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소장 완판 71장본 현대어 번역본
― 상 권 ―
1. 심봉사와 곽씨 부인 — 기구한 처지
송나라 말년에 황주 도화동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성은 심(沈)이고, 이름은 학규였다. 대대로 벼슬을 한 집안으로 이름이 났었으나, 집안 형편이 기울어져 스무 살이 못 되어 앞을 못 보게 되니, 벼슬 길이 끊어지고 높은 자리에 오를 희망이 사라졌다. 시골에서 어렵게 사는 처지이고 보니 가까운 친척도 없고 게다가 눈까지 어두워서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양반의 후예로 행실이 청렴하고 지조가 곧아서 사람들이 모두 군자라고 칭송했다.
그 아내 곽씨 부인은 어질고 지혜로워서 임사 같은 덕행과 장강 같은 아름다움과 목란 같은 절개를 가졌다. [예기(禮記)], [가례(家禮)] <내칙편>과 <주남>, <소남> 관저시를 모를 것이 없었다. 이웃과 화목하고 아랫사람에게 따뜻하며 집안 살림하는 솜씨가 빈틈이 없었으며, 백이 숙제처럼 청렴하고 안연처럼 가난하게 살았다. 물려받은 재산 없이 집 한 칸에 많지 않은 세간살이로 끼니조차 잇기 힘들었다.
들에는 논밭이 없고 행랑에는 종이 없어, 가련하고 어진 곽씨 부인 몸소 품을 팔아 삯바느질을 했다. 관대 도포 행의 창의 직령이며, 섭수 쾌자 중추막과 남녀 의복 잔누비질, 상침질 외올뜨기, 고두 누비 속올리기, 빨래하여 풀먹이기, 여름 의복 한삼 고의, 망건 꾸미기, 갓끈 접기, 비자 단추 토수 보선 행전, 줌치 쌈지 대님 허리띠, 약주머니 불끼, 휘양 복건 풍채 천의, 갖은 금침 베갯모에 쌍원 앙 수 놓기며, 오사 모사 각대 흉배에 학 놓기와, 초상난 집 원삼 제복, 질삼 선주 궁초 공단, 수주 남능갑사 운문 토주, 분주 명주 생초 퉁경이며, 북포 황저포 춘포 문포 제추리며, 삼베 백저 극상 세목 짜기와 혼인 장례 큰일 칠 때 음식 장만, 갖은 중계하기, 백산 과절 신선로며 종이 접기 과일 고이기와 잔칫상에 음식 차리기, 청 홍 황백 침향 염색하기를 일년 삼백예순 날, 하루 한시도 놀지 않고 손톱 발톱 잦아지게 품을 팔아 모을 적에, 푼을 모아 돈을 짓고, 돈을 모아 양을 만들어, 일수놀이 장리변으로 이웃집 착실한 데 빚을 주어 실수 없이 받아들여, 봄 가을 올리는 제사와 앞 못 보는 가장 공경, 사절 의복 아침저녁 반찬과 입에 맞는 갖은 별미, 비위 맞춰 지성 공경 언제나 한결같으니, 위아랫 마을 사람들이 곽씨부인 음전하다고 칭송했다.
하루는 심봉사가 말했다. “여보, 마누라.” “예.” “사람이 세상에 생겨 부부야 누군들 없겠소마는, 전생에 무슨 은혜로 이승에 부부되어, 앞 못 보는 나를 위해 잠시도 놀지 않고, 밤낮으로 벌어다가 어린아이 받들듯이, 행여 배고플까, 행여 추워할까, 의복 음식 때 맞추어 극진히 공양하니, 나는 편하다 하겠지만, 마누라 고생하는 일이 도리어 편치 못하니, 이제부터는 나한테 너무 마음쓰지 말고 사는 대로 살아갑시다. 우리 나이 마흔이 되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어 조상 제사를 끊게 되었으니, 죽어 저승에 간들 무슨 면목으로 조상을 뵈오며, 우리 부부 신세를 생각하면 죽어서 장례를 치를 일이나, 해마다 돌아오는 제삿날에 밥 한 그릇 물 한 모금 그 누가 차려 주겠소? 명산대찰에 공이나 들여보아, 다행히 눈먼 자식이라도 아들이고 딸이고 간에 낳아 보면 평생 한을 풀 것이니, 지성으로 빌어보시오.”
