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hana12sg

  • 한민족선민대서사시 ‘孝情’

    한민족이 선민으로 선택받은 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하늘부모님의 지상천국을 건설하려면 그에 걸맞은 심성이 먼저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 바탕이 바로 ‘효정(孝情)’입니다. 한민족이 선민으로 부름 받은 배경에는 바로 이 효정의 심정이 있습니다. 참부모님 말씀을 함께 훈독하겠습니다.

    (참어머님 자서전 중) 효정을 생각하면 나는 늘 가슴속에 큰 슬픔으로 자리 잡고 있는 큰아들 효진이와 둘째 아들 흥진이가 떠오릅니다. 부모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그 길로 용감히 나아가는 사람이 효자입니다. 그런 효자는 섬김의 정신으로 사람들을 대하기에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고, 반드시 뜻을 이룹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모두 섬기는 “효정”은 그래서 위대합니다. 우리 통일문화의 특색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효정을 근간으로 하는 심정문화”입니다. “孝情”은 하늘부모님을 향한 우리의 정성과 사랑입니다.

    [孝의 의미]

    ‘孝’라는 글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주신 사랑과 생명과 혈통에 진심으로 감사하여, 의무감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시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사랑하기 때문에 드리는 것, 그것이 진정한 효입니다.

    오늘 저는 한민족이 수백 년을 가슴에 품어온 한 소녀의 이야기를 꺼내려 합니다.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늘이 선택한 한민족의 DNA 깊은 곳에 새겨진 孝情의 원형이며, 하늘부모님께서 한민족을 선민으로 부르신 이유 중 하나입니다. 바로 ‘심청전(沈淸傳)’입니다.

    어진 곽씨 어머니는 정성들여 심청을 낳고 7일만에 세상을 하직하니 앞 못보시는 심봉사 애시 안고 젖동냥 밥동냥으로 애기를 지성으로 길러내어 6살이 되었을 적에

    [밥을 빌러 나서는 심청]

    하루는 심청이 아버지께 여쭈었다. “까마귀 같은 새짐승도 저녁이 되면 먹을 것을 물어다가 먹일 줄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 새짐승만 못하겠어요? 아버지 눈 어두우신데 밥 빌러 가시다가 엎어져서 상하기 쉽고, 비바람 부는 궂은 날과 눈서리 치는 추운 날이면 병 나실까 밤낮으로 염려됩니다. 오늘부터 제가 나서서 밥을 빌어다가 끼니 걱정 덜게 해드리겠어요.” 심봉사가 하는 말이, “네 말이 기특하구나. 인정은 그러하나 어린 너를 내보내고 앉아 받아먹는 내 마음은 어찌 편하겠느냐.” 심청이 다시 여쭈었다. “자로는 백리 길에 쌀을 져다 부모를 봉양했다는데, 사람이 예나 지금이 다르겠어요, 고집하지 마셔요.” 심봉사가 옳게 여겨, “기특하다 내 딸아, 효녀로다 내 딸아.” 하고 허락했다.

    심청이 이날부터 밥 빌러 나설 적에, 앞섬 없는 겹저고리 이렁저렁 얽어메고, 버선 없이 발을 벗고, 헌 바가지 노끈 매어 손에 들고, 엄동설한 모진 날에 추운 줄을 모르고 이집 저집 문앞 문앞 들어가서 간절히 비는 말이, “어머니는 세상 버리시고 우리 아버지 눈 어두워 앞 못 보시는 줄 뉘 모르시겠어요? 십시일반이오니 밥 한 술 덜 잡수시고 주시면 눈 어두운 저의 아버지 배고픔을 면하겠습니다.” 하니, 보고 듣는 사람들이 마음에 감동하여 밥 한 술, 김치 한 그릇을 아끼지 않고 주며, 먹고 가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심청이 하는 말이, “추운 방에 늙으신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실텐데 저 혼자만 먹겠습니까? 어서 바삐 돌아가서 아버지와 함께 먹지요.”

    이렇게 얻어서 두세 집 밥을 모아서 넉넉하면 급히 돌아와서 “아버지 춥고 시장하지 않으셨어요, 오래 기다리셨지요.” 심봉사가 두 손 덥석 잡고, “손 시렵지.” 하며 손을 입에 대고 훌훌 불며, 발도 차다고 어루만지며, 혀를 끌끝 차고 눈물을 글썽이며, “애고 애고, 애닯구나. 무정하다 내 팔자야. 너를 시켜 밥을 빌어먹고 살잔 말이냐? 애고 애고, 모진 목숨 구차히 살아서 자식 고생만 시키는구나.” 심청의 극진한 효성으로 아버지를 위로하기를, “아버지 그런 말씀 마셔요. 부모를 모시고, 자식의 효도 받는게 이치에 떳떳하고, 사람의 도리에 당연하니, 그런 걱정일랑 마시고 진지나 잡수셔요.” 하며 아버지 손을 잡고 “이것은 김치고, 이것은 간장이어요, 시장하신데 많이 잡수셔요.”

    [진정한 孝와 한민족만의 고유한 효 개념]

    이 장면을 보시면서 무엇이 느껴지십니까? 저는 이 소녀에게서 ‘효를 한다’는 의식이 전혀 없다는 것을 봅니다. 눈먼 아버지를 지극히 사랑하기에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孝입니다.

