, 맵시 있는 방자 녀석이 서왕모의 요지연에 편지를 전하던 청조(靑鳥)처럼 이리저리 건너가서, ‘여봐라, 이 애 춘향아.’ 부르는 소리에 춘향이 깜짝 놀라, ‘무슨 소리를 그 따위로 질러 사람의 정신을 놀라게 하느냐.’ ‘이 애야, 말 마라. 큰일이 났다.’ ‘일이라니 무슨 일.’ ‘사또 자제 도련님이 광한루에 오셨다가 네가 노는 모양을 보시고 불러오라는 영이 내리셨다.’
춘향이 화를 내어, ‘네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도련님이 어찌 나를 알아서 부른단 말이냐. 이 자식, 네가 내 말을 일러바쳤구나.’ ‘아니다. 내가 네 말을 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네가 그른 내력을 들어보아라. 계집아이 행실로 추천(鞦韆)을 탈 양이면 네 집 후원 담장 안에 줄을 매고 타는 것이 도리에 당연함이라. 광한루 구경터에 그네를 매고 네가 뛸 제, 외씨 같은 두 발길로 흰 구름 사이를 노닐 적에 붉은 치마 자락이 펄렁펄렁, 흰 속곳 자락이 동남풍에 나부끼고, 박속 같은 네 살결이 구름 사이에 희뜩희뜩 보이는데, 도련님이 보시고 너를 부르실 제 내가 무슨 말을 했겠느냐. 잔말 말고 건너가자.’
춘향이 대답하기를, ‘네 말이 당연하나 오늘이 단오일이라, 비단 나뿐이겠느냐. 다른 집 처자들도 여기 와 함께 추천하였거늘, 여염집 사람을 마구잡이로 불러갈 리도 없고 부른다 해도 갈 리도 없다.’ 방자가 낯이 달아 광한루로 돌아와 도련님께 아뢰니, 도련님이 그 말을 듣고, ‘기특한 사람이로다. 말은 옳으나 다시 가서 이리이리 전하여라.’ 방자가 다시 춘향의 집을 찾아가니 모녀가 마주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터였다. 춘향의 어머니가 정신없이 말하기를, ‘꿈이라는 것이 모두 허사가 아니로다. 간밤에 꿈을 꾸니 청룡 하나가 벽도지에 잠겨 보이더니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하였더니 우연한 일이 아니로다. 또 들으니 사또 자제 도련님 이름이 몽룡이라 하니, 꿈 몽(夢) 자 용 룡(龍) 자가 신통하게 맞는구나. 그러나 저러나 양반이 부르시는데 아니 갈 수 있겠느냐. 잠깐 가서 다녀오너라.’
6. 광한루에서의 첫 만남
춘향이 그제야 못 이기는 체로 겨우 일어나 광한루로 건너갈 때, 그 걸음걸이가 자못 품위 있고 우아하였다. 흐늘흐늘 흐늘거리며 건너오는데, 이도령이 난간에 비스듬히 기대 서서 완완히 바라보니 춘향이 점점 가까이 오는 것이었다. 요요정정(窈窕亭亭)하여 그 월태화용(月態花容)이 세상에 둘도 없었다.
얼굴이 조촐하니 맑은 강에 노니는 학이 눈 내린 달빛에 비치는 것 같고, 붉은 입술과 흰 이가 반쯤 열리니 별 같기도 하고 옥 같기도 하였다. 연지를 품은 듯한 뺨의 고운 빛이 봄 안개처럼 피어올라 아름다운 문채가 은하수 물결 같았다. 연꽃 같은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 누각에 올라 부끄러이 서 있거늘, 통인을 불러 ‘앉으라고 일러라.’ 하였다.
춘향이 고운 태도로 염용(斂容)하고 앉는 거동을 자세히 살펴보니, 맑은 물가에서 목욕하고 앉은 제비가 사람을 보고 놀라는 것 같았다. 따로 단장한 것도 없이 천연 그대로의 국색(國色)이라, 옥 같은 얼굴을 마주하니 구름 사이 밝은 달이요, 붉은 입술이 반쯤 열리니 물 위의 연꽃이로다. 영주(瀛州)에 놀던 선녀가 남원에 귀양 와 있으니, 월궁에서 모시던 선녀가 벗 하나를 잃은 것이렷다. 네 얼굴 네 태도는 세상 사람이 아니로다.
이때 춘향이 추파(秋波)를 잠깐 들어 이도령을 살펴보니, 금세(今世)의 호걸이요 세상에 드문 기남자(奇男子)였다. 이마가 높으니 소년에 공명(功名)할 것이요, 다섯 산악이 조화롭게 어울렸으니 나라를 보필할 충신이 될 것이매, 마음속으로 흠모하여 눈썹을 살며시 숙이고 무릎을 모아 단정히 앉을 뿐이었다.
이도령이 이르기를, ‘성현도 같은 성끼리는 혼인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네 성은 무엇이며 나이는 몇 살이냐?’ ‘성은 성(成) 가이옵고, 연세는 열여섯 살이옵니다.’ 이도령이 거동을 보라. ‘허허, 그 말이 반갑도다. 네 나이 들어보니 나와 동갑 이팔(二八)이로다. 성씨를 들어보니 천정(天定)으로 이룬 인연이 분명하다. 이성지합(二姓之合)은 좋은 연분이니 평생을 함께 즐겨보자. 너의 부모님은 모두 살아 계시냐?’ ‘어머니 한 분뿐이옵니다.’ ‘형제는 몇이나 되느냐?’ ‘예순이 된 어머니의 무남독녀 저 하나뿐이옵니다.’ ‘너도 남의 집 귀한 딸이로구나. 천정하신 연분으로 우리 둘이 만났으니 만년을 함께 즐겨보자.’