곽씨가 대답했다. “옛글에 이르기를, ‘불효한 일이 삼천 가지나 되지만 그 가운데 자식 못 낳는 일이 가장 크다.’고 했으니, 우리에게 자식 없음은 다 저의 탓이라, 마땅히 내쫓을 일인데도 당신의 넓으신 덕택으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자식 두고 싶은 마음이야 밤낮으로 간절하여, 몸을 팔고 뼈를 간들 못 하겠습니까마는, 집안 형편도 어렵고, 바르고 곧으신 당신 성품에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 말을 꺼내지 못했는데, 먼저 말씀하시니 지성으로 공을 들여 보겠습니다.”
그러고는 품팔아 모은 재물로 온갖 공을 다 들였다. 명산태찰 영신당과 오래 된 사당과 성황당이며, 여러 부처님, 보살님과 미륵님께 찾아다니며 칠성불공 나한불공 제석불공, 신중마지 노구마지 탁의시주 인등시주 창호시주 갖가지로 다 지내고, 집에 들어 있는 날은 조왕 성주 지신제를 극진히 드렸더니, 공든 탑이 무너지며 심은 나무가 꺾어지겠는가.
2. 태몽과 심청의 탄생
갑자년 사월 초파일에 꿈을 꾸니, 상서로운 기운이 공중에 어리고 무지개가 영롱한 가운데 어떤 선녀가 학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몸에는 색동옷이요 머리에는 화관이었다. 노리개를 느짓 차서 쟁그랑거리고 소리내며, 계화꽃 한 가지를 손에 들고 부인께 절하고 곁에 와 앉는 모양은 뚜렷한 달 기운이 품안에 드는 듯, 남해관음이 바다에서 다시 돋는 듯, 심신이 황홀하여 진정하기 어려웠다. 선녀가 부인에게 말했다. “저는 서왕모의 딸이었는데, 반도 복숭아 진상하러 가는 길에 옥진비자를 만나 둘이 노닥거리느라 시간을 좀 어겼더니, 상제께 죄를 얻어 인간에 내치시매 갈 바를 모르고 있는데, 태행산 노군과 후토부인 제불보살 석가여래님이 부인댁으로 가라 하시기에 왔사오니, 어여삐 받아주소서.” 하고는 품안으로 들어오기에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즉시 봉사님을 깨워 꿈 이야기를 하니 두 사람의 꿈이 서로 같았다. 그날 밤에 어찌 했던지, 과연 그 달부터 태기가 있었다.
곽씨 부인 마음을 어질게 가지고, 바르지 않은 자리에는 앉지를 않고, 깨끗하지 않은 음식은 먹지를 않으며, 음탕한 소리는 듣지를 않고, 나쁜 것은 보지를 않으며, 가장자리에는 서지를 않고, 삐뚤어진 자리에는 눕지를 않았다. 이렇게 하면서 열 달이 되니 하루는 해산기가 있었다. “애고 배야, 애고 허리야!”
심봉사가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놀라서 짚 한 줌을 깨끗이 추려 깔고 정화수 한 사발을 소반에 받쳐놓고 단정히 꿇어앉아, “비나이다, 비나이다, 삼신 제왕님께 비나이다. 곽씨 부인 늘그막에 낳는 아이오니 헌 치마에 외씨 빠지듯 순산하게 해주옵소서.” 하고 비는데, 난데없는 향내가 방에 가득하고, 오색 무지개가 둘러 정신이 가물가물한 가운데 아이를 낳고 보니 딸이었다.