    그런데 한민족의 이 효심이 얼마나 특별한지 아십니까? 세계 어느 나라에도 한국의 ‘孝’를 1대 1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가 없습니다. 인공지능에게 ‘효’를 다른 언어로 번역해 달라고 하면, 정확히 대응되는 단어가 없다고 합니다. 진리를 가르치는 성경조차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원문인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는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레19: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처럼 ‘효’라는 말 대신 ‘공경하라, 경외하라, 순종하라’는 단어를 씁니다. 서구문화애서는 ‘Filial piety(필리얼 파이어티.자식의 책임)’이 단어들은 한국적 孝와는 그 결이 다릅니다. 한국적 효심은 전 세계에서 당연한 것이 아닌, 한민족만의 고유한 심성인 것입니다.

    [심청의 생명을 넘어선 효성]

    심청이 거동 보소. 두 손을 합장하고 일어나서 하느님 전 비는 말이,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느님 전에 비나이다. 심청이 죽는 일은 추호라도 섧지 아니하여도, 병든 아버지 깊은 한을 생전에 풀려하고 이 죽음을 당하오니 천지신명은 감동하사 어두운 아비 눈을 밝게 띄워 주옵소서.”

    孝라면 세계 어디서나 부모님께 드리는 것 아니냐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민족의 효심은 그 깊이가 다릅니다. 심청전을 외국인에게 이야기하면 공포스럽다고 합니다. 어떻게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자기 생명까지 바치느냐는 것입니다. 요즘은 한국인들도 심성이 완악해져서 죽음을 걸고 애비 눈 뜨게 하는 것은 불효자라고 심청의 효를 폄훼합니다. 그러나 하늘은 이 심청의 생명을 넘어선 효를 통해 가르치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심청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지 못하면 자식으로서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는 효심, 그 애비의 한을 풀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하겠다는 자녀된 마음입니다. 그 생명을 넘어선 효심에 하늘이 감동하사,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 같은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더욱이 아버님 혼자만 눈을 뜬 것이 아니라 모든 맹인이 한꺼번에 눈을 뜨는 기적입니다. 이 대목에서 외국인들이 모두 원더풀을 합창합니다. 한국인의 효가 정말 놀랍다는 것입니다.

    이 심청의 효심은 한민족 전체의 심성을 압축한 이야기입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박사가 한민족의 효심의 마음을 알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인류가 새로운 별로 이주해야 한다면 꼭 가져가야 할 제1의 문화가 한국의 孝 문화다.”

    한민족의 효정은 이 한반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심청 한 사람의 효심이 온 맹인의 눈이 떠지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 사랑이 하늘을 감동시킬 때 기적이 일어나고, 그 기적은 한 가정에만 머물지 않고 온 세상으로 퍼져나갑니다. 이것이 바로 한류가 일어나는 핵심 원인입니다.세상사람들이 한국의 심성의 깊이에 감동하는 것입니다.

    [심청전은 실화다]

    저는 심청전을 처음엔 꾸며진 소설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일주일 동안 심청전을 세 번 읽고, 판소리 영상도 보며 심청을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새벽 6시, 눈을 뜨자마자 맑은 심중에서 울림이 들려왔습니다. 심청전은 실화다.’ 깜짝 놀랐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심청전은 놀라운 하늘의 계시적 소설이었습니다. 한 마을에 실제로 눈먼 아버지와 어진 어머니, 그리고 한 딸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진 어머니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시고, 눈먼 아버지가 핏덩이 딸아이를 갖은 애를 써서 길러냈습니다.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 인신공양에 스스로 팔려간 것입니다. 예전에는 인신공양이 전 세계적인 어두운 문화였습니다. 실제로 그런 제물로 바쳐진 것이죠. 그렇다면 현세에서 살아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죽었는데 죽지 않고 살아났다고 하는 말이 뭐냐? 죽었는데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 같은 것은 모든 사람이 죽을 때 겪는 실제 경험입니다. 그러니까 심청이가 육신은 죽어서 영계로 들어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당수 이후의 이야기는 영계를 현세처럼 묘사한 것입니다. 효녀로 영계에 가니 천사들이 극진히 모십니다. 일찍 돌아가신 옥진부인으로 계신 친어머님도 잠깐 만나 얼싸안고 기뻐하지만, 영계의 차원이 서로 다르니 오래 함께하지 못합니다. 세월이 한 3년 흘러 눈먼 아버님도 뺑덕어미 같은 사람에게 속아 비참하게 살다가 아마도 물에 빠져 세상을 하직했을 것입니다. 아버님도 선량하신 분이라 극락세계로 가셨겠죠. 그곳에서 딸을 만나니 눈을 뜨시고 아름다운 황궁 같은 곳에서 모자간 태평성대를 영원히 누리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인당수 이후를 실감나는 영계 이야기로 읽으면 허구가 아닌 실화가 되는 것입니다.

    심청전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하늘의 계시가 담겨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해와가 타락하여 천지가 암흑에 빠졌습니다. 천지를 잃어버린 하나님은 심봉사처럼 한스러운 입장이 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풀 수 없는 한은 심청처럼 생명을 넘어선 효정을 통해서만 풀린다는 것, 그것이 이 계시적 소설의 핵심입니다.

