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인류 타락은 곧 음란의 문제였다. 아담과 해와가 천명을 어기고 부정한 사랑을 맺어 죄가 시작되었으니, 복귀는 정반대로 순결과 정절로 풀어야 했다. 하늘은 그 그릇이 될 민족을 찾으셨고, 그 민족이 바로 충효열의 심정문화를 간직해 온 한민족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춘향전》이다. 16세 춘향은 이몽룡과 백년가약을 맺은 후, 변사또의 수청 강요 앞에 십장가로 일편단심을 지키던 중, 춘향의 절개에 하늘이 감동하사 암행어사 된 이도령과 극적으로 재회하여 참사랑의 기쁨을 만천하에 전한다.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사랑가는 여러 나라의 사랑가와 그 결이 다르다. 하늘은 한민족에 이 충효열의 DNA가 있었기에 참부모님을 보내주셨다. 우리의 참사랑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를 넘어 현재 우리의 참사랑의 삶이 되어야 한다. 심정문화를 새상에 알리어 한민족선민대서사시의 천명을 완수할 민족이다.]
(TP 1997.4.7) 절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節槪 있는 여인을 무엇으로 표상했습니까? 춘향입니다. 한국은 절개 있는 예의지국입니다. 아내를 중심삼고는 춘향입니다. 효녀를 중심삼고는 심청을 말합니다. 그러니 심청 이상 되어야 하고 춘향 이상 되어야 합니다. 변사또가 수청을 들라고 해도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갈가리 찢겨도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랑 때문에 생겨난 생명이니 나쁜 사랑에 희생되어도 결국은 빛나는 사랑으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참어머님 자서전) 참사랑은 누구나 다 원합니다. 천년 만년이 지나도 참사랑은 싫다 하지 않습니다. 참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에 봄에도 그 사랑, 여름에도 그 사랑, 가을에도 그 사랑, 겨울에도 그 사랑입니다. 소년일 때도 그 사랑, 어른이 되어서도 그 사랑, 늙어서도 그 사랑입니다.
*우리가 함께 묵상해야 할 한 가지 질문
天運이 한반도에 머물고 있는 이 귀한 시간에, 오늘 우리는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져봅니다. “하나님은 왜 하필 이 한민족을 선민으로 선택하셨을까?” 그리고 “왜 참부모님은 강대국인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아니라, 작은 땅 한국 땅에 오셨을까?”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을 알면, 우리가 왜 축복가정으로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왜 순결을 생명처럼 지켜야 하는지가 환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그 답을 찾기 위해 다음 물음에서 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첫째, 인류의 타락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까?
둘째, 그렇다면 구원받을 민족은 어떤 민족이어야 합니까?
셋째, 한민족은 과연 그런 민족이었습니까?
넷째, 그래서 하늘은 우리에게 무슨 사명을 주셨습니까?
이 네 가지를 차례로 짚어 가다 보면, 한민족이 선민으로 선택된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인류의 타락 — 선악과를 따먹은 음란의 문제
성경의 첫머리를 펼쳐 보십시오. 창세기 이야기 가운데 가장 슬픈 사건이 무엇입니까? 아담과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일이지요. 참부모님께서는 이 선악과의 비밀을 타락론을 통해 환히 밝혀 주셨습니다. 선악과란 때 아닌 때에 때의 것을 바래서 함부로 따먹으면 안 되는 금단의 열매인 순결 문제였습니다. 아담과 해와는 미완성기에 있던 이팔청춘에 천사장 루시엘의 거짓 유혹에 넘어가, 하늘부모님께서 생명을 걸고 지키라 명하신 순결한 참사랑을 지키지 못하고 타락으로 혈통을 더럽힌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사랑의 기관 생식기에서 죄가 시작되었습니다. 인류역사속에서 모든 고통은 바로 그 한 점, 음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한 가지 중대한 진리를 알게 됩니다.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늘부모님께서는 그 ‘음란의 문제’를 ‘순결과 정절’로 풀어낼 수 있는 중심 민족을 찾으셔야 했다는 것입니다. 타락이 음란이었다면, 복귀는 순결이어야 합니다. 타락이 순간적 욕정의 분출이었다면, 복귀는 변치 않는 일편단심이어야 합니다. 타락이 생명을 걸고 천명을 어긴 것이었다면, 복귀는 생명을 걸고 천명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의 눈으로 세계 지도를 펼쳐 보시기 바랍니다. 정절 순애 순결 순혈을 생명보다 귀하게 여겼던 민족이, 이 지구상 어디에 있을까요?
