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주신 한글, 세계를 하나로 잇는 말

하늘이 주신 한글, 세계를 하나로 잇는 말 (‘세종의 나라’에서 ‘하늘부모님의 나라’로)

하늘이 주신 한글

(원리강론 567~568p) 한 부모의 같은 자손으로서 동일한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것을 표현하는 언어가 다름으로 인하여 서로 그것을 통할 수 없게 된 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참부모님을 모시는 하나의 대가족의 이상세계(理想世界)가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언어가 통일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탄의 뜻을 높이려던 바벨탑으로 인하여 언어가 혼잡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탕감복귀 원칙(蕩減復歸原則)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높이는 하늘탑을 중심하고 모든 민족의 언어가 하나로 통일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면 그 언어는 어느 나라 말로 통일될 것인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너무나 자명하다. 자식은 부모의 말을 배우는 법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부모 되신 참부모님이 한국으로 재림하시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분은 틀림없이 한국 말을 쓰실 것이므로 한국어(韓國語)는 바로 조국어(祖國語)가 될 것이다. 따라서 모든 민족은 이 조국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온 인류는 한 나라 말을 사용하는 한 민족이 되어 한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이다.

우리는 원리강론을 통해 한국어가 장차 인류의 조국어가 된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한글에 자부심을 품어 왔습니다. 그러나 한글이 다른 언어에 비해 구체적으로 무엇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잘 몰랐습니다. 저는 이제야 한글을 깊이 탐구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숨 쉬듯 써 온 우리말인데, 그 우수함을 제대로 모르고 살다가 이제야 눈이 뜨인 느낌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에 사는 동포들도 한글의 가치를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잘 모를 것입니다. 왜 몰랐을까요? 과거에는 한국이 후진국이어서 아메리카가 부러웠고 일본의 발전이 부러웠기에 한글도 후진적으로 대접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세 가지 변화가 우리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첫째, AI 덕분에 누구나 세계의 언어와 한글을 세밀하게 비교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 한국의 국력이 세계 상위권에 올라섰습니다. 셋째, 한류를 타고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을 통해 “한국어는 최고다, 부럽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글자의 짜임과 소리의 원리, 섬세한 형용사와 조사, 마음 깊은 곳까지 드러내는 감정 표현, 무한대로 확장되는 의성어와 의태어. 그 차이를 알게 되면서 비로소 한국어의 가치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대단한 글이었어”

오늘은 한글이 어떤 고난 속에서 태어났는지와 미래적 비전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최근 김진명 작가의 소설 “세종의 나라”를 읽었습니다. 소설은 가상의 인물들을 통해 역사책에서 다 담지 못한 백성의 삶과 한글 창제의 숨 막히는 우여곡절을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한글은 한 천재가 만든 발명품이 아닙니다. 백성을 부모의 심정으로 사랑한 한 임금, 그의 집요한 집념과 명석한 지혜, 지칠 줄 모르는 연구심 위에 하늘이 역사하셔서 태어난 글입니다. 저는 이것을 믿습니다.

사대의 나라가 된 근본 이유

조선은 고구려나 통일신라, 고려 때보다 중국에 대한 사대가 훨씬 깊었습니다. 당시 명나라 주변에는 류큐(오키나와), 일본, 베트남, 여진, 몽골 등 여러 조공국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도 조선은 명나라를 더 섬긴 나라입니다. 조선은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고려를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입니다. 회군의 첫째 명분이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를 수 없다’는 이소역대(以小逆大)였습니다. 나라 이름조차 ‘조선’과 ‘화령’ 두 안을 명나라에 올려 정해 받았습니다. 태조는 명 황제에게 자손 대대로 충성을 바치겠다는 글을 충성맹세문을 올렸고, 명나라로부터 조선은 가장 충실한 제후국, ‘동방예의지국’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법은 명의 ‘대명률’을, 달력은 명의 ‘대명력’을 가져다 썼고, 책도 글자도 중국 것을 빌려 썼습니다. 조선의 임금이 즉위하면 명 황제의 책봉을 받아야 했고, 황제의 칙사가 오면 임금과 신하들이 경복궁에서 맞이한것이 아닌 도성 밖 모화관(慕華館)의 영은문(迎恩門), 지금의 서대문구 독립문 자리까지 나가 맞이했습니다. 신하들은 때로 임금보다 명나라의 눈치를 더 살폈습니다.