춘향이 거동을 보라.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붉은 입술을 반개하여 가는 목을 겨우 열어 맑은 목소리로 아뢰기를,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 옛글에 일렀으니, 도련님은 귀한 공자요 소녀는 미천한 첩인지라, 한번 인연을 맺은 후에 그대로 버리신다면, 일편단심 이 마음이 독수공방 홀로 누워 우는 한이 될 것이니, 그런 분부는 거두어 주소서.’ 이도령이 이르기를, ‘네 말을 들으니 어찌 아니 기특하랴. 우리 둘이 인연 맺을 때 쇠와 돌처럼 굳은 약속을 맺으리라. 네 집이 어디메냐?’ 춘향이 아뢰기를, ‘방자를 불러 물으소서.’ 이도령이 허허 웃고, ‘방자야, 춘향의 집을 일러라.’
방자가 손을 넌지시 들어 가리키는데, ‘저기 저 건너 동산은 울울하고 연못 물이 청청(淸淸)한 곳에 기화요초가 난만하여 나무마다 앉은 새는 호사를 자랑하고, 바위 위 굽은 소나무는 청풍이 건듯 부니 늙은 용이 꿈틀거리는 듯, 문 앞의 버들이 사무치는 듯 하늘거리며 드리워져 있고, 솔숲과 대숲 두 사이로 은은히 보이는 것이 춘향의 집이옵니다.’ 도련님이 이르기를, ‘집이 정결하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울창하니 여자의 절행(節行)이 있을 만한 곳이로다.’ 춘향이 일어나며 부끄러이 아뢰기를, ‘세상 인심이 고약하니 그만 놀고 가겠습니다.’ 도련님이 그 말을 듣고, ‘기특하다, 그럴 듯한 일이로다. 오늘 밤 통금 후에 너의 집에 갈 것이니 부디 냉대하지 마라.’ 춘향이 대답하기를, ‘나는 모르겠습니다.’ ‘네가 모르면 되겠느냐. 잘 가거라, 오늘 밤에 상봉하자.’
7. 야밤의 방문 — 백년가약
춘향이 누각에서 내려 건너가니 춘향 어머니가 마주 나와, ‘애고 내 딸 다녀오느냐. 도련님이 무어라 하시더냐.’ ‘무어라 하여요. 조금 앉았다가 가겠노라 일어서니, 저녁에 우리 집으로 오시마 하옵디다.’ ‘그래 어찌 대답하였느냐.’ ‘모른다 하였지요.’ ‘잘 하였다.’
이때 이도령이 춘향을 멍하니 보낸 후 아쉬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책방으로 돌아와 만사에 뜻이 없고 다만 생각이 춘향이었다. 말소리가 귀에 쟁쟁하고 고운 태도가 눈에 삼삼하였다. 해지기를 기다릴 새, 방자를 불러, ‘해가 어느 때나 되었느냐.’ ‘동쪽에서 막 동이 트나이다.’ 이도령이 크게 노하여, ‘이놈 괘씸한 놈, 서쪽으로 지는 해가 동쪽으로 되돌아가랴. 다시금 살펴보아라.’ 이윽고 방자가 아뢰기를, ‘해가 함지(咸池)에 떨어지고 황혼이 내리며 달이 동쪽 고개에 솟아오르나이다.’
저녁밥도 맛이 없어 뒤척이며 어이하리. 통금을 기다리려 하고 서책을 보려 할 제, ‘시전(詩傳)이라, 관관(關關)히 우는 저구(雎鳩)가 강가 모래톱에 있으니,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 아서라, 그 글도 못 읽겠다.’ 대학을 읽는데,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며 백성을 새롭게 하며…… 아서라, 그 글도 못 읽겠다.’ 천자문(千字文)를 읽는데 방자가 듣다가 말하기를, ‘도련님, 점잖으신 분이 천자는 웬일이오.’ 이도령이 이르기를, ‘이 자식 네 모른다. 천자라 하는 글이 칠서의 본문이라, 양나라 주흥사가 하룻밤에 지어 머리가 세었으니 낱낱이 새겨 보면 뼈가 떨릴 일이 많지야.’ 방자가 말하기를, ‘소인놈도 천자 속은 아옵니다.’ ‘안다 하니 읽어 보아라.’ ‘예, 높고 높은 하늘 천, 깊고 깊은 땅 지, 홰홰친친 검을 현, 활활 타는 누를 황.’ 이도령이, ‘예 이놈, 상놈 맞다. 장타령꾼에게서 들었구나.’
밤이 으슴푸레해지자 방자를 앞세우고 춘향의 집을 찾아갔다. 춘향이 도련님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월매가 크게 기뻐하며 맞아들여 갖가지 안주와 술을 차려내었다. 이날밤 첫사랑의 언약을 맺었다.
《춘향전》에서 이몽룡과 성춘향이 첫날밤을 보내며 정을 나누는 장면은 ‘합환(合歡)’ 또는 ‘방사(房事)’ 대목이라 불린다.
