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12) 승리자가 되려는 자에게 부딪혀 오는 모든 환경과 여건은 협조하는 환경이 아니라 반대하는 환경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에도 마음만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이 없는 승리는 우연한 승리입니다. 신념에 불타는 승리적인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시련이라도 이겨내기 전에는 승리의 월계관을 쓸 수 없습니다.
(63.10.18) 지도자는 부하를 더 잘 먹이고 더 잘 입혀 주고 싶어해야 하지만, 만일 위급할 때는 비참한 길로 몰아서라도 보내야 합니다. 오늘도 이 길을 걸어오는 식구들을 보고 가슴이 아팠지만, 그럴수록 그들을 내몰아서라도 하루바삐 천주주의를 이루어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선생님은 옛날에 죄인으로 형무소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승리는 눈물과 피땀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일할 때마다 하늘은 살길을 열어 주십니다.
(70.5.24) 탕감길은 반드시 자기 자체의 소모가 벌어져야 됩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시간을 소모했으며, 얼마나 자기 자신을 소모했느냐? 이것이 탕감 요인을 제거시키느냐, 못 시키느냐를 좌우합니다. 이렇게 볼 때에 신앙길은 희생의 길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요인을 투입하는 길입니다. 전체를 중심삼은 희생과 자기 자체를 중심삼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그 시간이 길고 자기 자체의 희생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많이 청산 지을 수 있는 것은 정당한 이치입니다.
참어머님께서 옥중에 들어가신 지 10개월을 맞이하고 계십니다. 10개월은 한 어머니가 자식을 잉태하여 해산하기까지의 10개월과 다르지 않습니다. 참어머님께서는 지금 그 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극심한 산고의 고통을 이겨내고 계신 것입니다.
아버님의 흥남감옥과 비교하면, 정신적·육체적으로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울까요? 둘 다 한계상황입니다. 아버님도 기성 교회의 고발과 남한 스파이 혐의로, 공산정권의 정치재판에 의해 구속되셨습니다. 참아버님은 흥남감옥에서 2년 8개월간 상상을 초월하는 극한 상황에서 강제노동을 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UN군의 진격으로 구사일생 출옥하셨습니다. 아버님의 해방은 인간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참아버님의 책임분담과 부모님·소수 식구들의 정성도 있었지만, 거의 하나님이 도우신 것입니다. 당시 공산정권의 재판은 구색을 맞추는 형식적 과정이었을 뿐입니다. 공산정권은 아버님뿐만 아니라 종교인들과 죄수들을 모두 처형하려 했습니다. 생사가 오가는 급박한 시간에, 하나님은 참아버님을 구출하시기 위해 1950년 10월 14일 새벽 UN군의 흥남 폭격으로 감옥 담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참아버님은 무너진 형무소 담벽을 걸어서 나오셨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참아버님은 6·25 남북전쟁을, 재림 메시아를 구출한 전쟁이기에 성전(聖戰)이라 부르셨습니다.
참어머님의 재판도 정치재판입니다. 사법재판의 한도를 넘어섰습니다.
앞으로의 사법 일정은 이렇습니다. 2026년 7월 10일(금) 결심공판이 있습니다. 결심공판에서는 특검이 죄목을 다 읽은 후 형량을 선고해 달라고 구형합니다. 이후 변호인이 참어머님을 위해 변론하고, 마지막에 참어머님께서 최후 진술을 하십니다. 그 뒤 판사 3명이 2~4주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쳐, 8월 12일쯤 서울지방법원의 1심 선고 판결을 내릴 예정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직 확정판결은 아닙니다. 우리 쪽이든 특검 쪽이든 불복하면 고등법원에 항소하고, 또 만족하지 않으면 대법원에 상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7일 이내에 고등법원에 항소(4~8개월 소요)하고, 대법원에 상고(3~6개월, 법리적 문제점이 없는지 판단)하여, 형이 무죄·벌금형·유죄로 확정됩니다. 그런데 형이 3년 이하이면 상황에 따라 집행유예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국내 활동은 자유롭더라도 해외 출국은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하기에, 완전한 자유는 아닙니다.