그 민족이 바로 우리 한민족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을 ‘白衣民族’이라고 부릅니다. 흰옷을 즐겨 입는 민족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흰색은 그저 하나의 색이 아닙니다. 흰색은 평화의 색이요, 거룩의 색이요,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순결의 색입니다.
* 忠孝烈 — 한민족의 가슴 깊은 곳에 흐르는 심정문화
우리 한민족의 마음속에는 세 가지 보배가 있었습니다. 곧 충효열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가장 깊이 새겨야 할 ‘세찰 열(烈)’입니다. 열이란 무엇입니까? 불꽃처럼 타오르는, 죽음도 불사하는 절개. 참사랑과 신의를 생명처럼 여기는 변함없는 일편단심입니다.
*성춘향의 참사랑 — 한민족의 가슴속에 피워 낸 아름다운 꽃
그런데 이 한민족의 절개의 심성을 가장 완벽하게, 가장 아름답게, 가장 극적으로 담아낸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춘향전입니다. 잘 아시는 이야기지요. 전라도 남원 땅에 기생 월매의 깊은 정성으로 한 딸이 태어났습니다. 단오절에 광한루 그네터에서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이뤄집니다. 남원부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내려온 자제 이몽룡과 성춘향은 광한루 그네터에서 첫 만남이 이뤄집니다. 이후 춘향은 기생의 신분적 한계와 정절 사이에서 고뇌하다가 두 사람은 돌 쇠처럼 굳은 약속을 맺습니다. 이때 춘향이 ‘죽음 너머까지 가는 사랑’을 약속합니다. 이 도령 역시 춘향의 굳은 절개에 응답하며 하늘땅 앞에 굳은 백년가약을 맺습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하늘의 인연처럼 모남이 없었고, 그 사랑은 꽃향기처럼 깊고 그윽하였습니다.
(춘향전 ‘사랑가’ 영상시청)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방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아마도 내 사랑아. 어화 둥둥 내 사랑이야. 아장아장 걸어오는 저 걸음도 사랑이고. 삐죽삐죽 잠깐 웃는 저 눈도 사랑이고. 복사꽃 볼이 발그레한 그것도 사랑이라. 어화 둥둥 내 사랑이야.
둥둥둥 내 낭군. 오호 둥둥 내 낭군. 둥둥둥둥 오호 둥둥 내 낭군…”
그렇게 불타는 사랑이 1년간 꿈결처럼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이도령의 부친께서 임금의 부름을 받아 서울로 떠나야 했고, 이몽룡도 따라가야 했습니다. 몽룡이 춘향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내가 서울로 올라가 반드시 과거에 급제하여 너를 데리러 오마. 그날까지 나만 기다려다오.’ 춘향이 눈물을 삼키며 답했습니다. ‘도련님, 믿겠나이다. 기다리겠나이다.’이렇게 두 사람은 눈물로 이별하고 춘향의 그리움이 시작됩니다.
(춘향가중) 이 그리움을 아신다면 님도 나를 그리실 텐데. 독수공방 홀로 누워 한숨만이 벗이 되고, 구곡간장 굽이굽이 솟아나는 것이 눈물이라. 눈물 모여 바다 되고 한숨 지어 청풍 되면, 한 잎 조각배에 몸을 싣고 한양 낭군 찾아가련만, 심중에 쌓인 수심 나 혼자 뿐이로다. 밤이 깊어 삼경인데 앉았은들 님이 올까, 누웠은들 잠이 오랴. 님도 잠도 아니 온다. 아마도 이별이 원수로다. 기다림도 적지 않고 그리운 지도 오래건만, 굽이굽이 맺힌 한, 님 아니면 누가 풀까. 밝으신 하늘이시여, 굽어보시어 속히 만나게 하옵소서.