    [웅녀에서 독생녀까지~ 선민의 계대]

    단군신화에는 한민족의 어머니 격인 21세 요조숙녀 웅녀가 계셨고, 그 승리의 계대를 이어받은 15세 효녀 심청이 있었습니다. 이팔청춘 16세 열녀 성춘향이 있었고, 충절의 16세 유관순이 계셨습니다. 모두 꽃다운 나이의 참여성이었습니다. 그런 정성의 터전 위에서 독생녀 한학자 어머님께서 한민족에 태어나시어, 16세 때 어린양 혼인잔치로 참부모 섭리를 펼치시고 효·열·충·성으로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시어 Holy Mother HAN이 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못 풀던 하늘부모님의 한을 해원하시는 대역사가 이 한민족에서 벌어지기에 한민족선민대서사시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효(孝)·열(烈)·충(忠)은 동심원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장 안쪽 원이 孝(개인)이고, 그 원이 퍼져나가면 烈(부부)이 됩니다. 더 넓어지면 忠(나라)이 되고, 마침내 聖(천주)으로 완성됩니다. 그 참된 孝·烈·忠·聖을 완성하신 분이 바로 참부모님이십니다. 아버님 자서전 말씀을 보겠습니다.

    (참아버님 자서전 중) “어머니, 나는 문아무개의 아들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아들입니다. 대한민국의 아들이기 전에 세계의 아들이요, 하늘과 땅의 아들입니다. 그들을 먼저 사랑하고 나서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 도리임을 압니다. 나는 졸장부 아들이 아니니 아들의 어머니답게 행동해주십시오.” 얼음장처럼 차가운 말을 내뱉었지만 어머니의 눈물을 보는 내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자다가도 그리워 깨는 어머니이건만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습니다.

    (참어머님 자서전 중) 나는 참아버님 성체 앞에서 “생이 다하는 날까지 이 땅에 천일국을 정착시키겠다!”고 눈물로 다짐했습니다. 이 다짐을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유언처럼 되뇌었습니다. 성화 이후 말씀을 땅끝까지 전파하고 세상을 품기 위해 나는 미친 듯이 동분서주했습니다. 입안이 헐어 끼니를 거르고 금방 쓰러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한시도 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천주사적 효정을 완성하신 참부모님을 모신 축복가정이요 자랑스런 자녀들입니다.

    대표적으로 참자녀님 중 효진님·흥진님께서 심청의 효를 넘어서는 본보기 효정을 보여주셨습니다.

    두분은 항상 유언처럼 말씀하셨습니다. “효자는 내꺼야! 부모님을 위해 언제든 기쁘게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실제로 실천하셨습니다.

    (참어머님 자서전 중) 우리 부부가 전국을 돌며 승공궐기대회를 할 때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공산주의 추종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흥진이는 언제나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습니다. “아버지를 내가 지켜 드리겠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문 총재를 해치려는 불순한 사람들이 청중으로 가장해 광주 대회장에 들어왔습니다. 사탄은 문 총재를 목표로 했지만 기대가 무너지자 대신 흥진이를 희생제물로 삼았습니다. 흥진이는 “아버지를 내가 지켜드리겠다”고 한 약속을 희생의 제물이 됨으로써 대신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효진님도 2008년 참부모님의 헬기사고 전에 효진님께서 제물로 가심으로서 부모님의 생명을 지켜내셨다는 영적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심청전의 가정적 효정은 참아버님·참어머님·참자녀님을 통해 천주적 차원에서 聖으로 완성되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효정의 승리권위에 세워진 멋진 축복가정입니다.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합니다. 그리고 그런 효정의 심정을 자세를 가져야 선민의 중심이 됩니다.

    [심청의 효심을 본받는 대화를 따라하기]

    1. 6살 심청의 효심: “까마귀 같은 새짐승도 저녁이 되면 먹을 것을 물어다가 제 어미를 먹일 줄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 새 짐승만 못하겠어요?”

    2. 장승상 부인의 수양딸 제안을 거절하며: “제가 아버지 모시기를 어머니 겸 모시고, 아버지는 저를 믿기를 아들 겸 믿사오니,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제가 이제까지 살았겠습니까? 제 몸이 다하도록 길이 모시려 하옵니다.”

    3. 인당수에서의 최후의 간절한 기도: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느님 전에 비나이다. 심청이 죽는 일은 추호라도 섧지 아니하여도, 병든 아버지 깊은 한을 생전에 풀려하고 이 죽음을 당하오니 명천은 감동하사 어두운 아비 눈을 밝게 띄워 주옵소서.”

    [효정으로 완성되는 천주]

    이 한민족선민대서사시를 완성할 주인공은 참부모님, 그 중에서도 마지막 종말의 고비를 넘고 승리하셔야 할 분은 바로 초림 독생녀, 참어머님, Holy Mother HAN이십니다.

    최근 옥중에서도 우리에게 효정이라는 말씀을 특별히 강조하십니다. 이는 인간적인 효정만이 아니라, 하늘부모님께 효정을 다하자는 가르침은 세상의 어떤 종교에도 없는, 오직 우리만의 고유한 말씀입니다.

    만행의 근본이 효입니다. 자녀의 효는 부모를 완성시킵니다. 성숙한 사회는 효정으로 완성됩니다.