사대의 뿌리는 글이었습니다. 조선에서 가장 무서운 힘은 재산도 칼도 아닌 글이었습니다. 글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양반과 평민이 갈렸고, 벼슬길이 열리거나 닫혔으며, 세금과 군역의 무게가 달라졌습니다. 글은 누구나 배울 수는 있었지만, 실제로는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글이 아니었습니다. 생계에 매인 농민들이 그 어려운 한자를 배우고 쓰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백 명 가운데 네댓 명만 글을 알았다고 할 만큼 글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글을 모르면 종 취급을 받게 됩니다. 글을 모르는 백성은 법이 있어도 몰라서 억울함을 당했습니다. 이는 조선만의 사정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세계 대부분이, 한자의 본고장 중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서열은 임금위에 중국 황제가 있었고, 황제위에 공자 맹자 성현들이 있었습니다. 중국 황제도 성현의 서책을 통해 군신간의 예를 따랐습니다. 그러니 매일 사서삼경을 읽었던 사대부들은 늘 중국의 성현과 황제만 바라보았고, 남의 글자를 빌려 쓴다는 열패감은 사대의 가장 깊은 뿌리가 되었습니다. 백성도 나라도 한자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사대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 따로, 글 따로, 읽기 따로

더 근본적인 언어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말과 중국말은 어순이 다릅니다. 우리말은 ‘주어+목적어+동사’, 중국말은 영어처럼 ‘주어+동사+목적어’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한자를 빌려 우리말의 어순대로 적으려고 향찰과 이두를 만들어 썼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 문장으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구분표기특징
우리말나는 교회에 갑니다.주어+목적어+동사
영어.  중국어I go to church.   我去教堂주어+동사+목적어
이두식我隱 敎堂良 去爲尼관청 서리들이 문서에 사용

향찰과 이두도 결국 한자를 알아야 읽을 수 있었으니, 백성에게는 여전히 닫힌 문이었습니다. 지방 관청의 서리들은 이두로 문서를 썼고, 글 모르는 백성은 글 아는 사람에게 지배당했습니다. 세종대왕과 사대부들은 글을 쓸 때는 철저히 중국식 어순의 한문을 썼습니다. 그 글을 읽거나 가르칠 때는 한자를 우리 음으로 읽으며 우리말 토(구결)를 달았고, 일상의 말은 온전한 우리말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논어』 첫 구절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는 “자왈(子曰) 하시되,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로 읽었습니다. 뜻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입니다. 말 따로, 글 따로, 읽기 따로였던 셈입니다. 이러니 백성은 배울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평생 까막눈으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글을 아는 사람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1446년 반포된 『훈민정음』 서문에는 그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나랏 말ᄊᆞ미 中듀ᇰ國귁에 달아 文문字ᄍᆞᆼ와로 서르 ᄉᆞᄆᆞᆺ디 아니ᄒᆞᆯᄊᆡ 이런 젼ᄎᆞ로 어린 百ᄇᆡᆨ姓셔ᇰ이 니르고져 호ᇙ 배 이셔도 ᄆᆞᄎᆞᆷ내 제 ᄠᅳ들 시러 펴디 몯ᄒᆞᇙ 노미 하니라. 내 이ᄅᆞᆯ 爲윙ᄒᆞ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여듧 字ᄍᆞᆼᄅᆞᆯ ᄆᆡᇰᄀᆞ노니 사ᄅᆞᆷ마다 ᄒᆡᅇᅧ 수ᄫᅵ 니겨 날로 ᄡᅮ메 便뼌安ᅙᅡᆫ킈 ᄒᆞ고져 ᄒᆞᇙ ᄯᆞᄅᆞ미니라.” 이것은 군황의 말이 아닙니다. 불쌍한 자녀를 걱정하는 부모의 말입니다. 세종이 꿈꾼 글자는 백성이 한번 보면 익힐 수 있는 글자, 입에서 나온 소리를 그대로 적을 수 있는 글자, 사대부의 독점을 끊어낼 글자, 조선을 강하게 할 글자입니다. 훈민정음은 그 자주 정신의 꽃이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글자가 초성 17자와 중성 11자, 모두 28자입니다.

