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이 선민으로 선택받은 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하늘부모님의 지상천국을 건설하려면 그에 걸맞은 심성이 먼저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 바탕이 바로 ‘효정(孝情)’입니다. 한민족이 선민으로 부름 받은 배경에는 바로 이 효정의 심정이 있습니다. 참부모님 말씀을 함께 훈독하겠습니다.
(참어머님 자서전 중) 효정을 생각하면 나는 늘 가슴속에 큰 슬픔으로 자리 잡고 있는 큰아들 효진이와 둘째 아들 흥진이가 떠오릅니다. 부모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그 길로 용감히 나아가는 사람이 효자입니다. 그런 효자는 섬김의 정신으로 사람들을 대하기에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고, 반드시 뜻을 이룹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모두 섬기는 “효정”은 그래서 위대합니다. 우리 통일문화의 특색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효정을 근간으로 하는 심정문화”입니다. “孝情”은 하늘부모님을 향한 우리의 정성과 사랑입니다.
[孝의 의미]
‘孝’라는 글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주신 사랑과 생명과 혈통에 진심으로 감사하여, 의무감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시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사랑하기 때문에 드리는 것, 그것이 진정한 효입니다.
오늘 저는 한민족이 수백 년을 가슴에 품어온 한 소녀의 이야기를 꺼내려 합니다.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늘이 선택한 한민족의 DNA 깊은 곳에 새겨진 孝情의 원형이며, 하늘부모님께서 한민족을 선민으로 부르신 이유 중 하나입니다. 바로 ‘심청전(沈淸傳)’입니다.
어진 곽씨 어머니는 정성들여 심청을 낳고 7일만에 세상을 하직하니 앞 못보시는 심봉사 애시 안고 젖동냥 밥동냥으로 애기를 지성으로 길러내어 6살이 되었을 적에
[밥을 빌러 나서는 심청]
하루는 심청이 아버지께 여쭈었다. “까마귀 같은 새짐승도 저녁이 되면 먹을 것을 물어다가 먹일 줄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 새짐승만 못하겠어요? 아버지 눈 어두우신데 밥 빌러 가시다가 엎어져서 상하기 쉽고, 비바람 부는 궂은 날과 눈서리 치는 추운 날이면 병 나실까 밤낮으로 염려됩니다. 오늘부터 제가 나서서 밥을 빌어다가 끼니 걱정 덜게 해드리겠어요.” 심봉사가 하는 말이, “네 말이 기특하구나. 인정은 그러하나 어린 너를 내보내고 앉아 받아먹는 내 마음은 어찌 편하겠느냐.” 심청이 다시 여쭈었다. “자로는 백리 길에 쌀을 져다 부모를 봉양했다는데, 사람이 예나 지금이 다르겠어요, 고집하지 마셔요.” 심봉사가 옳게 여겨, “기특하다 내 딸아, 효녀로다 내 딸아.” 하고 허락했다.
심청이 이날부터 밥 빌러 나설 적에, 앞섬 없는 겹저고리 이렁저렁 얽어메고, 버선 없이 발을 벗고, 헌 바가지 노끈 매어 손에 들고, 엄동설한 모진 날에 추운 줄을 모르고 이집 저집 문앞 문앞 들어가서 간절히 비는 말이, “어머니는 세상 버리시고 우리 아버지 눈 어두워 앞 못 보시는 줄 뉘 모르시겠어요? 십시일반이오니 밥 한 술 덜 잡수시고 주시면 눈 어두운 저의 아버지 배고픔을 면하겠습니다.” 하니, 보고 듣는 사람들이 마음에 감동하여 밥 한 술, 김치 한 그릇을 아끼지 않고 주며, 먹고 가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심청이 하는 말이, “추운 방에 늙으신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실텐데 저 혼자만 먹겠습니까? 어서 바삐 돌아가서 아버지와 함께 먹지요.”