1. 의복을 벗기는 대목 (완판본 원문)
“도련님이 춘향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말로 위로하며, 춘향의 저고리 동정을 풀고 치마끈을 끄르니, 춘향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몸을 굽히거늘, 도련님이 웃으며 가로되,
‘부부(夫婦)의 예(禮)를 이루려 함이니 부끄러워 말라.’
하고 속저고리며 속곳을 다 벗겨 놓으니, 설부화용(雪膚花容)이 등잔 밑에 비치어 눈이 황홀하구나. 도련님이 춘향의 몸을 보니, 이는 사람의 몸이라 하기보다 옥(玉)으로 깎아 만든 듯, 구름 속에 솟은 달이 안개를 뚫고 나온 듯하니, 장부(丈夫)의 간장(肝腸)인들 어찌 녹지 않으리오.”
2. 육체적 결합의 비유 (운우지정)
“둘이 서로 마주 누워 정(情)을 나눌 새, 그 형상을 어찌 다 기록하리.
청룡(靑龍)과 황룡(黃龍)이 구름 속에서 굽이쳐 노니는 듯,
나비가 꽃을 보고 날아들어 향기를 머금는 듯,
연꽃이 이슬을 머금고 바람에 흔들리는 듯,
구름이 비를 머금고 무산(巫山) 속으로 들어가는 듯…
일성(一聲)에 화답하고 만경(萬頃)에 출렁거려 남녀의 정이 비단결 같으니, 이는 천하의 지락(至樂)이라. 도련님이 춘향의 귀에 대고 속삭이되, ‘네 살이 내 살이요, 내 뼈가 네 뼈라. 죽어도 잊지 못할 정이로다’ 하니 춘향 또한 화답하여 즐거움이 끝이 없더라.”
3. 해학적 이본(신재효본 등)의 파격적 묘사
“이애 춘향아, 우리 방아나 한 번 찧어보자.
네가 아래층을 맡고 내가 위층을 맡아, 쿵떡쿵떡 찧다 보면 정 가루가 쏟아지리라…
도련님이 춘향의 가슴을 어루만지니, 춘향이 몸을 뒤틀며 ‘아이고, 도련님! 이게 무슨 짓이오?’ 하되, 도련님은 아랑곳없이 춘향의 옥문(玉門)을 두드리며 가로되, ‘막혔던 길을 뚫고 닫혔던 문을 여니, 이 속의 보물은 오직 나만이 알리로다.’”
*해학적 승화: 성(性)을 음침한 것이 아닌, 생명력 넘치고 즐거운 유희(방아 찧기, 뱃놀이 등)로 묘사하여 당대 민중들의 건강한 성 관념을 보여준다.
8. 사랑가 (판소리)
이도령과 춘향이는 하늘을 두고 땅을 두고 쇠와 돌같이 굳은 백년가약을 맺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마치 하늘이 이어준 인연처럼 모남이 없었고, 그 사랑은 꽃향기처럼 깊고 그윽하였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방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아마도 내 사랑아. 어화 둥둥 내 사랑이야. 아장아장 걸어오는 저 걸음도 사랑이고. 삐죽삐죽 잠깐 웃는 저 눈도 사랑이고. 복사꽃 볼이 발그레한 그것도 사랑이라. 어화 둥둥 내 사랑이야.
둥둥둥 내 낭군. 오호 둥둥 내 낭군. 둥둥둥둥 오호 둥둥 내 낭군…”
봄날 광한루에서 맺어진 두 사람의 사랑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와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서로 오가며 달콤한 시간을 나누었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나날이었다.
9. 이별 — 이도령의 상경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좋은 일이 있으면 슬픈 일도 오는 법이다. 어느 날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으니, 이 부사께서 임금의 부름을 받아 서울로 올라가게 된 것이었다. 이도령도 따라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도령이 직접 춘향의 집을 찾아와 이 소식을 전하니, 춘향이 하늘이 무너지는 듯 놀라며 물었다.
“도련님, 이것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씀이오이까. 이제 막 꽃이 피어나 향기를 내뿜으려는데 비바람이 몰아치니 어찌 된 일이오이까. 저와 맺은 백년가약은 어찌 되오며, 홀로 남겨진 이 몸은 어찌 하라는 말씀이오이까.” 이도령이 춘향의 손을 꼭 잡고 이르기를, “춘향아, 이내 마음 네 아니 알랴. 내 이번에 올라가 오로지 공부에 정진하여 과거에 급제한 뒤에는 반드시 너를 데리러 오마. 그날까지 굳게 절개를 지키며 기다려 다오.” 춘향이 눈물을 삼키며 대답하기를, “도련님, 믿겠나이다. 기다리겠나이다. 부디 빨리 돌아오소서.”
이별의 날이 밝아왔다. 이도령이 말에 오르니 춘향이 치마를 붙들고 놓지 못하였다. 방자가 길을 재촉하니 춘향이 마침내 손을 놓으며 오열하였다. 이도령도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다가 마침내 북쪽 길 저편으로 사라졌다. 춘향이 임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세상이 온통 그 울음소리 하나로 채워지는 듯하였다.