심봉사가 삼을 갈라 뉘어 놓고 어쩔 줄 모르고 기뻐하는데, 곽씨 부인이 정신을 차리고 나서 물었다. “여보시오 봉사님, 아들 딸 가운데 무엇인가요?” 심봉사가 크게 웃고 아기의 아랫도리를 만져보니, 손이 나룻배 지나듯 거침없이 지나가니, “아마도 묵은 조개가 햇조개를 낳았나 보오.” 곽씨 부인 서러워하여 하는 말이, “공을 들여 늘그막에 얻은 자식이 딸이란 말이오?” 심봉사가 이른 말이, “마누라, 그런 말일랑 마오. 첫째는 순산이요, 딸이라도 잘 두면 어느 아들과 바꾸겠소. 우리 이 딸 고이 길러 예절부터 가르치고, 바느질 베짜기를 두루두루 가르쳐서 요조숙녀 되거들랑, 좋은 배필 가리어서 사이 좋게 살게 되면, 우리도 사위에게 의탁하고 외손에게 제사를 잇게 하지 못하겠소?”
더운 국밥 퍼다놓고 산모를 먹인 뒤에 혼자말로 아기를 어루었다.
금자동아, 옥자동아. 어허 간간 내 딸이야.
포진강 숙향이가 네가 되어 살아왔나. 은하수 직녀성이 네가 되어 내려왔나.
남전북답 장만한들 이보다 더 반가우며, 산호진주 얻었은들 이보다 더 반가울까.
어디 갔다 이제 와 생겼느냐.
3. 어머니 곽씨의 죽음과 심봉사의 통곡
이렇듯이 즐기더니 곽씨 부인 뜻밖에 산후 뒤탈이 났다. 어질고 음전한 곽씨 부인 해산한 지 초칠일 못다 가서 바깥 바람을 많이 쐬어 병이 났다. “애고 배야, 애고 머리야, 애고 가슴이야, 애고 다리야.” 지향없이 온몸을 앓으니, 심봉사가 기가 막혀 아픈 데를 두루 만지며, “정신차려 말을 하오. 체했는가, 삼신님데 노함인가?”
병세가 점점 위중하니 심봉사가 겁을 내어 건너 마을 성생원을 모셔다가 진맥한 후에 약을 쓸 제, 천문동 맥문동 반하 진피 계피 백복 염소 엽방풍 시호 계지, 행인 도인 신농씨 장백 초로에 약을 쓴들 죽을 병에는 약이 없는 법이라. 병세 점점 깊어져서 속절없이 죽게 되니, 곽씨 부인도 살지 못할 줄 알고 남편의 손을 잡고 긴 한숨을 쉬며 유언을 남겼다.
“우리 둘이 서로 만나 백년해로하려 하고 가난한 살림살이 앞 못보는 가장을 소홀히 하면 불편할까 걱정되어 아무쪼록 뜻을 받아 받들고자 하여, 추위 더위 가리지 않고 아랫동네 윗동네로 다니면서 품을 팔아 밥도 받고 반찬도 얻어, 식은 밥은 내가 먹고 더운 밥은 낭군 드려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게 극진히 공경해 왔는데, 천명이 그뿐인지 인연이 끊겨 그러한지 하릴없게 되었군요. 눈을 어찌 감고 갈까. 뉘라서 헌 옷 지어 주며 맛난 음식 뉘라서 권하리오. 내가 한 번 죽어지면 눈 어둔 우리 가장 사고무친 혈혈단신 의탁할 곳이 없어, 바가지 손에 들고 지팡막대 부여잡고 때 맞추어 나가다가 구렁에도 빠지고 돌에도 채여 엎푸러져서 신세 한탄 우는 양은 눈으로 보는 듯, 집집마다 찾아가서 밥 달라는 슬픈 소리 귀에 쟁쟁 들리는 듯, 나 죽은 뒤 혼백인들 차마 어찌 듣고 보며, 명산대찰 신공들여 사십에 낳은 자식 젖 한 번도 못 먹이고 얼굴도 채 못 보고 죽는단 말이오?”