그러나 새로 부임한 고집세고 백성을 함부로 대하는 변학도라는 사또가 성춘향의 순애를 전해 듣고 춘향을 탐내어 수청 들기를 강요합니다. 한 탐관오리의 탐욕스런 욕망에 순애가 큰 풍파를 당합니다. 춘향에게 변학도 사또의 수작이 들어옵니다. “춘향아 네 맘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그러나 이제 이도령은 잊어라. 네 고을 관장에게 매임이 옳으냐, 어린 이도령에게 매임이 옳으냐. 어서 네가 말을 좀 해보아라.”
춘향이 아뢰기를, “사또, 소녀는 이미 이도령과 백년가약을 맺었사옵니다. 충신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않듯,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습니다. 천 번 죽어도 사또의 분부를 따를 수 없습니다.”
이때 사령이 나서서, ‘이 요망한 년아, 덧없는 이 세상 살아봐야 순간이라. 사또께서 너를 생각하여 하시는 말씀이지, 너 같은 기생 출신에게 정절이 무엇이냐. 신관 사또를 맞이함이 당연하거든 헛소리 하지 마라.’ 이때 춘향이 하도 기가 막혀 ‘충효열에 상하가 따로 있소이까. 자세히 들으시오. 기생이라 충효열녀가 없다 하시니 낱낱이 아뢰리다. 황해도 기생 농선이는 동선령에서 절개를 지켜 죽었고, 진주 기생 논개는 우리 나라의 충렬문에 모셔져 있으며, 청주 기생 화월이는 절개로 이름이 높고, 안동 기생 일지홍은 생열녀문이 세워졌사오니, 기생이라 하여 열녀가 없다 하지 마옵소서. 당초에 이 도령 만날 때에 태산같은 굳은 마음으로 정절을 맹세하였으니 누구라도 뺏지 못할 것이요, 제갈공명의 높은 재주로 동남풍은 빌었어도 일편단심 소녀 마음을 흔들지 못하리이다.
그러나 권력자 앞에서 나약한 소녀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춘향은 형틀에 묶여 곤장을 맞습니다. 한 대 한 대 매를 맞을 때마다 그 유명한 굳은 일편단심을 〈十杖歌〉로 응수합니다.
- 一片丹心 굳은 마음 一夫從事 뜻이오니.
- 이 매 맞고 영 죽어도 이도령은 못 잊겠소.
- 三綱五倫 알았으니 三淸洞 우리 낭군 이도령은 못 잊겠소.
- 四肢를 가른대도 死生同居 우리 낭군 사생간에 못 잊겠소.
- 오매불망 우리 낭군 온전히 생각나네.
- 육만번 죽인대도 맺힌 마음 변할 수 전혀 없소.
- 七寶紅顔 나 죽겠네.
- 八道 방백 수령님 治民하려 내려왔지 惡刑하려 내려왔소.
- 九曲肝腸 굽이 썩어 이 내 눈물 구년지수 되겠구나.
- 十生九死할지라도 십육세 어린 춘향 寃魂이 불쌍하오.
옥 같은 춘향의 몸에서 솟아나는 것은 붉은 피요 흘러내리는 것은 눈물이었습니다. 피와 눈물이 한데 흘러 붉은 냇물처럼 흘렀습니다. 춘향이 더욱 고집스럽게 말하기를, ‘소녀를 이리 능멸말고 능지처참하여 죽여 주면, 사후에 원조(冤鳥) 새가 되어 초혼조(招魂鳥)와 함께 울어, 적막강산 달 밝은 밤에 우리 이도령 잠든 사이 그 꿈속에서나마 나타나 보일 수 있으련만…’ 말을 하다 기절하고 맙니다.