아버지 글자(子音 17자) : ㄱ ㅋ ㆁ ㄷ ㅌ ㄴ ㅂ ㅍ ㅁ ㅈ ㅊ ㅅ ㆆ ㅎ ㅇ ㄹ ㅿ

어머니 글자(母音 11자) : ㆍ 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자음은 소리 낼 때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습니다.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ㄴ은 혀끝이 윗잇몸에 닿는 모양, ㅁ은 입 모양, ㅅ은 이 모양, ㅇ은 목구멍 모양입니다. 여기에 획을 더해 소리가 세지는 원리를 담았습니다. 모음은 하늘(ㆍ), 땅(ㅡ), 사람(ㅣ), 곧 천지인(天地人)을 본떴습니다. 우주의 질서와 사람의 몸이 한 글자 안에서 만난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가정의 원리를 봅니다. ‘참부모’를 횡으로 늘어 쓰면 ‘ㅊㅏㅁ ㅂㅜ ㅁㅗ’입니다. 읽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초성 중성 종성을 모아 놓으면 가독성이 아주 좋습니다. 초성은 아버지 글자, 중성은 어머니 글자, 종성은 자녀 글자라 할 수 있습니다. ㄱ, ㄴ, ㄷ 같은 아버지 글자는 홀로는 온전한 소리를 이루지 못하고, ㅏ, ㅓ, ㅗ 같은 어머니 글자와 만나야 비로소 소리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자녀 글자를 종성에 붙여 쓰면 자녀가 번창하는 것처럼 음절이 엄청 확대됩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가 모여 한 가정을 이루는 모습입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참가정의 원리가 글자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종횡의 존칭어가 발달하여 참가정을 만들기 위해 하늘이 창제한 글자입니다.

반대와 수난속에 출발한 글

이렇게 쉬운 글자가 나오자 조정이 술렁였습니다. 1444년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를 비롯한 일곱 학자가 연명 상소를 올렸습니다.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반대 이유내용
① 사대에 어긋남중국을 섬기고 흠모하는 도리에 어긋남
② 오랑캐의 글몽골·여진·일본처럼 제 글자를 갖는 것은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길
③ 학문의 쇠퇴쉬운 언문으로 선비들이 성리학과 한자를 멀리함
④ 성급한 추진급하지 않은 일에 힘을 쓰고, 재상들과 의논도 없이 추진

세종은 “너희가 운서(韻書)를 아느냐”며 엄히 꾸짖고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사대부는 드러내 반대하지는 않았을 뿐, 명나라와의 마찰을 걱정하고 ‘배우지 못한 자들의 상스러운 글’이라는 편견 속에 침묵했습니다. 세종이 떠난 뒤에도 사대부들은 한글을 나라의 공식 문자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공문서와 과거 시험, 실록과 문집은 조선이 끝날 때까지 한문으로 쓰였습니다. 한글은 ‘언문(諺文)’, ‘암클’이라 불리며 여성과 서민, 하급 실무자의 글로 낮춰졌습니다. 그러나 세종의 집념과 왕권 덕분에 한글은 사라지지 않고 백성의 삶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었습니다. 왕이 반포했어도 천대받았는데, 만약 뜻이 품은 학자가 만들었다면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이후 수난도 있었습니다. 1504년, 연산군은 자신을 비방하는 한글 투서가 나돌자 한글을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쓰지도 못하게 하고, 한글 책을 거두어 불태우게 했습니다. 반포 후 60년도 채 되지 않아 금지령이 내려진 것입니다. 이 탄압은 1506년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폐위시키시어 하늘이 한글을 지켜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중 1937~45년에는 조선어를 말살하려고 했습니다. 해방되어 겨우 살아남은 것입니다.

마침내 1894년 갑오개혁 때, 고종은 칙령 제1호 「공문식」에서 “법률과 칙령은 모두 국문을 근본으로 삼고, 한문 번역을 붙이거나 국한문을 섞어 쓴다”고 정했습니다. 반포 후 448년 만에, ‘언문’이 비로소 나라의 으뜸 글인 ‘국문(國文)’이 된 것입니다. 이후의 걸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연도사건
1896년서재필 등이 창간한 《독립신문》이 순한글과 띄어쓰기를 도입해 민중을 깨움
1910년대 초주시경 선생과 제자들이 ‘크고 바른 하나의 글’이라는 뜻의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임
1921년조선어연구회 창립, 맞춤법과 사전 편찬에 착수
1933년《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오늘날 맞춤법의 뼈대 완성
1970년 무렵박정희 정부의 한글 전용 정책으로 공문서와 교과서가 한글 중심으로 전환
1989년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 제정
1997년《훈민정음 해례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광복 당시 80%에 가깝던 문맹률은 한글 덕분에 한 세대 만에 10%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시대에 들어서는 자음과 모음을 모아쓰는 원리와 천지인 자판 덕분에, 현재는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과학적으로 입력되는 문자임이 드러났습니다.