10. 이별가 (판소리)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이야
아마도 내 사랑아 어화 둥둥 내 사랑아
나 죽거든 묻지 마라 님 없는 이 세상에
날이 가고 달이 가면 어느 날에 나 오시려나
간다 하여도 못 가시리 온다 하여도 못 오시리
백두산 험한 고개 님이 가면 어이 가리
원수로다 원수로다 이별이란 게 원수로다
날 버리고 가시는 님아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나소
가시다가 발병 나서 못 가시고 이 집으로 다시 오소
어화 우겨라 잡아라 날 잡아라
가는 님의 말고삐 잡아 이내 마음 달래주소
― 하 권 ―
11. 이별 후 춘향의 그리움
이도령이 상경한 뒤 춘향은 하릴없이 자신의 침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향단아, 주렴 걷고 안석 밑에 베개 놓고 문 닫아라. 도련님을 깨어서는 만나볼 길이 까마득하니, 잠이라도 들면 꿈속에서나 만나보자. 예로부터 꿈에 와 보이는 님은 신의(信義)가 없다 하였건만, 답답히 그리울진댄 꿈이 아니면 어찌 보리.’ 그리하여 눈을 감았으나 잠은 오지 않고 눈물만 흘렀다.
갈까보다 갈까보다. 님을 따라 갈까보다.
천리라도 갈까보다 만리라도 갈까보다.
풍우도 쉬어 넘고 날진 수진 해동청 보라매도 쉬어 넘는
고봉정상 동선령 고개라도 님이 와 날 찾으면
나는 발 벗어 손에 들고 나는 아니 쉬어 가지.
한양 계신 우리 낭군 나와 같이 그리워하는가.
무정하여 아주 잊고 나의 사랑 옮겨다가 다른 님을 괴이는가.
‘보고지고 보고지고, 님의 얼굴 보고지고. 듣고지고 듣고지고, 님의 소리 듣고지고. 전생에 무슨 원수로 우리 둘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리운 상사(相思)로 한데 만나 잊지 말자 처음 맹세, 죽지 말고 한데 있어 백년기약 맺은 맹세, 천금 주옥도 꿈 밖의 일이요 세상 온갖 일이 관계하랴. 근원에서 흘러 물이 되고, 깊고 깊고 다시 깊고, 사랑 모여 산이 되어 높고 높고 다시 높아, 끊어질 줄 모르거든 무너질 줄 어이 알리. 귀신이 방해하고 조물주가 시기하는구나. 하루아침에 낭군을 이별하니 어느 날에 만나 볼까. 천 가지 시름 만 가지 한이 가득하여 끝끝내 느끼어라. 아름다운 얼굴 구름 같은 귀밑머리 공연히 시들어가는 한, 세월은 무정하기 흐르는 물 같구나. 오동나무 아래 가을밤은 어이 그리 더디 새며, 녹음방초 비끼는 곳에 해는 어이 더디 가는고. 이 그리움을 아신다면 님도 나를 그리실 텐데. 독수공방 홀로 누워 한숨만이 벗이 되고, 구곡간장 굽이굽이 썩어 솟아나는 것이 눈물이라. 눈물 모여 바다 되고 한숨 지어 청풍 되면, 한 잎 조각배에 몸을 싣고 한양 낭군 찾아가련만, 어이 그리 못 보는고. 달은 밝고 별은 빛나 님 계신 곳을 비추련만, 심중에 쌓인 수심 나 혼자뿐이로다. 밤이 깊어 삼경인데 앉았은들 님이 올까, 누웠은들 잠이 오랴. 님도 잠도 아니 온다. 이 일을 어이하리. 아마도 이별이 원수로다. 흥이 다하면 슬픔이 오고 고통이 다하면 즐거움이 온다 예로부터 있건마는, 기다림도 적지 않고 그리운 지도 오래건만, 한 치 간장 굽이굽이 맺힌 한을 님 아니면 누가 풀까. 밝으신 하늘이시여, 굽어보시어 속히 만나게 하옵소서. 미진인정(未盡人情) 다시 만나 백발이 다 할 때까지 이별 없이 살고지고. 묻노라, 푸른 물 푸른 산아, 우리 님 초췌한 행색 애연히 한번 이별한 후에 소식조차 끊어졌도다. 사람이 나무와 돌이 아닌 이상 님도 응당 느끼실 것이리라. 애고 애고 내 신세야.’
하늘을 우러러 자탄(自嘆)하며 세월을 보내는데, 이때 이도령은 서울로 올라가 잠자리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오직 주야로 과거에 급제하여 춘향을 데리러 오겠다는 일념으로 글공부에 매진하였다.
12. 신관 사또 변학도의 부임
그러는 동안 이 부사가 남원을 떠난 지 얼마 후, 새 사또가 부임하게 되었으니 자하골 변학도(卞學道)라 하는 양반이었다. 문필도 유여하고 인물 풍채가 활달하며 풍류에 달통하여 오입(誤入) 속이 넉넉하였지만, 한 가지 흠이 있으니 성정(性情)이 괴팍한 중에 강압적인 성품을 겸하여 혹시 실덕(失德)도 하고 억울한 옥사를 만들기도 한다 하였다. 이런 연유로 세상에서 이 사람을 아는 이들은 모두 고집불통이라 하였다.
신관 사또의 행차가 위의(威儀)도 장엄하였다. 구름 같은 별연(別輦)과 독교(獨轎)에 좌우 청장(靑帳)을 떡 벌이고, 행군 취타(吹打) 풍악 소리가 성 동쪽에 진동하고 삼현육각 권마성이 원근에 낭자하였다. 광한루에 포진하여 의관을 갖추고 객사에 도착하여 부임 신고를 마친 후, 동헌(東軒)에 좌정하고 도임상을 드신 뒤에 ‘수노(首奴)를 불러 기생 점고(點考)하라.’ 하였다.