“저 건너 이동지 집에 돈 열 냥 맡겼으니 그 돈 열 냥 찾아다가 초상에 보태 쓰고, 진어사댁 관복 한 벌 흉배 학을 놓다 못다하고 보에 싸서 아래 농에 넣었으니, 나 죽어 초상 뒤에 찾으러 오거든 염려 말고 내어주고, 건넛 마을 귀덕어미 내게 절친하게 다녔으니 어린아이 안고 가서 젖을 먹여 달라 하면 결코 괄세하지 않을 테니, 천행으로 이 자식이 죽지 않고 자라나서 제발로 걷거든, 앞세우고 길을 물어 내 무덤 앞에 찾아와서 ‘너의 죽은 어머니 무덤이다.’ 하고 가르쳐 모녀 상면하면 혼이라도 원이 없겠어요. 저 아이 이름을 심청이라 지어주고, 나 끼던 옥가락지 이 함 속에 있으니, 심청이 자라거든 날 본 듯이 내어주고, 나라에서 내려주신 돈 수복강녕(壽福康寧) 태평안락(太平安樂) 양편에 새긴 돈을 고운 비단 주머니에 주홍 당사 벌 매듭 끈을 달아 두었으니, 그것도 내어 채워주셔요.” 하고 잡았던 손을 뿌리치고 한숨짓고 돌아누워 딸꾹질 두세 번에 숨이 덜컥 지니 심봉사가 그제야 죽은 줄 알고,
“애고 애고, 마누라, 참으로 죽었는가? 이게 웬일인고.” 가슴을 꽝꽝 두드리며 머리를 탕탕 부딪치며 내리 궁글 치궁글며 엎어지며 자빠지며 발구르며 슬퍼하며, “여보, 마누라. 그대 살고 내가 죽으면 저 자식을 키울 것을, 내가 살고 그대 죽어 저 자식을 어찌 키우잔 말이오? 애고 애고, 모진 목숨, 살자 하니 무엇을 먹고 살며, 함께 죽자 한들 어린 자식 어찌 할까. 꽃도 졌다 다시 피고 해도 졌다 돋건마는, 우리 마누라 가신 데는 가면 다시 못 오는가. 나는 뉘를 찾아갈까, 애고 애고, 설운지고.”
이렇듯이 애통할 제 도화동 사람들이 남녀노소 없이 모여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이, “음전하던 곽씨 부인 불쌍히도 죽었구나. 우리 동네 백여 집이 십시일반으로 장례나 치러주세.” 공론이 모아져서 수의와 관을 마련하여 양지바른 곳을 가리어서 사흘만에 장례할 제 슬픈 소리로 상두가를 불렀다.
원어 원어 원어리 넘차 원어. 북망산이 멀다더니 건넛산이 북망일세.
원어 원어 원어리 넘차 원어. 황천길이 멀다더니 방문 밖이 황천이라.
불쌍하다 곽씨 부인, 행실도 음전하고 재질도 기이터니, 늙도 젊도 아니해서 영결종천 하였구나.
어화 너화 원어.
이리저리 건너갈 제 심봉사 거동 보니, 어린아이 강보에 싼 채 귀덕어미 맡겨 두고, 지팡막대 흩어 짚고 논틀 밭틀 좇아와서 상여 뒤채 부여잡고 섧게 울었다. 산소에 당도하여 안장하고 봉분을 다 한 뒤에, 심봉사가 제를 지내는데 서러운 심정으로 제문 지어 읽었다.
아아, 부인이여, 아아, 부인이여. 그토록 음전하던 부인이여, 그 누군들 따를 수가 있으리오.