    효진님이 항시 하셨던 말씀을 따라해봅시다. “효자(효녀)는 내꺼야!” 아주~

  •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 (신화)

    📖 참부모님 말씀

    (1988.06.15 TP) 한국은 5천년 역사를 거쳐 오는 동안 지금까지 희생해 나왔습니다. 한민족은 동이민족으로 본래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애호하는 민족입니다. 공자도 거기에 성인이 산다고 동이민족을 찬양하면서 이 동이민족에게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한국의 역사를 보면 다른 나라를 침략해 본 적이 없습니다. 수많은 침략을 당했지만 침략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정의에 불타는 민족입니다. 우리 민족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조선 이전에 한씨가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2013.12.06 TM)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고조선 이전 시대에 단군을 낳으신 환웅이 다스리는 나라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역사 기록에 나오는 환(桓)은 옛 음을 따르면 한(韓)으로 표기합니다. 그래서 환웅과 한웅은 같은 말입니다. 단군신화에는 한민족을 천손민족으로 택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한민족이라는 말이나 대한민국 국호의 근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 근원은 ‘한(韓)씨 조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수천년 전에 중국 동북지역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의 통치자가 한씨 혈통이며, 그 나라를 ‘한씨 조선’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한민족이고 우리 국호가 대한민국이 된 것은 바로 이 한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참어머님의 말씀처럼, ‘한민족’이라는 이름과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의 뿌리는 수천 년 전 중국 동북지역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광대한 땅을 다스렸던 ‘한씨 조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韓)’이라는 글자에는 크다, 밝다, 무한하다, 하나, 하나님, 동질의 집단으로 하나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란 어떤 장르인가?

    참어머님께서는 굳이 ‘대서사시’라는 단어를 쓰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대서사시는 한 민족이나 국가의 역사적 사건, 신화, 전설, 영웅담을 논리나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장르가 아닙니다. 이야기라는 형식을 통해 그 사건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를 탐구하는 장르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사실인가요, 허구인가요?’라고 물으신다면, 대서사시의 목적은 순수한 과학적 연구가 아니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한 사회, 민족, 문명, 역사를 관통하면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의미를 서술하는 것이 서사시의 본질입니다.

    일반적으로 역사는 보이는 사실에 근거해 서술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만이 사실인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형의 하늘부모님께서 역사의 한 축을 잡고 이끌어 오셨다면, 그 하나님을 빼고서는 역사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 가는 역사의 의미를 서사하는 시각, 이것을 ‘섭리사관’이라고 합니다.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를 배우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하늘부모님께서 바라시는 답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 ‘선민’의 새로운 의미

    선민(選民)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언약을 맺은 민족’이라는 기독교적 개념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개념이 특수하고 좁은 의미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말하는 선민은 단순히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축복가정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전 세계 모든 축복가정이 선민입니다. 하늘의 축복을 받고 그 책임을 다하는 자가 진정한 선민입니다.

    🌍 전 세계 나라별 신화

    한민족 신화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세계 각국의 신화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대륙국가신화명
    아시아중국반고(盤古) 신화
     일본이자나기·이자나미
     인도브라흐마
    유럽그리스헤시오도스
     북유럽이미르
     로마로물루스
    아메리카마야포폴 부
     아즈텍다섯 태양
     잉카만코 카팍
    아프리카이집트아툼
     나이지리아오두두와
     남아프리카우눌쿨룬쿨루
    오세아니아호주 원주민드림타임
     뉴질랜드랑이
     하와이쿠물리포

    대표적인 세계 신화 이야기

    ① 중국 — 반고(盤古) 신화

    태초에 우주는 달걀처럼 생긴 혼돈 덩어리였습니다. 그 안에서 1만 8천 년을 잠든 거인 반고가 도끼로 혼돈을 깨뜨렸습니다. 맑은 기운은 하늘이 되고 탁한 기운은 땅이 되었으며, 18,000년 후 반고가 죽자 그의 눈은 해와 달, 피는 강, 살은 대지, 털은 숲이 되었습니다.

    ② 일본 — 이자나기·이자나미

    신들의 명령으로 이자나기(남)와 이자나미(여) 두 신이 보석 창으로 혼돈의 바다를 휘저었습니다. 창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굳어 일본 열도가 되었고, 두 신은 결혼해 수많은 신과 자연을 낳았습니다. 이자나미가 불의 신을 낳다 죽은 후, 이자나기가 저승을 다녀오면서 태양신 아마테라스, 폭풍신 스사노오, 달신 츠쿠요미가 탄생했습니다.

    ③ 인도 — 브라흐마의 창조

    태초에 비슈누가 우주의 바다 위에 잠들어 있었고, 그의 배꼽에서 연꽃이 피어나며 창조주 브라흐마가 태어났습니다. 브라흐마는 명상으로 물, 불, 대기, 땅, 하늘의 다섯 원소와 신들, 인간, 동식물을 창조했습니다. 브라흐마(창조)·비슈누(유지)·시바(파괴)의 삼신 구조가 인도 신화의 핵심입니다.

    세계 신화의 공통 패턴

    세계 신화들을 보면 공통된 패턴이 있습니다. 혼돈에서 질서를 만들어 낸다는 것, 그리고 신의 죽음과 희생으로 세상이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시각을 가지고 한민족의 신화를 살펴보겠습니다.

    🏔️ 한민족의 창세 신화 — 단군신화

    한민족의 창세 신화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 승려 일연(一然)이 편찬한 역사서로, 고조선부터 후삼국까지의 역사·신화·불교·민속을 기록한 한국 고대사의 보고(寶庫)입니다.

    ◎ 단군신화 원문

    [魏書云]: 乃往二千載 有壇君王儉 立都阿斯達 開國號朝鮮 與高同時. 

    [古記云]: 昔有桓因 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 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遺靈艾一炷 蒜二十枚 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 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 而不得人身. 熊女者 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而婚之 孕生子 號曰壇君王儉.

    ◎ 단군신화 (한글 번역)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있었다.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세웠는데 나라를 열어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니 요(堯) 임금과 같은 시기이다.