이렇게 얻어서 두세 집 밥을 모아서 넉넉하면 급히 돌아와서 “아버지 춥고 시장하지 않으셨어요, 오래 기다리셨지요.” 심봉사가 두 손 덥석 잡고, “손 시렵지.” 하며 손을 입에 대고 훌훌 불며, 발도 차다고 어루만지며, 혀를 끌끝 차고 눈물을 글썽이며, “애고 애고, 애닯구나. 무정하다 내 팔자야. 너를 시켜 밥을 빌어먹고 살잔 말이냐? 애고 애고, 모진 목숨 구차히 살아서 자식 고생만 시키는구나.” 심청의 극진한 효성으로 아버지를 위로하기를, “아버지 그런 말씀 마셔요. 부모를 모시고, 자식의 효도 받는게 이치에 떳떳하고, 사람의 도리에 당연하니, 그런 걱정일랑 마시고 진지나 잡수셔요.” 하며 아버지 손을 잡고 “이것은 김치고, 이것은 간장이어요, 시장하신데 많이 잡수셔요.”
[진정한 孝와 한민족만의 고유한 효 개념]
이 장면을 보시면서 무엇이 느껴지십니까? 저는 이 소녀에게서 ‘효를 한다’는 의식이 전혀 없다는 것을 봅니다. 눈먼 아버지를 지극히 사랑하기에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孝입니다.
그런데 한민족의 이 효심이 얼마나 특별한지 아십니까? 세계 어느 나라에도 한국의 ‘孝’를 1대 1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가 없습니다. 인공지능에게 ‘효’를 다른 언어로 번역해 달라고 하면, 정확히 대응되는 단어가 없다고 합니다. 진리를 가르치는 성경조차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원문인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는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레19: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처럼 ‘효’라는 말 대신 ‘공경하라, 경외하라, 순종하라’는 단어를 씁니다. 서구문화애서는 ‘Filial piety(필리얼 파이어티.자식의 책임)’이 단어들은 한국적 孝와는 그 결이 다릅니다. 한국적 효심은 전 세계에서 당연한 것이 아닌, 한민족만의 고유한 심성인 것입니다.
[심청의 생명을 넘어선 효성]
심청이 거동 보소. 두 손을 합장하고 일어나서 하느님 전 비는 말이,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느님 전에 비나이다. 심청이 죽는 일은 추호라도 섧지 아니하여도, 병든 아버지 깊은 한을 생전에 풀려하고 이 죽음을 당하오니 천지신명은 감동하사 어두운 아비 눈을 밝게 띄워 주옵소서.”
孝라면 세계 어디서나 부모님께 드리는 것 아니냐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민족의 효심은 그 깊이가 다릅니다. 심청전을 외국인에게 이야기하면 공포스럽다고 합니다. 어떻게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자기 생명까지 바치느냐는 것입니다. 요즘은 한국인들도 심성이 완악해져서 죽음을 걸고 애비 눈 뜨게 하는 것은 불효자라고 심청의 효를 폄훼합니다. 그러나 하늘은 이 심청의 생명을 넘어선 효를 통해 가르치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심청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지 못하면 자식으로서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는 효심, 그 애비의 한을 풀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하겠다는 자녀된 마음입니다. 그 생명을 넘어선 효심에 하늘이 감동하사,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 같은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더욱이 아버님 혼자만 눈을 뜬 것이 아니라 모든 맹인이 한꺼번에 눈을 뜨는 기적입니다. 이 대목에서 외국인들이 모두 원더풀을 합창합니다. 한국인의 효가 정말 놀랍다는 것입니다.
이 심청의 효심은 한민족 전체의 심성을 압축한 이야기입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박사가 한민족의 효심의 마음을 알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인류가 새로운 별로 이주해야 한다면 꼭 가져가야 할 제1의 문화가 한국의 孝 문화다.”
한민족의 효정은 이 한반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심청 한 사람의 효심이 온 맹인의 눈이 떠지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 사랑이 하늘을 감동시킬 때 기적이 일어나고, 그 기적은 한 가정에만 머물지 않고 온 세상으로 퍼져나갑니다. 이것이 바로 한류가 일어나는 핵심 원인입니다.세상사람들이 한국의 심성의 깊이에 감동하는 것입니다.