13. 기생 점고
호장(戶長)이 분부를 듣고 기생 명부를 들여 놓고 호명을 차례로 하는데, 낱낱이 글귀를 얹어 불렀다.
‘비 갠 뒤 동산에 솟는 명월(明月)이.’ 명월이가 들어오는데 치마 자락을 걷음걷음 걷어 가슴에 딱 붙이고 아장아장 들어와, ‘점고 맞고 나오.’ ‘어주축수(漁舟逐水)에 애산춘(愛山春), 양편에 난만히 핀 고운 봄빛이 이 아니냐. 도홍(桃紅)이.’ 도홍이가 들어오는데 붉은 치마 자락을 걷어 안고 아장아장 조촘 걸어 들어와, ‘점고 맞고 나오.’ ‘단산(丹山)의 저 봉황이 짝을 잃고 벽오동에 깃들이니 산수의 영기(靈氣)를 타고 기품 있는 새로다. 기운이 속됨을 타지 않는 굳은 절개, 만수문전 채봉(彩鳳)이.’ 채봉이가 들어오는데 나군(羅裙) 두른 허리를 맵시 있게 걷어 안고 연보(蓮步)를 정히 옮겨 아장아장 걸어 들어와, ‘점고 맞고 좌부진퇴(左部進退)로 나오.’
‘맑은 연못에 절개를 바꾸지 않는 저 연화(蓮花), 어여쁘고 고운 태도 꽃 중의 군자 연심(蓮心)이.’ ‘화씨(和氏)의 옥처럼 밝은 달이 벽해(碧海)에 비치는 듯, 형산의 백옥이여 명옥(明玉)이.’ ‘구름 가리고 바람 가는 저 멀리 오천(五天), 버들이 황금빛으로 물든 곳에 앵앵(鶯鶯)이.’ 연연히 고운 기생들이 그 중에 많건마는, 사또께서는 본래 춘향의 이름을 높이 들으셨는지라, 아무리 들어도 춘향 이름이 없었다.
사또가 수노(首奴)를 불러 묻기를, ‘기생 점고가 다 되어도 춘향은 안 부르니 퇴기냐?’ 수노가 아뢰기를, ‘춘향의 어미는 기생이오되 춘향은 기생이 아닙니다.’ 사또가 묻기를, ‘춘향이가 기생이 아니면 어찌 규중(閨中)에 있는 아이의 이름이 높이 났느냐?’ 수노가 아뢰기를, ‘본래 기생의 딸이옵고 덕과 미모가 빼어난 고로 권문세가의 양반이며 일등 재사(才士) 한량들이 내려오실 때마다 구경하고자 간청하였으되, 춘향 모녀가 듣지 않아 십 년에 한 번 대면하기도 어려웠사옵니다. 천정(天定)하신 연분인지 구관 사또 자제 이도령과 백년기약을 맺사옵고, 도련님 가실 때에 과거에 오른 뒤 데려가마 당부하고 춘향이도 그리 알고 수절하여 있습니다.’
사또가 분을 내어, ‘이놈, 무식한 상놈인들 그게 어떠한 양반이라고 엄하디엄한 양반 댁 도련님이 화방(花房)에 첩을 두어 살자 하겠느냐. 이놈, 다시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내면 죄를 면치 못하리라. 이미 내가 저 하나를 보려다가 못 보고 그냥 말랴. 잔말 말고 불러오라.’ 사또가 대노하여, ‘만일 춘향을 지체하면 공형(公兄) 이하 각청 두목을 일병 파직할 것이니 빨리 대령 못 시킬까.’ 육방이 소동하고 각청 두목이 넋을 잃어, ‘불쌍하다 춘향 정절, 가련하게 되기 쉽다. 사또 분부 지엄하니 어서 가자, 바삐 가자.’
14. 춘향의 소환 — 수청 강요
사령과 관노가 뒤섞여 춘향의 문전에 당도하니, 이때 춘향은 주야로 이도령만을 생각하며 울고 있었다. 그리움으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이도령 생각에 애가 타서 뼈와 살이 모두 상해가는 지경이었다. 양기(陽氣)가 쇠진하여 진양조(珍陽調)처럼 길고 느린 울음이 흘러나오니, 이를 듣는 사령들도 마음이 녹아 내렸다.
사령이 나오며 ‘오너라!’ 외치는 소리에 춘향이 깜짝 놀라 문틈으로 내다보니 사령 군노가 나왔다. ‘아차, 오늘이 삼일 점고라 하더니 무슨 야단이 났나 보다.’ 그리하여 춘향은 여러 번수들을 방 안에 앉히고, ‘향단아, 주반상 들여라.’ 하여 취하도록 대접한 후에 궤문을 열어 돈 닷 냥을 내어 놓으며, ‘여러 번수님들, 가시다가 술이나 한잔 하시오. 뒷말 없게 해 주시오.’