*옥중 — 고난 속의 기다림
춘향이 차가운 옥방에 갇혀 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언제 풀려날지 기약이 없었습니다. 변사또의 핍박과 회유는 쉬지 않고 이어졌으나, 춘향은 한 번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시일이 흐를수록 몸은 쇠약해져 갔지만, 오히려 궅어진 절개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십오야 밝은 달은 띠구름에 묻혀 있고
서울 계신 우리 낭군 삼청동에 묻혔으니
달아 달아 보느냐. 님 계신 곳 나는 어이 못 보는고.
가는 길에 한양 삼청동 우리 님께 내 말 부디 전해다오.
옥방 안 깊은 밤에 이도령을 그리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달이 밝은 날이면 새어든 달빛을 바라보며 임이 계신 서울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습니다. 그래도 이도령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춘향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랑이란 기다림이며, 기다림이란 곧 믿음임을 춘향은 온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참어머님의 옥중 신세와 겹쳐진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하늘은 끝내 그 정절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한양에서 과거에 장원급제한 이몽룡이 상거지 차림으로 제일 먼저 남원 땅 옥에 갇힌 춘향을 찾아옵니다.
*옥중 재회: 그때 춘향이 꿈속에서 황금빛으로 나타난 이도령과 기쁘게 재회하는 단꿈을 꾸다가, 인기척에 놀라 깨어났는데 누더기 옷에 거지 차림으로 나타난 사람을 보니 처음에는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눈빛, 그 목소리만은 분명 그리워하던 낭군이었습니다. ‘도련님…’ 춘향이 가늘게 부르니 몽룡이 달려들어 손을 잡으며 ‘춘향아, 내가 왔다. 내가 왔노라.’ 두 사람이 서로 붙들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춘향이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이 모습이 웬일이오니까.’ 몽룡이 힘없이 말했습니다. ‘과거에 떨어졌노라. 너를 구할 힘이 없으니 어이할꼬.’ 춘향이 눈물을 닦으며 조용히 답했습니다.
‘오셨으니 괜찮사옵니다. 도련님이 오실 줄 믿고 기다렸으니 이제 뵈었으면 여한이 없나이다. 내일 변사또 생신잔치에서 저를 죽이려 한다 하오니, 그 전에 마지막으로 도련님 얼굴을 뵈었으니 이제는 죽어도 눈을 감겠나이다.’
몽룡이 춘향의 일편단심을 눈물로 들으며 손을 꽉 잡아 주었는데, 그 두 손 안에 하늘을 두고 맹세한 약속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윽고 다음날 아침 변사또의 생일잔치가 풍악을 울리며 성대하게 열립니다. 변사또가 기분 좋게 술잔을 기울이며 이르기를, ‘오늘 잔치가 이리 좋으니 詩 한 수 지어 볼 분이 없소이까.’ 하였습니다. 이때 누더기 차림의 걸인이 잔치 마당으로 성큼성큼 들어서며 큰 소리로 “이 놈이 詩 한 수 올려 드리리다.”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낙시(燭淚落時)는 민루낙(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에 원성고(怨聲高)라.
금술잔의 아름다운 술은 온 백성의 피요, 옥소반의 맛난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이 눈물 흘릴 때 백성도 눈물 흘리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드높더라.