    《고기(古記)》에: 옛날에 桓因이 있었는데 庶子 桓雄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탐내어 구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아래로 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弘益人間] 할 만하였다. 이에 天符印 세 개를 주어 보내어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에 내려왔는데 神壇樹 아래에 이르러 이곳을 神市라 하니 이분을 桓雄天王이라 한다. 風伯·雨師·雲師를 거느리고 곡식·생명·질병·형벌·선악을 주관하며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에 머물러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에서 살면서 환웅에게 빌기를 사람으로 변화하기를 원하였다. 이때 환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며 말하기를 ‘너희가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의 형상을 얻으리라.’ 곰과 호랑이가 이것을 받아 먹었는데 삼칠일(7:7:7) 동안 금기를 지키니 곰은 여자의 몸을 얻었으나 호랑이는 금기를 지키지 못하여 사람의 몸을 얻지 못하였다. 熊女는 혼인할 상대가 없으므로 神壇樹 아래에서 아이를 잉태하기를 빌었다. 환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혼인하니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壇君王儉이라 하였다.// 여기서 한씨 조선, 고조선이 시작되었다.

    💡 단군신화의 원리적 해석

    이 신화를 원리적으로 해석하면 놀라운 의미가 드러납니다.

    환인(桓因) = 하늘부모님

    환인은 하나님, 즉 하늘부모님을 상징합니다.

    환웅(桓雄) = 하나님의 嫡子가 아닌 庶子로 나온 것은 복귀된 자녀(차자 아벨)

    환웅은 서자(庶子), 즉 차자(次子) 격의 위치. 인간이 본래 하나님의 친자녀였지만 누시엘과의 타락으로 사탄의 자녀에서 복귀된 입장으로 이해한다.

    天符印 = 하늘의 부적 3개의 인은 성경의 생육,번성,주관하라 3대축복을 의미한다.

    神壇樹 = 성경의 생명나무를 의미

    곰과 호랑이 = 타락한 인간

    곰과 호랑이는 약육강식으로 살아가는 동물적 가치관에 떨어진 타락인간을 상징합니다.

    ‘해를 보지 말라’ = 성적 순결

    옛날부터 해는 남자를, 달은 여자를 상징합니다. ‘백일 동안 해를 보지 말라’는 것은 ‘남자를 알지 말라’, 즉 성적 순결을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며 정성을 들이라는 것은 성적 유혹을 이겨내고, 시련과 고난을 감내하며, 지성감천으로 성장하라는 뜻입니다.

    호랑이의 실패와 곰의 성공

    호랑이는 성욕을 참지 못하고 동굴 밖으로 뛰쳐나가 결국 타락인간으로 남았습니다. 반면 곰과 같은 여인은 끝까지 인내하여 삼칠일(유년기 7년 + 소년기 7년 + 청년기 7년 = 21년)을 지성으로 성장했습니다. 21세에 아름다운 여성으로 완성된 웅녀에게 환웅이 화답하여 혼인하였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한민족의 조상 단군왕검입니다.

    완성된 웅녀

    완성된 웅녀는 인격 완성한 참여성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단군신화는 한민족에 메시아가 탄생하여 평화세계를 완성할 것을 예언적으로 계시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단군왕검은 순결(純潔), 경천애인(敬天愛人), 홍익인간(弘益人間),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白衣民族)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 한민족의 여성신화

    한민족에서 남성신으로 모셔지는 신은 환인, 환웅, 단군왕검, 산신, 용왕신, 치우천왕이 유일합니다. 해모수(부여), 주몽(고구려), 박혁거세(신라), 수로왕(가야)은 신의 위격이 아니라 국부(國父) 격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한민족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여성신들이 신격(神格)으로 받들어졌습니다.

    분류신격 이름역할
    토착 지모신웅녀(熊女)고조선 건국 · 단군의 어머니
    천지 창조신마고할미(麻姑)천지 창조 · 대지를 빚어낸 태초의 여신
    생명·탄생의 신삼신할미 / 삼승할망출산·생명 · 모든 인간을 점지하는 큰어머니
    제주 거인 창조신설문대할망제주 창조 · 섬과 한라산을 빚어낸 거녀(巨女)
    제주 농경·사랑의 신자청비(自請妃)사랑·농경 · 오곡의 씨앗을 지상에 가져온 여신
    제주 운명·자복의 신가믄장아기운명·자복 · 스스로 복을 개척한 여신
    저승 주관·무속 원조바리데기 / 바리공주죽음을 넘어 생명수를 가져온 무조신(巫祖神)
    산신·시조모선도성모 / 정견모주 / 유화부인삼국 수호 · 산신이 된 나라의 어머니들
    바람·풍어의 신영등할망바람·풍어 · 바다를 다스리는 제주의 바람신

    ① 마고할미(麻姑) — 대지의 창조 여신

    거대한 몸집의 여신으로, 치마폭에 흙을 날라 산과 섬을 만들고 방뇨로 강을 형성했다고 전해집니다. ‘할미’는 비하의 말이 아니라 ‘큰 어머니(大母神)’를 의미하는 존칭입니다. 할머니 = 韓(크다) + 어머니 = 큰 생명의 어머니. 이것은 바로 하늘어머님을 표상하는 것입니다.

    ② 삼신할미(三神) / 삼승할망 — 생명의 신

    아이를 점지하고 출산을 돕는 생명의 신입니다. 삼신(三神)은 세 명의 신이 아니라 ‘포태(胞胎)’, 즉 생명의 잉태를 뜻합니다. 출산부터 아이가 걸음을 뗄 때까지 곁에서 보살피는 포근한 어머니 신격으로, 한국 신화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강력한 여성 신격입니다.