세종께서 한글을 만들지 않으셨다면 오늘의 한국어는 어떠했을까? 우리는 여전히 어려운 한자에 매여 대다수가 까막눈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일제의 민족 말살 앞에서 우리말은 기록할 글자 없이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광복 후의 문맹 퇴치도, 한강의 기적도, 정보화 강국도, 한류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글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늘은 이 민족을 위해 오백여 년 앞서 글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백성을 부모의 심정으로 사랑한 임금의 간절함에 하늘이 응답하신 것입니다. 한글은 하늘이 세종대왕을 통해 창제해 주신 글이라고 믿습니다.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의 핵심 주제가 무엇입니까? 한민족이 세계를 구원할 특별한 민족으로 오래전부터 택함을 받아 준비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신화속에 담긴 한민족의 뿌리, 하늘을 섬긴 종교문화, 충효열, 한국어, 심정문화, 한류 모두 디딤돌이었습니다. 그 위에 참부모탄생, 원리말씀, 홀리마더한으로 한민족선민대서사시가 한국에서 완성되고, 세계로 나아가 하늘부모님의 꿈을 이루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가운데 단 하나라도 빠지면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소리글자인 한글이 소통의 넓이를 책임진다면, 뜻글자인 한자의 어원은 사유의 깊이를 채워 줍니다. 의 ‘효(孝)’ = 늙은이(老) + 아들(子)이 업은 모습이라는 것을 알면 효가 더 깊이 다가옵니다. 배우기는 어렵더라도, 진리와 문학의 발전과 깊은 심성을 기르는 데 한자의 뜻은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글자를 무조건 섞어 쓰기보다, 겉은 편리한 한글로 쓰되 그 속뜻인 한자 어원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음미하는 고급 언어 문화를 가꾸어 가기를 바랍니다. 넓이와 깊이를 함께 갖춘 언어, 그것이 전세계를 품을 언어입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한국어의 세계화는 반드시 참부모님의 말씀과 함께 가야 합니다. 한글만으로, 한류로만 나아가면 반드시 암초에 걸립니다. 유행은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보십시오. 라틴어는 기독교와 함께 천 년 넘게 유럽의 공용어가 되었고, 아랍어는 이슬람경전과 함께 넓은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언어는 소리와 표기만이 아니라 깊은 진리를 실어 나를 때 비로소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문화, 하나의 진리, 하나의 신앙을 이루려면 하나의 언어가 필요합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처럼 자식은 부모의 말을 배웁니다. 인류의 참부모님께서 쓰신 말이 곧 인류의 조국어가 되는 것입니다. 한자 문화권의 이웃들을 보십시오. 중국은 수천 자의 한자를 익혀야 하고, 일본은 한자와 히라가나, 가타카나 세 가지 문자를 함께 쓰며 한 한자를 여러 가지로 읽어야 합니다. 그들은 지금도 문자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역사의 탕감법으로 볼 때, 한때 한글을 말살하고자 했던 일본이 도리어 한글의 가치를 국가적으로 앞장서 받아들이는 날이 오리라 기도합니다. 그러면 중국이 영어보다 한글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순식간에 한글이 세계의 조국어로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원리 마지막에 예언된 것입니다.

한글이 혹독한 시련을 거쳐 세계인의 하나의 글이 될 천명을 갖고 태어났듯이, 우리의 참부모님과 원리말씀도 지금은 혹독한 시련을 당하고 있지만 천명을 갖고 출현하였기에 반드시 하늘부모님의 꿈을 실현하실 것입니다. 참부모님과 원리말씀도 전화위복으로 세계의 만백성을 한 분 하늘부모님 아래 하나의 심정문화 세계를 완성시키는 최후의 종교적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오백여 년 전 한 임금이 가장 낮은 백성의 아픔을 글자로 바꾸어 주었듯, 이제 한글이 참부모님의 말씀을 싣고 인류의 평화와 상생의 길을 열 때, 우리는 비로소 ‘세종의 나라’를 넘어 ‘하늘부모님의 나라’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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