시문을 받아 본 변사또는 내용을 몰라보고, 사령들은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아뿔싸 일 터졌다”며 슬슬 꽁무니를 빼며 횡설수설합니다. “어 추워라,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물 마른다, 목 마셔라.” 잔치판이 서늘하게 굳어지는 그 순간, 사방에서 우레 같은 소리가 터졌습니다. “암행어사 출두요!” 천지가 뒤집힌 듯 순식간에 잔치판이 뒤집어졌습니다. 변사또가 혼비백산하여 자리에서 굴러 떨어지고, 잔칫상은 뒤엎어지고, 관속들이 사방으로 달아났습니다. 사방에서 어사 군졸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이몽룡이 마패를 높이 들며 ‘변학도, 어서 나오라!’ 기고만장하던 변학도는 포박당하여 끌려 나왔습니다. 이몽룡이 어사 복장을 하고 상좌에 올라 본관 사또를 파직하고 죄수들을 문초합니다. 마지막에 이 몽룡이 묻습니다. “저 계집은 왜 옥에 갇혔느냐?” 형리가 보고하길 “변사또의 수청에 불응하여 옥에 갇혔나이다.” 이때 어사 나리가 춘향에게 말합니다. “수절한다고 사또의 명을 거역하였으니 어찌 살기를 바라겠느냐? 죽어 마땅하지만 내 수청을 받아주면 내 너를 살려줄 것이니, 이래도 거절하겠느냐? 그때 춘향이 기가 막혀 한마디 합니다. “내려오는 관장마다 개로 구나. 어사또 들으시오. 층암 절벽 높은 바위가 바람분들 무너지며, 푸른 대나무가 눈이 온들 변하리까? 그런 분부 마옵시고 어서 바삐 죽여주오.”
이때 어사또가 금낭을 열고 “춘향아 네 얼굴을 들라.” 춘향이 얼굴을 들어 어사또를 보니 어제 걸인으로 찾아왔던 꿈에 그리던 낭군이라. 춘향이 비틀거리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껴 말합니다. “어머나, 이게 꿈입니까? 생시입니까? 꿈이라면 안 깨고 싶습니다.” 눈물 반, 웃음 반으로 실성하듯 말합니다. 몽룡이 달려가 춘향의 손을 덥석 잡아 일으켜 세웁니다. “춘향아!”
이후 이몽룡과 성춘향은 서울로 올라가 정식으로 혼례를 올렸습니다. 임금께서도 춘향의 굳은 절개를 높이 치하하시며 정렬부인(貞烈夫人)의 칭호를 내리시어 기생 출신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 춘향의 절개는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 가장 깊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그 사랑에, 하늘도 마침내 감동하여 마패를 손에 든 임을 돌려보낸 것이었습니다.
식구님, 이것은 단순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생명시 해야 할 거룩한 참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16세 어린 소녀 춘향입니다. 춘향의 사랑에는 효(부모의 가르침을 잇는 것), 열(목숨을 걸고 약속을 지키는 것), 충(부정한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한 몸에 녹아 있습니다.
*세계의 정절 이야기와 견주어 본 한민족의 사랑이야기
물론 비슷한 정절을 노래한 이야기는 세계 곳곳에 있습니다. 정절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인류의 보편적 감정입니다. 그러나 그 차이를 비교해 보면 우리의 사랑 이야기와는 결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축영대는 사랑하는 양산백이 죽자 그의 무덤이 갈라지는 자리로 뛰어들어 한 쌍의 나비가 되어 날아갔습니다. 죽어서 사랑이 이뤄집니다.
영국의 줄리엣은 로미오 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자결하는 비극적 사랑을 말합니다.
페르시아의 라일라와 마즈눈은 평생 한 번도 살을 맞대지 못한 채 그리움 속에서 숨을 거두어 영적으로만 결합합니다.
이 모두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지요. 그러나 ‘죽음’으로 사랑 이야기가 끝납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죽었거나, 사랑을 잃고 죽었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죽은 슬픈 엔딩입니다.
그런데 우리 춘향의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절개를 생명처럼 여겨 죽음앞에 결연했지만, 살아남았습니다! 그것도 그냥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부패한 권력을 처벌하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며, 나라가 그 사랑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넘어설 수 없었던 신분의 벽이 무너지는 가운데, 사랑하는 임의 손을 잡고 활짝 웃으며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 사랑의 해피엔딩입니다.
중국: 절개는 가문의 명예나 부모의 뜻이 결합된 형태가 많습니다.
일본: 절개는 상관에 대한 충성심의 발로로 강조되곤 합니다.
서양: 절개가 귀족적 질서 속에서의 명예로운 헌신에 가깝습니다.