한평생 같이 살자 기약하고, 급히 떠나 어디로 갔소. 이 아일 남겨두고 떠나가니 이것을 어찌 길러내며
한 번 가면 못 돌아올 저승에서 어느 때나 오려는가. 깊은 산에 묻혀 있어 자는 듯이 누웠으니
말 못 하고 조용하니 보고 듣기 어려워라. 눈물 흘러 옷깃 적셔 젖는 눈물 피가 되고
애끓는 마음으로 빌어본들 살 길이 전혀 없다. 그대 생각 간절하나 바라본들 어이하며
이승 저승 길이 달라 그 뉘라서 위로하리. 후세에나 만나려나 이승에는 한이 없네.
변변찮은 제물이나 많이 먹고 돌아가오.
제문을 막 읽더니 숨이 넘어갈 듯하여, “애고 애고. 이게 웬일인고. 가오 가오, 날 버리고 가는 부인 탄하여 무엇하리.” 슬피 우니 장례에 온 손님들이 말려 진정시켰다.
4. 심봉사의 육아 — 동냥젖으로 키운 심청
돌아와서 집이라고 들어가니 부엌은 적적하고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이렇게 애통하다가 마음을 돌려 생각하기를,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올 수 없는 법이라. 할 수 없으니 이 자식이나 잘 키워내리라.’ 하고 어린아이 있는 집을 차례로 물어 동냥젖을 얻어 먹일 적에, 눈어두워 보지는 못하고 귀는 밝아 눈치로 가늠하고 앉았다가, 아침 해가 돋을 적에 우물가에서 들리는 소리 얼른 듣고 나서면서, “여보시오 아주머님, 여보 아씨님네, 이 자식 젖을 좀 먹여주오. 어미 없는 어린 것이 불쌍하지 아니하오. 댁네 귀하신 아기 먹이고 남은 젖 한 통 먹여 주시오.” 하니 뉘 아니 먹여주리.
젖을 많이 얻어 먹여서 아기 배가 볼록하면 심봉사가 좋아라고 양지바른 언덕 밑에 쪼그려 앉아 아기를 어루었다.
아가 아가 자느냐. 아가 아가 웃느냐.
어서 커서 너의 어머니같이 어질고 똑똑하여 효행 있어 아비에게 귀한 일을 보여라.
어느 할머니 있어 보아주며, 어느 외가 있어 맡길소냐.
하루라도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어서 사이사이 동냥할 제 삼베 전대 두 동 지어 한 머리는 쌀을 받고 한 머리는 벼를 받아 모으고, 장날이면 가게마다 다니며 한푼 두푼 얻어 모아 아이 간식거리로 갱엿이나 홍합도 샀다. 이렇게 살면서 매월 초하루 보름과 소상, 대상, 기제사를 염려없이 지냈다.
심청이는 장래 귀히 될 사람이라, 천지 귀신이 도와주고 여러 부처와 보살이 남몰래 도와주어 잔병 없이 자라나서 제발로 걸어다니며 어린 시절을 지났다. 무정한 세월은 물 흐르듯하여 어느덧 예닐곱 살이 되니, 얼굴이 아름답고 행동이 민첩하고, 효행이 뛰어나고 소견이 탁월하고 인자함이 기린이라. 아버지의 조석 공양과 어머니의 제사를 법도대로 할 줄 아니, 뉘 아니 칭찬하리.
5. 효녀 심청의 밥 빌기
하루는 아버지께 여쭈었다. “까마귀 같은 새짐승도 저녁이 되면 먹을 것을 물어다가 제 어미를 먹일 줄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 새짐승만 못하겠어요? 아버지 눈 어두우신데 밥 빌러 가시다가 높은 데 깊은 데와 좁은 길로 여기저기 다니다가 엎어져서 상하기 쉽고, 비바람 부는 궂은 날과 눈서리 치는 추운 날이면 병이 나실까 밤낮으로 염려됩니다. 오늘부터 아버지는 집이나 지키시면 제가 나서서 밥을 빌어다가 끼니 걱정 덜게 해드리겠어요.”