그러면 참어머님이 앞으로 어떻게 되실지, 하늘부모님은 다 아실까요? 사실 하나님도 모르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다 아신다면 고통스러워하거나 긴장하거나 슬퍼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도 모르시기에 가슴을 졸이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뜻을 반드시 이루시려 하지만, ‘인간 책임분담’의 영역만큼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책임을 완수하여 승리할지, 아니면 실패하여 뜻을 연장시킬지는 결코 하나님이 미리 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며, 오직 인간의 책임분담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사실 사법적인 재판으로만 간다면 어떤 판결이 나올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법은 법리적 잣대로 가기 때문에 세상 분위기나 바람을 타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치재판은 다릅니다. 일본도 사법재판이었다면 민법 문제였기에 절대 해산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대중의 감정에 따라가는 정치재판을 걸었기에 해산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무너지지 않는 신앙, 하늘부모님과 참부모님처럼 고난을 인내와 희망으로 넘어오신 절대적 신앙을 갖고, 멀리 보고 가야 합니다.
고난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고난과 영광을 반대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난과 영광은 한 세트로 봅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그냥 주어집니까? 지옥 훈련이라 불리는, 죽을 것 같은 고난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주어지는 것입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처럼, 화가 한 바퀴 구르면 복으로 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좋고 나쁨이 한 세트이고, 복과 화가 한 세트이며, 영광과 고난이 한 세트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탕감복귀입니다. 탕감해서 복귀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복귀도 못 하고 망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탕감을 받으면서 불평하고 포기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죄 없이 죄값을 받아 누구나 억울한데도 그저 순응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지금 당장 앞이 안 보여도 희망을 갖고 인내하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늘부모님의 꿈을 품고 인류 구원의 열쇠를 갖고 움직였고 죄를 짓지 않았다면, 하늘부모님께서 어느 순간이든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앙인이 천지창조와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이 다 하셨다고 믿으면서도,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은 갖지 못합니다. 그런 신앙인이 의외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축구는 발로 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발로 공을 찰 때 손은 가만히 있습니까? 온몸이 함께 움직입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 축구를 더 잘하려고 쉬지 않고 애씁니다. 발이 공을 차는 것은 보이는 현상일 뿐, 그 일의 대부분은 보이지 않는 마음이 순간순간 결정하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보이지 않을 뿐이지,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에 깊이 관여하고 계십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축구와 다른 것은, 인간에게 절대적 자유의지와 책임분담을 주셨기에 하나님 마음대로 다 하실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인간도 긴장되는, 살아 있는 역사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슬프기도 하고, 그래서 재미도 있습니다. 인류 복귀 역사는 다 함께 만들어 가는 생생한 역사입니다. 따라서 항상 긴장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2026.3.8 일본가정연합 해산 후 일본 식구에게 주신 옥중 어머님 말씀)
“사랑하는 일본 식구 여러분, 힘내세요. 하늘은 분명 살아 계시고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하늘은 결코 침묵하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긴 인류 역사 6000년 섭리 속에서 하늘은 끊임없이 역사를 이끌어 오셨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하는 자녀들을 향한 뜻을 이루기 위해 역사하고 계십니다. 결국 하늘부모님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참부모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은, 재판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늘부모님께서도 어떻게 풀릴지 결정하실 수는 없지만, 반드시 뜻은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이 몽시를 받아 어떻게 될 거라고 예언하기도 하는 것은 왜 그럴까요? 그것은 판사가 판결을 결정하면 영계가 그때야 그 결과를 알고,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에게 꿈이나 몽시로 미리 알려 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정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선고 전에 판사들이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또 더 큰 외압이 있으면 선고 내용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결론은 절대 선(善)의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부모님은 절대자로서 반드시 뜻을 이루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뜻에 대한 예정은 절대적이고 인간에 대한 예정은 상대적이라는 원리가, 바로 그런 뜻입니다.
참어머님께서는 지금 감당하기 어려운 감옥 생활을, 하늘부모님의 꿈 하나로 이겨내고 계십니다. 열 달을 견디고 계신 그 인내가, 우리에게는 살아 있는 설교입니다. 우리가 참어머님을 위해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정성은, 흔들리지 않는 효정입니다. 어떤 판결이 나오든 멀리 보고, 하늘부모님의 뜻을 품고, 하늘부모님과 참부모님처럼 이 고난을 인내와 희망으로 넘어서는 것입니다.
고난과 영광은 한 세트입니다. 지금 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고난의 탕감 끝에는, 반드시 놀라운 복귀의 판도가 열릴 것입니다. 하늘은 우리가 모르지만, 우리가 치르는 이 길고 큰 탕감을 통해 한판 더 큰 전화위복을 계획하고 계실 것입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이 있습니다.
흔들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참어머님과 함께, 하늘부모님의 품 안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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