    ③ 바리데기 / 바리공주 — 죽음을 넘어선 구원의 신

    왕이 아들을 원했지만 연달아 딸만 태어나자 일곱째 딸 바리를 버렸습니다. 부모가 병에 걸려 죽게 되자, 버림받은 바리가 홀로 저승의 끝까지 여행해 생명수를 구해 왔습니다. 죽은 부모를 살린 후 스스로 신이 되어 만물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무조신(巫祖神)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버려진 자가 오히려 구원자가 된다는 역설적 구조를 담고 있습니다. 전국 무당들이 의식에서 바리데기를 가장 중요한 신으로 섬깁니다.

    한국 여성신의 특징

    한국 여성신들은 세계 어느 문화권과도 다른 뚜렷한 특성을 지닙니다. 세계의 여성신은 음란, 시기, 죽음, 갈등을 상징으로 많이 표현하였지만, 한민족의 여성신상은 순결, 정조, 생명, 탄생, 창조, 구원, 수호, 자연, 풍요를 직접 주관하는 주체적인 신격입니다. 이는 수동적·희생적 여성상과 정반대의 서사입니다.

    특히 제주도는 신당(堂神)의 80%가 여신일 정도로 여성 신성의 전통이 강력하게 보존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무당(무속인)의 약 90% 이상이 여성입니다. 신내린 여성이 죽음·삶·치유를 중재하는 이 전통은 수천 년간 이어온 여성 신성의 계승입니다.

    🌸 참어머님과 한민족 여성신화의 연결고리

    참어머님께서는 독생녀(獨生女)이자 성스러운 어머님(Holy Mother Han)으로 선언하셨습니다. 이 신학적 서사는 한민족 고유 여성신화 전통과 깊이 공명합니다. 수천 년간 한국 문화의 저층에 쌓여온 ‘여성이 곧 창조·생명·구원의 원천’이라는 여성 신성(神性) 관념이, 바로 독생녀 신학의 문화적 토양이 된 것입니다. 독생녀 신학은 독창성이 있으면서도 이성성상(二性性相)과 천지창조의 원리에 부합합니다.

    🎯 결론 — 우리가 서사의 주인공입니다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는 한민족의 시원을 나타내는 신화에서 시작하여, 성경 창세기에 담긴 하늘의 소망이 실현되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세계에서 순결(男女純潔), 경천애인(敬天愛人), 평화사랑, 홍익인간(弘益人間), 광명이세(光明理世)를 신화 속에 모두 담은 민족은 한민족이 유일합니다. 930번의 외침을 당하면서도 단 한 번도 타민족을 침범하지 않았고, 순결문화로 은장도를 지녔으며, 진리사상으로 ‘도리도리’를 가르치고, 충효열의 심정문화를 이어온 민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역사시간에 공부한 역사 연표 : 태정태세문단세 / 예성연중인명선 / 광인효현숙경영 / 정순헌철고순… 이것이은 외적 역사일뿐 진짜 역사가 아닙니다. 진짜 역사는 하늘부모님과 인간이 함께 써 내려간 서사(敍事)입니다. 그리고 참부모님을 모신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의 한가운데에, 바로 우리 축복가정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자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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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축복가정은 이 위대한 대서사의 주인공입니다.

  • 한민족선민대서사시와 하늘부모님 성회

    20260405 한민족선민대서사시와 하늘부모님성회

    참부모님 말씀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참아버님 말씀, 85.12.11) 한민족의 시련은 이 민족 자체만의 것이 아니고 섭리적인 것이며, 하나님은 이 민족이 이것을 극복하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세계사의 총합적 유산이라 일컬을 수 있는 동과 서, 남과 북, 정신과 물질, 유심과 유물의 대결과 혼돈이 집약되어 한반도에서 소용돌이치는 것도 마치 새 시대를 잉태한 산모의 몸부림과도 같은 것입니다. 한민족의 민족적 국가적 어려움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떠나서는 해결할 수 없으며, 한국 단독으로서가 아니라 세계와의 관련 속에서만 해결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참아버님 자서전 중)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받아들이려면 끊임없이 자기를 다스려야 합니다. 제 속이 다 곪아터진 다음에야 비로소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법인데 우리 민족이 바로 그런 마음을 가졌습니다… 핍박받는 사람은 하나님과 가장 가깝습니다.

    (참어머님 자서전 중) 나는 애국가의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구절을 가끔 생각해 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우리 한민족을 역사적으로 어렵고 힘든 고비마다 보호해 주셨을까? 생각해 볼 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는 섭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선민으로 택한 한민족 가운데 인류의 메시아 참부모로 오신 독생자와 독생녀를 지키셔야 했으며, 이를 위한 유엔의 참전은 하늘의 결단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왜 어머님은 “한민족선민대서사시를 교육하라”고 반복하시는가

    여러분, 지금 참어머님께서 옥중에서 면회 오는 식구들에게 항상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한민족선민대서사시를 전 국민에게 교육해야 한다.” 면회 올 때마다 이 말씀을 하십니다.

    솔직히 우리가 이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급박한 상황에 그 말씀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보통이라면 법적인 해결 방법을 말씀하시거나, 현 정부의 잘못된 사법적 판단을 문제 삼으시거나, 시위를 하라고 하실 수 있는데요. 그런 말씀은 일절 없으십니다. 오직 한 가지, “한민족이 선민임을 알게 해야 한다.” 면회 오는 지도자 누구에게나 똑같은 이 말씀만 반복하고 계십니다.