중동: 절개는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가치입니다. 어기면 비극적 종말을 맞는 서사가 주를 이룹니다.
한국: 절개는 의무나 수동적 명령이 아니라 자발적인 본심의 사랑입니다.
춘향의 사랑이 곧 우리 민족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런 사랑이 하늘부모님께서 그토록 보고 싶어 하셨던 참사랑의 모습이었습니다. 음란으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려면, 어떤 사랑이 필요했겠습니까? 죽음 너머까지 가는 사랑, 권력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사랑,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 사랑, 그리고 마침내 모두를 기쁘게하는 사랑 — 바로 그런 사랑의 DNA를 가진 민족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 한민족에 하늘은 참부모님을 보내셨다
자, 이제 우리는 처음의 그 두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한민족을 선민으로 택하셨는가? 왜 참부모님은 한국에 오셨는가?
타락이 음란이었으므로, 복귀는 정절이어야 했습니다. 그 정절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이야기가 한민족의 사랑 이야기였습니다. 그 정절의 가장 빛나는 대표적 인물이 춘향이었습니다. 그런 배경하에서 하늘부모님은 당신의 첫 번째 사랑을 받을 ‘독생녀’를 이 한반도에 탄생시키신 것입니다.
참아버님 문선명 선생님은 1920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참어머님 한학자 여사는 1943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한민족이 일제의 강점 아래 가장 비참하던 시기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참어머님은 조원모 외할머님, 홍순애 대모님, 한승운 아버님의 혈통을 따라 3대 독녀의 신앙 가정에서 독생녀를 청주 한씨 가문을 통해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아담해와가 사춘기 16세때 타락한 것을 뒤집기 위해 참아버님께서는 16세 부활절 새벽 산상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재림의 사명을 이어받으셨고, 참어머님은 16세때 참아버님과 어린양 혼인잔치를 통해 인류역사 최초로 참부모의 자리에 서신 것입니다.
* 우리의 사명-참부모님의 발자취를 잇자
그렇다면 우리는, 참부모님의 축복가정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첫째, 바로 우리 자신이 ‘춘향 같은 참사랑’을 이뤄야 합니다. 한 번 마음을 준 임에 대한 일편단심을 끝까지 지키는 것, 그것이 곧 축복가정의 본분입니다. 그러나 오늘 세상은 어떻습니까? 결혼한 가정 절반이 이혼으로 끝납니다. 변치 말아야 할 사랑이 점점 흐려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烈의 가치가 시대착오가 아니라 가장 빛나는 가치입니다. 우리 축복가정 한 가정 한 가정이 ‘일편단심의 부부사랑’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일개 가정이 아니라 종족적메시아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효정문화·심정문화를 전 세계로 전파해야 합니다. 한류가 그저 노래 한 곡, 드라마 한 편이 세계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한민족의 심정문화, 그 따뜻한 정(情), 변치 않는 의리, 부모를 모시는 효정, 사랑을 생명처럼 지키는 절개, 이것으로 세계인의 가슴을 적셔야 합니다. 이것이 곧 효정문화입니다.
*맺음말 — 일어나라, 한민족이여
사랑하는 식구님, 참부모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국 땅은 앞으로 온 세계의 산봉우리와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생각할 때가 올 것입니다.”
이 말씀이 그저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부추기시려는 말씀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알고 하늘을 모시고 세계가 우리를 부러워할 만한 모습으로 살아야 이뤄지는 말씀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음란으로 무너졌던 그 자리에, 우리는 참사랑·순결·순애·순혈·정절·절개로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춘향이 형틀 위에서 십장가로 ‘일편단심’을 외쳤다면, 우리는 거짓 사랑이 만연한 시대에 ‘참사랑’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런 사랑가로 가득찬 천운의 땅, 세계평화의 발신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한반도의 천운이 세계로 뻗어 나가,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가 활짝 열릴 것입니다. 하늘부모님과 천지인참부모님의 한없는 축복이 사랑하는 식구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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