[심청전은 실화다]
저는 심청전을 처음엔 꾸며진 소설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일주일 동안 심청전을 세 번 읽고, 판소리 영상도 보며 심청을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새벽 6시, 눈을 뜨자마자 맑은 심중에서 울림이 들려왔습니다. ‘심청전은 실화다.’ 깜짝 놀랐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심청전은 놀라운 하늘의 계시적 소설이었습니다. 한 마을에 실제로 눈먼 아버지와 어진 어머니, 그리고 한 딸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진 어머니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시고, 눈먼 아버지가 핏덩이 딸아이를 갖은 애를 써서 길러냈습니다.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 인신공양에 스스로 팔려간 것입니다. 예전에는 인신공양이 전 세계적인 어두운 문화였습니다. 실제로 그런 제물로 바쳐진 것이죠. 그렇다면 현세에서 살아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죽었는데 죽지 않고 살아났다고 하는 말이 뭐냐? 죽었는데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 같은 것은 모든 사람이 죽을 때 겪는 실제 경험입니다. 그러니까 심청이가 육신은 죽어서 영계로 들어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당수 이후의 이야기는 영계를 현세처럼 묘사한 것입니다. 효녀로 영계에 가니 천사들이 극진히 모십니다. 일찍 돌아가신 옥진부인으로 계신 친어머님도 잠깐 만나 얼싸안고 기뻐하지만, 영계의 차원이 서로 다르니 오래 함께하지 못합니다. 세월이 한 3년 흘러 눈먼 아버님도 뺑덕어미 같은 사람에게 속아 비참하게 살다가 아마도 물에 빠져 세상을 하직했을 것입니다. 아버님도 선량하신 분이라 극락세계로 가셨겠죠. 그곳에서 딸을 만나니 눈을 뜨시고 아름다운 황궁 같은 곳에서 모자간 태평성대를 영원히 누리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인당수 이후를 실감나는 영계 이야기로 읽으면 허구가 아닌 실화가 되는 것입니다.
심청전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하늘의 계시가 담겨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해와가 타락하여 천지가 암흑에 빠졌습니다. 천지를 잃어버린 하나님은 심봉사처럼 한스러운 입장이 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풀 수 없는 한은 심청처럼 생명을 넘어선 효정을 통해서만 풀린다는 것, 그것이 이 계시적 소설의 핵심입니다.
[웅녀에서 독생녀까지~ 선민의 계대]
단군신화에는 한민족의 어머니 격인 21세 요조숙녀 웅녀가 계셨고, 그 승리의 계대를 이어받은 15세 효녀 심청이 있었습니다. 이팔청춘 16세 열녀 성춘향이 있었고, 충절의 16세 유관순이 계셨습니다. 모두 꽃다운 나이의 참여성이었습니다. 그런 정성의 터전 위에서 독생녀 한학자 어머님께서 한민족에 태어나시어, 16세 때 어린양 혼인잔치로 참부모 섭리를 펼치시고 효·열·충·성으로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시어 Holy Mother HAN이 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못 풀던 하늘부모님의 한을 해원하시는 대역사가 이 한민족에서 벌어지기에 한민족선민대서사시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효(孝)·열(烈)·충(忠)은 동심원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장 안쪽 원이 孝(개인)이고, 그 원이 퍼져나가면 烈(부부)이 됩니다. 더 넓어지면 忠(나라)이 되고, 마침내 聖(천주)으로 완성됩니다. 그 참된 孝·烈·忠·聖을 완성하신 분이 바로 참부모님이십니다. 아버님 자서전 말씀을 보겠습니다.