행수기생이 나오며 두 손뼉을 땅땅 마주치면서, ‘여봐라 춘향아, 말 들어라. 너만한 정절은 나도 있고 너만한 수절은 나도 있다. 너라는 정절이 왜 있으며 너라는 수절이 왜 있느냐. 조그만 네 하나로 인해 온 육방이 소동하고 각청 두목이 다 죽게 생겼다. 어서 가자, 바삐 가자.’ 춘향이 할 수 없어 수절하던 그 기상으로 대문 밖을 썩 나서며, ‘형님 형님, 행수 형님, 사람을 그리 괄시하지 마소. 거기라고 대대 행수이며 나라고 대대 춘향인가. 사람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동헌에 들어가, ‘춘향이 대령하였소.’ 사또가 보시고 크게 기뻐하여, ‘춘향이 분명하다. 대상으로 오르거라.’ 춘향이 상방(上房)에 올라가 무릎을 모으고 단정히 앉을 뿐이었다. 사또가 분부하기를, ‘오늘부터 몸 단장 정히 하고 수청(守廳)으로 거행하라.’ 춘향이 아뢰기를, ‘사또 분부 황송하오나, 한 지아비만을 따르는 것이 소녀의 뜻이오니 분부 시행 못 하겠습니다.’
사또가 웃으며 이르기를, ‘참으로 대견한 계집이로다. 네가 진정 열녀로다. 네 정절 굳은 마음이 어찌 그리 어여쁘냐, 당연한 말이로다. 그러나 이 도령은 경성 사대부의 자제로서 명문 귀족 사위가 되었으니, 일시 사랑으로 잠깐 길가 꽃처럼 노닐던 너를 한 번이라도 생각하겠느냐. 그는 다 버려두고, 네 고을 관장에게 매임이 옳으냐, 어린 도령에게 매임이 옳으냐. 네가 말을 좀 하여보아라.’
춘향이 아뢰기를,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 절개를 본받고자 하옵는데, 여러 차례 이런 분부를 내리시니,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 것이니, 처분대로 하옵소서.’ 이때 회계(會計) 나리가 나서서, ‘이 요망한 년아, 덧없는 이 세상 살아봐야 일색(一色)이라. 사또께서 너를 추앙하여 하시는 말씀이지, 너 같은 기생 출신에게 수절이 무엇이며 정절이 무엇이냐. 구관을 전송하고 신관 사또를 맞이함이 법전에 당연하거든 괴이한 말 내지 마라.’
이때 춘향이 하도 기가 막혀 천연히 앉아 아뢰기를, ‘충효열녀에 상하(上下)가 따로 있소이까. 자상히 들으시오. 기생이라 충효열녀가 없다 하시니 낱낱이 아뢰리다. 황해도 기생 농선이는 동선령에서 절개를 지켜 죽었고, 진주 기생 논개는 우리 나라의 충렬로서 충렬문에 모셔져 천추에 향사(享祀)를 받고 있으며, 청주 기생 화월이는 절개로 이름이 높고, 안동 기생 일지홍은 생열녀문이 세워졌사오니, 기생이라 하여 열녀가 없다 하지 마옵소서. 당초에 이 도령 만날 때에 태산과 서해같이 굳은 마음으로 일심정절(一心貞節)을 맹분(孟賁)같은 용맹이라도 빼지 못할 것이요, 소진(蘇秦)과 장의(張儀)의 구변(口辯)이라도 첩의 마음을 옮기지 못할 것이요, 제갈공명의 높은 재주로 동남풍은 빌었어도 일편단심 소녀 마음을 굴복치 못하리이다. 처분대로 하옵소서.’ 사또가 대노하여, ‘이년 들어라. 모반대역하는 죄는 능지처참이 있고, 관장을 조롱하는 죄는 율문(律文)에 올려 있고, 관장을 거역하는 죄는 엄한 형벌에 귀양이니라. 죽노라 설워마라.’ 춘향이 포악(暴惡)하게, ‘유부녀를 겁탈하는 것은 죄가 아니고 무엇이오.’ 사또가 기가 막혀 연상(筵床)을 두드리다 탕건이 벗어지고 상투가 풀리고 목이 쉬어, ‘이년 잡아 내리라.’
15. 십장가 (판소리) — 열 대의 곤장에 담긴 절개
춘향을 형틀에 올려 매고, 집장사령이 거동을 보라. 형장이며 태장이며 곤장이며 한 아름 안아다가 형틀 아래 좌르르 쏟아 놓는 소리에 춘향의 정신이 혼미하였다. 집장사령이 가만히 말하기를, ‘한두 개만 견디소. 어쩔 수가 없네. 이 다리는 이리 틀고, 저 다리는 저리 트소.’ ‘매우 치라.’ ‘예잇, 때리오.’ 딱 붙이니 부러진 형장 개비가 푸르르 날아 공중에 빙빙 솟아 뜰 아래 떨어지고, 춘향이는 이를 복복 갈며 고개만 빙빙 두르면서, ‘애고, 이게 웬 일이어.’
춘향이 10대의 곤장에 맞으면서 설움겨워 우는데,
일편단심 굳은 마음 일부종사(一夫從事) 뜻이오니
일개 형벌 치옵신들 일각인들 변하리까.
이비절(二妃節)을 아옵는데 불경이부 이내 마음
이 매 맞고 영 죽어도 이도령은 못 잊겠소.
삼강오륜 알았으니 삼치형문 정배를 갈지라도
삼청동 우리 낭군 이도령은 못 잊겠소.
사지(四肢)를 가른대도 사생동거 우리 낭군 사생간에 못 잊겠소.
오매불망(寤寐不忘) 우리 낭군 온전히 생각나네.
오늘이나 편지 올까 내일이나 기별 올까. 애고 애고 내 신세야.
육만번 죽인대도 맺힌 마음 변할 수 전혀 없소.
칠보홍안(七寶紅顔) 나 죽겠네.
팔도 방백 수령님네 치민(治民)하러 내려왔지 악형하러 내려왔소.