심봉사가 웃으며 하는 말이, “네 말이 기특하구나. 인정은 그러하나 어린 너를 내보내고 앉아 받아먹는 내 마음은 어찌 편하겠느냐.” 심청이 다시 여쭈었다. “자로는 어진 사람으로 백리 길에 쌀을 져다 부모를 봉양했고, 제영이는 어진 여자였지만 낙양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제 몸 팔아 구해냈다는데, 그런 일을 생각하면 사람이 예나 지금이 다르겠어요, 고집하지 마셔요.” 심봉사가 옳게 여겨, “기특하다 내 딸아, 효녀로다 내 딸아. 네 말대로 그리 하여라.” 하고 허락했다.
심청이 이날부터 밥빌러 나설 적에 먼 산에 해 비치고 앞마을에 연기나면, 헌 버선에 대님치고 말기만 남은 베치마, 앞섬 없는 겹저고리 이렁저렁 얽어메고, 청목 휘양 둘러쓰고 버선 없이 발을 벗고, 뒤축 없는 신을 끌고 헌 바가지 옆떼 끼고 노끈 매어 손에 들고, 엄동설한 모진 날에 추운 줄을 모르고 이집 저집 문앞 문앞 들어가서 간절히 비는 말이, “어머니는 세상 버리시고 우리 아버지 눈 어두워 앞 못 보시는 줄 뉘 모르시겠어요? 십시일반이오니 밥 한 술 덜 잡수시고 주시면 눈 어두운 저의 아버지 시장을 면하겠습니다.” 하니, 보고 듣는 사람들이 마음에 감동하여 밥 한 술, 김치 한 그릇을 아끼지 않고 주며 먹고 가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심청이 하는 말이, “추운 방에 늙으신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실텐데 저 혼자만 먹겠습니까? 어서 바삐 돌아가서 아버지와 함께 먹지요.”
이렇게 얻어서 두세 집 밥을 모아서 넉넉하면 급히 돌아와서 방문 앞에 들어서며, “아버지 춥고 시장하지 않으셨어요, 오래 기다리셨지요.” 심봉사가 딸을 보내고 마음 둘 데 없어 탄식하다가 이런 소리를 얼른 반겨 듣고 문을 펄쩍 열고 두 손 덥석 잡고, “손 시렵지.” 하며 손을 입에 대고 훌훌 불며, 발도 차다고 어루만지며, 혀를 끌끝 차고 눈물을 글썽이며, “애고 애고, 애닯구나 너의 어머니. 무정하다 내 팔자야. 너를 시켜 밥을 빌어먹고 사잔 말이냐? 애고 애고, 모진 목숨 구차히 살아서 자식 고생만 시키는구나.”
심청의 극진한 효성, 아버지를 위로하기를, “아버지 그런 말씀 마셔요.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의 효도 받는게 이치에 떳떳하고 사람의 도리에 당연하니, 그런 걱정일랑 마시고 진지나 잡수셔요.” 하며 아버지 손을 잡고 “이것은 김치고, 이것은 간장이어요, 시장하신데 많이 잡수셔요.”
이렇듯이 공양하며 춘하추동 사시절 없이 동네 거지 되었더니, 한해 두해 너댓 해 지나가니 천성이 재바르고 바느질 솜씨가 능란하여 동네 바느질로 공밥 먹지 아니하고, 삯을 주면 받아와서 아버지 의복과 반찬 하고, 일 없는 날은 밥을 빌어 근근이 연명해갔다. 세월이 물 흐르듯 흘러가서 심청의 나이 열다섯 살이 되었다. 얼굴이 빼어나고 효행이 뛰어나며 행동이 침착하고 하는 일이 비범하니 타고난 성품이지 가르쳐서 될 일인가? 여자 중의 군자요, 새 중의 봉황이었다.
6. 장승상 부인과의 만남
이러한 소문이 온 이웃에 자자하니, 하루는 월명 무릉촌 장승상 댁 시비(侍婢)가 들어와서, 부인이 심소저를 부른다 하기에 심청이 아버지께 여쭈었다. “어른이 부르시니 시비를 따라 다녀오겠습니다. 제가 가서 더디더라도 잡수실 진지상을 보아 두었으니 시장하시거든 잡수셔요. 부디 저 오기를 기다려 조심하셔요.”