(참아버님 자서전 중) “어머니, 나는 문아무개의 아들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아들입니다. 대한민국의 아들이기 전에 세계의 아들이요, 하늘과 땅의 아들입니다. 그들을 먼저 사랑하고 나서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 도리임을 압니다. 나는 졸장부 아들이 아니니 아들의 어머니답게 행동해주십시오.” 얼음장처럼 차가운 말을 내뱉었지만 어머니의 눈물을 보는 내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자다가도 그리워 깨는 어머니이건만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습니다.
(참어머님 자서전 중) 나는 참아버님 성체 앞에서 “생이 다하는 날까지 이 땅에 천일국을 정착시키겠다!”고 눈물로 다짐했습니다. 이 다짐을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유언처럼 되뇌었습니다. 성화 이후 말씀을 땅끝까지 전파하고 세상을 품기 위해 나는 미친 듯이 동분서주했습니다. 입안이 헐어 끼니를 거르고 금방 쓰러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한시도 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천주사적 효정을 완성하신 참부모님을 모신 축복가정이요 자랑스런 자녀들입니다.
대표적으로 참자녀님 중 효진님·흥진님께서 심청의 효를 넘어서는 본보기 효정을 보여주셨습니다.
두분은 항상 유언처럼 말씀하셨습니다. “효자는 내꺼야! 부모님을 위해 언제든 기쁘게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실제로 실천하셨습니다.
(참어머님 자서전 중) 우리 부부가 전국을 돌며 승공궐기대회를 할 때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공산주의 추종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흥진이는 언제나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습니다. “아버지를 내가 지켜 드리겠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문 총재를 해치려는 불순한 사람들이 청중으로 가장해 광주 대회장에 들어왔습니다. 사탄은 문 총재를 목표로 했지만 기대가 무너지자 대신 흥진이를 희생제물로 삼았습니다. 흥진이는 “아버지를 내가 지켜드리겠다”고 한 약속을 희생의 제물이 됨으로써 대신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효진님도 2008년 참부모님의 헬기사고 전에 효진님께서 제물로 가심으로서 부모님의 생명을 지켜내셨다는 영적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심청전의 가정적 효정은 참아버님·참어머님·참자녀님을 통해 천주적 차원에서 聖으로 완성되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효정의 승리권위에 세워진 멋진 축복가정입니다.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합니다. 그리고 그런 효정의 심정을 자세를 가져야 선민의 중심이 됩니다.
[심청의 효심을 본받는 대화를 따라하기]
1. 6살 심청의 효심: “까마귀 같은 새짐승도 저녁이 되면 먹을 것을 물어다가 제 어미를 먹일 줄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 새 짐승만 못하겠어요?”
2. 장승상 부인의 수양딸 제안을 거절하며: “제가 아버지 모시기를 어머니 겸 모시고, 아버지는 저를 믿기를 아들 겸 믿사오니,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제가 이제까지 살았겠습니까? 제 몸이 다하도록 길이 모시려 하옵니다.”
3. 인당수에서의 최후의 간절한 기도: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느님 전에 비나이다. 심청이 죽는 일은 추호라도 섧지 아니하여도, 병든 아버지 깊은 한을 생전에 풀려하고 이 죽음을 당하오니 명천은 감동하사 어두운 아비 눈을 밝게 띄워 주옵소서.”
[효정으로 완성되는 천주]
이 한민족선민대서사시를 완성할 주인공은 참부모님, 그 중에서도 마지막 종말의 고비를 넘고 승리하셔야 할 분은 바로 초림 독생녀, 참어머님, Holy Mother HAN이십니다.
최근 옥중에서도 우리에게 효정이라는 말씀을 특별히 강조하십니다. 이는 인간적인 효정만이 아니라, 하늘부모님께 효정을 다하자는 가르침은 세상의 어떤 종교에도 없는, 오직 우리만의 고유한 말씀입니다.
만행의 근본이 효입니다. 자녀의 효는 부모를 완성시킵니다. 성숙한 사회는 효정으로 완성됩니다.
효진님이 항시 하셨던 말씀을 따라해봅시다. “효자(효녀)는 내꺼야!”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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