    도대체 이 말씀 속에는 어떤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걸까요?

    어머님이 가장 염려하시는 것

    저는 이렇게 느낍니다. 어머님께서는 한민족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대단히 염려하고 계신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책임이 있는지도 모른 채 엉뚱한 길로 빠져도 그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겁니다. 길을 잃은 줄도 모르고 헤매는 것이죠.

    어머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이 한민족은 참부모님을 맞이하여 전 세계를 구원할 숙명을 가진 민족이다. 이것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민이란 무엇인가 — 잘못된 선민관을 바로잡자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꼭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선민’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혹시 ‘하늘의 축복을 받은 자랑스러운 민족, 잘난 백성’이라고 생각하시진 않으십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절대 안 됩니다.

    오늘 처음에 훈독한 말씀을 다시 떠올려 보십시오. 선민이란, 세계를 구하는 책임을 위해 희생과 고난을 겪고 이겨낸 민족, 하늘이 직접 선택하시고 길러내신 민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민족만을 위한 선민은 교만에 빠져 하늘의 섭리를 그르칩니다.

    이스라엘의 교훈 — 교만한 선민이 섭리를 망쳤다

    이스라엘 민족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늘의 선택을 받은 선민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였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 민족만을 위해 축복해 주셨다’는 교만한 선민의식에 빠진 겁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이방 민족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이 주변 나라를 지배하는 초강대국이 될 거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교만한 선민이 되어 버린 것이죠. 그래서 결국 섭리를 그르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기다린 메시아는 어떤 분이었습니까? 위풍당당하게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는 강력한 지도자. 모세보다 더 능력 있고, 엘리야나 솔로몬 왕보다 월등한 슈퍼스타. 이방 민족을 멸하고 이스라엘 제국을 건설해 줄 영웅. 이런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어떤 분이 나타나셨습니까? 베들레헴 시골 동네 출신, 서른 살 총각 한 분이 나타나신 겁니다. 그분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어부요 세리였습니다. 모세 율법을 거역하는 것처럼 보였고,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말씀하시면서, 부모나 처자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당시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말씀이 있었습니다.

    “너희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여러분, 이게 얼마나 혁명적인 선포였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당시의 정의였습니다. 원수 로마에게 짓밟히고 있는 상황에서 그 원수를 사랑하라니요. 지금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이나 이란에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한 대 맞으면 열 대로 갚아줍니다. 그런 민족에게 “원수를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은, 그 시대 그 상황 속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선포였던 것입니다.

    An elderly Jewish man in a prayer shawl looks on as three crosses stand atop a distant hill.
    An elderly man in traditional Jewish attire stands solemnly on a rocky hill, with three crosses visible in the distant background.

    왼편 강도의 조롱, 그리고 오늘의 조롱

    결국 예수님은 종교재판과 정치재판을 연이어 받으시고, 십자가 사형틀에 매달리셨습니다. 십자가형. 이것은 하늘의 가장 큰 저주를 받은 죄인을 처형할 때만 쓰는 형벌이었습니다.

    그때 함께 달린 왼편 강도가 뭐라고 했습니까?

    당신이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나와 당신을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해봐라.”

    이게 무슨 뜻입니까? ‘당신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 맞다면, 당신 아버지가 어찌 당신을 이렇게 그냥 내버려 두시겠느냐?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일 리가 없다. 진짜 아들이면 왜 살려주지 않겠어.’ 이렇게 조롱한 것이죠.

    여러분, 이 장면이 지금 참어머님의 처지와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어머님을 향해 뭐라고 합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독생녀라고? 웃기지 마라. 그런데 왜 감옥에서 구해주지도 못하느냐. 최측근이 배신하고, 눈도 안 보이고, 걷지도 못하고, 심장병까지 있으면서 자기 병도 못 고치는 사람이 누굴 구원한다는 거냐. 당신이나 하나님한테 구해 달라고 해 보시지.” 이렇게 조롱하는 것이죠.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세상의 메시아관 vs. 하늘부모님의 바라심

    세상 사람들이 메시아를, 구세주를, 재림주를 바라보는 눈이 하늘부모님의 바라심과 완전히 다릅니다. 세상은 모세처럼, 다윗왕처럼, 엘리야처럼 대단한 선지자, 귀신도 잡고 세상 권력도 굴복시키는 초능력의 강력한 지도자를 기대합니다. 사람의 형체조차 우리와는 다를 것이라 상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참아버님도, 참어머님도 외적인 모습은 우리 인간과 너무나 똑같으셨습니다. 다른 것은 오직 내면입니다. 하늘부모님과의 일심 일체 일념 일화. 인간을 향한 사랑. 그리고 말씀.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보려면 영적 감각이 남다르거나, 함께 생활해 봐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내적인 차이입니다.

    그래서 하늘부모님을 닮은 내적 실체로 오셔서, 인간의 내적인 병폐를 고치시고, 하늘부모님 이상의 나라를 재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외적인 세상이 바뀌는 것은 나라가 말씀에 따라 바뀌고, 법이 바뀌어야 비로소 서서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보이는 것, 외적인 것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합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메시아관이 하늘부모님의 바라심과 근본적으로 각도가 다르기 때문에, 오신 메시아 재림주님, 독생녀께서 가시는 길이 이토록 험난한 것입니다.