구곡간장 굽이 썩어 이 내 눈물 구년지수 되겠구나.
십생구사(十生九死)할지라도 십만번 죽인대도 가망없고 무가내지.
십육 세 어린 춘향 장하원귀(杖下冤鬼) 가련하오.
옥 같은 춘향의 몸에서 솟아나는 것은 붉은 피요 흘러내리는 것은 눈물이었다. 피와 눈물이 한데 흘러 무릉도원의 붉은 냇물 같았다. 춘향이 더욱 고집스럽게 말하기를, ‘소녀를 이리 말고 능지처참하여 아주 박살 죽여 주면, 사후에 원조(冤鳥)라는 새가 되어 초혼조(招魂鳥)와 함께 울어, 적막강산 달 밝은 밤에 우리 이도령 잠든 후 그 꿈을 깨울 수 있으련만.’ 말을 못하고 기절하니, 엎드려 있던 통인이 고개를 들어 눈물을 씻고, 매질하던 사령도 눈물 씻고 돌아서며, ‘사람의 자식은 못 하겠네.’
좌우에서 구경하던 사람들과 관속들이 눈물을 씻고 돌아서며, ‘춘향이 매 맞는 거동, 사람의 자식은 차마 못 보겠다. 모질도다 모질도다, 춘향 정절이 모질도다. 출천(出天) 열녀로다.’ 남녀노소 없이 서로 눈물을 흘리며 돌아설 때, 사또인들 좋을 리가 있으랴. 반생반사(半生半死)의 춘향은 결국 형리에게 잡히어 옥중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16. 옥중 — 고난 속의 기다림
춘향이 어두운 옥방에 갇혀 있는 신세가 되었다. 월매가 통곡하며 달려왔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향단이 날마다 옥바라지를 하였으나, 언제 풀려날지 기약이 없었다. 변사또의 핍박과 회유는 쉬지 않고 이어졌으나, 춘향은 한 번도 굴복하지 않았다. 시일이 흐를수록 몸은 쇠약해져 갔지만, 오히려 절개는 더욱 굳어졌다.
십오야 밝은 달은 띠구름에 묻혀 있고
서울 계신 우리 낭군 삼청동에 묻혔으니
달아 달아 보느냐. 님 계신 곳 나는 어이 못 보는고.
가는 길에 한양성 찾아들어 삼청동 우리 님께 내 말 부디 전해다오.
나의 형상 자세히 보고 부디부디 잊지 마라.
옥방 안 깊은 밤에 홀로 앉은 춘향이 등불 하나를 앞에 두고 이도령을 그리며 눈물을 흘렸다. 달이 밝은 날이면 뜰에 새어든 달빛을 바라보며 임이 계신 서울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그래도 이도령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춘향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사랑이란 기다림이며, 기다림이란 곧 믿음임을 그녀는 온몸으로 알고 있었다.
17. 이몽룡의 과거 급제와 암행어사 임명
한편 서울로 올라간 이몽룡은 춘향을 가슴 깊이 품고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하였다. 낮이면 책을 읽고 밤이면 등불 아래서 글을 다듬으니, 드디어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임금께서 크게 기뻐하시어 몽룡에게 암행어사(暗行御史)의 직을 내리시며, ‘전라도 남원 지방을 두루 살펴오라.’ 분부하셨다. 몽룡이 마패(馬牌)와 봉서(封書)를 받고 즉시 남원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러나 몽룡은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남루한 거지 차림으로 내려왔다. 누더기 옷에 짚신을 신고 터진 갓을 비스듬히 쓴 초라한 행색으로 오작교를 건너, 그토록 그리워하던 남원 땅을 다시 밟았다. 춘향의 집 앞에 이르니 예전에 무성하던 화초는 시들어 있고 대문은 반쯤 닫혀 있었다. 집 안팎으로 쓸쓸한 기운이 가득하였다.
18. 월매와의 만남
월매가 문을 열고 나왔다가 이 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뉘시오?’ 몽룡이 머쓱하게 웃으며 이르기를, ‘장모님, 저 이몽룡이옵니다.’ 월매가 눈을 껌벅이며 자세히 보니 과연 이몽룡이었다. 월매가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퉁명스럽게 말하기를, ‘아이고, 이 도령 왔구나. 몇 년 동안 소식도 없더니, 이게 무슨 꼴이오. 우리 춘향이는 사또한테 수청 거절하다가 옥에 갇혀 죽게 되었는데, 이 도령은 이렇게 거지꼴로 나타나니, 춘향이가 당신만 믿고 버틴 게 헛일이 된 것 아니오.’
몽룡이 그 사연을 들어 가슴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장모님, 춘향이가 옥에 갇혀 있다 하시니 어서 만나게 해 주소서.’ 월매가 어두운 표정으로 안내하였다. 이 모든 것이 몽룡의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 것들이었다. 춘향이 자신을 믿고 버텨온 그 세월의 무게가 한꺼번에 가슴을 짓눌렀다.
19. 옥중 재회
어두컴컴한 옥방 안에 홀로 앉아 있던 춘향이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누더기 옷에 거지 차림의 몽룡을 보니 처음에는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눈빛, 그 눈매만은 분명 그리워하던 임이었다. ‘도련님……’ 춘향이 가늘게 부르니 몽룡이 달려들어 손을 잡았다. ‘춘향아, 내가 왔다. 내가 왔노라.’ 두 사람이 서로 붙들고 눈물을 흘렸다.