    진정한 선민이란

    그래서 다시 한번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선민이란 하늘의 축복을 받아 제 잘난 맛에 사는 민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민이란, 고난 속에서 이겨낸 강인한 민족이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민족이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민족이 될 바탕을 가진 민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신 참부모님을 올바로 맞이하여, 하나님의 꿈을 중심삼고 세상의 구원 사역을 완성시킬 참다운 백성. 그것이 바로 선민입니다.

    한민족이 바로 그런 민족이었습니다. 하늘부모님께서 그렇게 길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그 정체성을 많이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선민으로서의 심성, 그 마음의 바탕은 하늘부모님과 우리 조상들이 그래도 잘 길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기독교가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독교는 어떻게 사명을 놓쳤는가

    먼저 성경의 핵심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구약의 약속, 즉 ‘오래된 약속(舊約)’이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에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는 하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오신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고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새롭게 하신 약속이 바로 신약(新約)의 말씀입니다. 신약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내가 다시 오리라.” 이 절대적인 약속입니다.

    그래서 신약 말씀의 30%가 직간접적으로 예수님의 다시 오심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열 처녀의 등잔불 비유,  “인자도 너희 생각하지 않은 때에 오리라”,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하리라”,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때를 분간하라” — 잔치의 비유, 제자 되는 길의 비유, 재난의 징조, 포도원의 비유, 무화과나무의 비유… 요한 계시록은 전체가 재림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신앙자가 바로 정통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에 간절하지 않다면, 그것이야말로 시작과 끝이 달라진 것이고, 성경적으로 보면 오히려 그쪽이 이단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를 보십시오. 재림에 대한 신앙의 형태만 있지, 기다림이나 간절함이 거의 없습니다. 시작과 끝이 달라져 버린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뜨거웠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기독교는 재림주를 기다리는 뜨거운 신앙이 있었습니다. 특히 일제시대 한국 기독교는 정말로 신령했습니다.

    얼마나 뜨거웠느냐면요. 미국의 루비 켄드릭이라는 어린 여성 선교사가 1907년에 한국에 파송되었습니다. 개성에서 복음을 전하며 헌신했는데, 안타깝게도 한국에 온 지 불과 9개월 만에 급성 맹장염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부모님께 보낸 마지막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만약 내게 줄 수 있는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그 모두를 한국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외국에서 온 선교사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신앙은 그토록 순수하고, 신령하고, 뜨거웠던 것입니다.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릴 만큼 신앙심이 대단했습니다.

    인공지능에 물어보면 1940년대에 세계에서 가장 신앙심이 뜨거웠던 1등 나라가 한국이었고, 재림주를 가장 갈망했던 나라도 한국이 세계 1등으로 가장 많은 인물이 나타났습니다. 전 세계 1위에서 60위 가운데 무려 14명이 한국인입니다. 그만큼 한국의 재림 열망이 뜨거웠습니다.

    이스라엘수도원(김백문), 새벽회(이용도), 천부교(박태선), 용문산기도원(나운몽), 원산그룹(백남주), 영생교(조희성), 신천지(이만희), 하나님의교회(안상홍·장길자), 삼각산기도원(정득은), 성주교(김성도), 복중교(허호빈), 통일교(참부모), 증산교(강증산), 대종교(나철), 원불교(박중빈)…

    하늘부모님께서는 이처럼 신령한 그룹들을 통해 사람들의 심령과 지능을 높이시고, 재림을 위한 정성의 토대를 쌓아 오신 겁니다. 비록 그들이 참된 메시아가 아니었더라도, 구세주를 열망하는 그 정성이 모이고 쌓여서 참부모님을 맞이하기 위한 기대를 만들어 오신 것입니다. 바로 그 정성의 토대 위에서 드디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참부모님이 탄생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참부모님께서는 그들의 기반을 이어받아 재림의 목적을 이루셔야 했기에, 직접 김백문, 이용도, 김성도, 허호빈을 찾아가시며 정성을 드리셨던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받아 주지 않아 고난의 길을 걸으실 수밖에 없으셨지만, 그 정성의 뿌리는 참부모님께로 연결되어 온 것입니다.

    기독교가 재림의 열망을 꺼뜨렸다

    그런데 기독교가 어떻게 했습니까? 재림을 열망하는 모든 신령한 종단의 지도자들을 핍박하고, 이단이라 정죄하고, 거부해 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오늘날 기독교에서 신령이 사라져 버렸고, 재림의 열망이 차갑게 식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라는 소망, 그 끝이 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참부모님께서 기독교로부터 배척받게 된 진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처럼 믿으면서, 정작 2천 년 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지금 참어머님께 쏟아내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그러면 믿겠다.” 이 말과 지금 기독교인들이 하는 말이 뭐가 다릅니까?

    그러니까 2천 년 전의 바리새인이 바로 지금의 기독교인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바리새인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23장)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어머님의 진정한 염려

    지금 한국이 바로 이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당신의 고통보다 바로 이것을 가장 염려하고 계신 것입니다. 선민이 책임을 다하지 못해 나라를 잃고 2천 년을 방황했던 유대 민족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시기에, 면회 오는 모든 분들에게 한민족선민대서사시를 교육하라고, 선민의 책임과 사명을 가르쳐야 한다고 그토록 강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의 선민은 누구인가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의 내적인 선민은 과연 누구입니까?

    바로 전 세계의 축복가정, 우리들입니다. 선민은 참부모님을 모시고 알리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선민된 자의 사명입니다.

    마무리 — 대서사시의 마지막 장은 우리가 쓴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한민족선민대서사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참어머님의 자서전도 여전히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 장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