춘향이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이 모습이 웬일이오니까.’ 몽룡이 힘없이 말했다. ‘과거에 떨어졌노라. 너를 구할 힘이 없으니 어찌 할꼬.’ 춘향이 눈물을 닦으며 조용히 답했다. ‘괜찮사옵니다. 도련님이 오실 줄 믿고 기다렸으니 이제 뵈었으면 여한이 없나이다. 내일 변사또 생신잔치에서 저를 죽이려 한다 하오니, 그 전에 마지막으로 도련님 얼굴을 뵈었으니 이제는 죽어도 눈을 감겠나이다.’ 몽룡이 속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였으나 아무 말 없이 그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 손 안에 온 세상의 약속이 담겨 있었다.
20. 변사또 생신잔치 — 어사시
이튿날 변사또의 생신잔치가 크게 열렸다. 남원 인근의 모든 관리들이 모여들고 기생들이 줄지어 앉아 술을 따르니, 잔치판이 흥겹게 무르익었다. 변사또가 기분 좋게 술잔을 기울이며 이르기를, ‘오늘 잔치가 이리 좋으니 시 한 수 지어볼 분이 없소이까.’ 하였다.
이때 누더기 차림의 한 걸인이 잔치 마당으로 성큼 들어서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나도 한 수 지어보리다.’ 잔치 사람들이 깜짝 놀라 바라보니, 볼품없는 거지가 뻔뻔스럽게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변사또가 호통을 쳤다. ‘저 거지 당장 쫓아내라!’ 그러나 몽룡이 태연히 앞으로 나아가며 말하였다.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낙시(燭淚落時) 민루낙(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 원성고(怨聲高)라.
금술잔의 아름다운 술은 온 백성의 피요,
옥소반의 맛난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이 눈물 흘릴 때 백성도 눈물 흘리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드높더라.
이 시를 듣는 사람들의 얼굴빛이 일시에 달라졌다. 변사또가 버럭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갑자기 사방에서 ‘암행어사 출두요!’ 하는 벼락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21. 암행어사 출두 — 변사또의 파직
순식간에 잔치판이 뒤집어졌다. 관아 사방에서 어사 군졸들이 달려들며 ‘마패 들어라!’ 소리쳐고, 몽룡이 마패를 높이 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암행어사 출두요! 변학도, 어서 나오라!’
변사또가 혼비백산하여 자리에서 떨어지고, 관속들이 사방으로 달아났다. 잔칫상이 뒤엎어지고 기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가운데, 군졸들이 변사또를 붙잡아 포박하였다. 몽룡이 관복으로 갈아입고 상좌에 올라 호령하였다. ‘변학도는 남원 부사로 부임하여 백성을 가렴주구(苛斂誅求)하고, 무고한 춘향을 혹형(酷刑)으로 다스렸으니, 그 죄를 엄히 다스리겠노라. 당장 직위를 박탈하고 문초하라.’ 군졸들이 달려가 옥문을 열고 춘향을 데려왔다. 춘향이 눈이 부신 듯 바라보니, 관복을 갖춰 입은 암행어사가 바로 이몽룡이었다. 춘향이 비틀거리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몽룡이 달려가 춘향을 일으켜 세웠다.
22. 재회와 대단원
‘춘향아, 내가 왔노라. 이제 다 괜찮다.’ 몽룡이 춘향의 손을 꼭 잡았다. 춘향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환하게 웃었다. ‘도련님……아니, 사또마님, 이렇게 당당한 모습으로 오실 줄 알았나이다. 역시 믿고 기다리기를 잘하였나이다.’ 몽룡이 눈물을 닦으며 말하기를, ‘춘향아, 네가 그 고통 속에서도 굳게 버텨주었기에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여기까지 왔노라. 그 절개와 그 사랑이, 나로 하여금 반드시 돌아오게 하였느니라.’
월매가 달려와 오열하며 두 사람을 껴안았다. ‘아이고,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우리 춘향이가 살았구나. 이 도령이 이렇게 훌륭한 어사가 되어 올 줄이야……’ 향단도 기뻐하며 손뼉을 쳤다. 감격의 눈물이 사방으로 번졌다.
변학도는 파직(罷職)되어 서울로 압송되었고, 남원 백성들은 암행어사의 선정(善政)을 기리며 환호하였다. 몽룡은 남원 고을 행정을 바로잡고 억울한 백성들의 한을 풀어주었다. 이후 이몽룡과 성춘향은 서울로 올라가 정식으로 혼례를 올렸다. 임금께서도 춘향의 굳은 절개를 높이 치하하시며 정렬부인(貞烈夫人)의 봉작(封爵)을 내리셨다.
두 사람은 이후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온 나라에 퍼져 사람들의 가슴속에 아름다운 이야기로 길이 남았다. 광한루 오작교에 봄바람이 불 때마다, 그네 위에 날아오르던 춘향의 붉은 치마 자락이 눈에 선히 떠오르고, 그 사랑의 향기가 마치 봄날의 꽃향기처럼 오늘도 은은히 퍼져 오는 것만 같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 그러나 춘향의 절개는 단순한 도덕률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 가장 깊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세상의 온갖 권력과 폭력에도 꺾이지 않는 그 사랑 앞에, 하늘도 마침내 감동하여 마패를 손에 쥔 임을 돌려보낸 것이리라. 이것이 열녀춘향수절가의 이야기이니, 후세 사람들이여, 이 이야기를 길이 기억하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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