시비를 따라가며 손을 들어 가리키는 데를 바라보니, 문 앞에 심은 버들 아늑한 마을을 둘러 있고, 대문 안에 들어서니 왼편에 벽오동은 맑은 이슬이 뚝뚝 떨어져 학의 꿈을 놀래 깨우고, 오른편에 선늙은 소나무는 청풍이 건듯 부니 늙은 용이 굼틀거리는 듯, 높은 누각 앞에 부용당은 갈매기가 날고 있는데 연잎은 물 위에 높이 떠서 동실넙적하고, 금붕어 둥둥, 안중문 들어서니 규모도 굉장하고 대문과 창문에는 무의가 찬란한데, 머리가 반쯤 센 부인이 옷매무새 단정하고 살결이 깨끗하여 복스럽게 보였다. 심소저를 보고 반겨하여 손을 쥐며, “네가 과연 심청이냐? 듣던 말과 같구나.”
자세히 살펴보니, 타고난 미인이었다. 옷깃을 여미고 앉은 모습은 비 개인 맑은 시냇가에 목욕하고 앉은 제비가 사람보고 놀라는 듯, 황홀한 저 얼굴은 하늘 가운데 돋은 달이 수면에 비치었고, 바라보는 저 눈길은 새벽빛 맑은 하늘에 빛나는 샛별 같고, 두 뺨에 고운 빛은 늦은 봄 산자락에 부용이 새로 핀 듯, 두 눈의 눈썹은 초생달 정신이요, 흐트러진 머리털은 새로 자란 난초 같고, 가지런한 귀밑머리는 매미의 날개라.
부인이 칭찬하기를, “전생의 일을 네가 모를 테지만 분명히 선녀로다. 내 수양딸이 되면 살림도 가르치고 글공부도 시켜 친딸같이 길러 내어 말년 재미 보려 하니, 네 뜻이 어떠하냐?”
심소저가 일어나 두 번 절하고 여쭈었다. “팔자가 기구하여 태어난 지 이레 안에 어머니가 세상을 버리셔서, 눈 어두운 아버지가 동냥젖 얻어 먹여 겨우 살았습니다. 오늘 승상부인께서 저의 미천함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딸을 삼으려 하시니, 어머니를 다시 뵈온 듯 황송감격하여 마음을 둘 곳이 전혀 없습니다. 부인의 말씀을 좇자 하면 몸은 영화롭고 부귀하겠지만, 눈 어두우신 우리 아버지 음식 공양과 사철 의복 뉘라서 돌보아 드리겠습니까? 제가 아버지 모시기를 어머니 겸 모시고, 아버지는 저를 믿기를 아들 겸 믿사오니,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제가 이제까지 살았겠습니까? 제 몸이 다하도록 길이 모시려 하옵니다.”
말을 마치며 눈물이 얼굴에 젖는 모습은 봄바람에 가는 빗방울이 복사꽃에 맺혔다가 점점이 떨어지는 듯하니, 부인도 또한 가련하여 등을 어루만지며, “효녀로다 네 말이여, 마땅히 그래야지.” 날이 저무니 부인이 옷감과 양식을 후히 주어 시비와 함께 보낼 적에, “너는 부디 나를 잊지 말고 모녀간의 의를 두면 이 늙은이의 다행이 되리라.”
7. 공양미 삼백 석 — 몽운사 화주승
이때 심봉사는 홀로 앉아 심청을 기다릴 제, 날이 저문 줄 짐작하고 지팡막대 찾아 짚고 사립 밖에 나가다가 한 길 넘은 개천에 밀친 듯이 떨어지니, 얼굴에 흙빛이요 의복에 얼음이라. 뒤뚱거리다 도로 더 빠지며 나오자니 미끄러져 하릴없이 죽게 되어, 아무리 소리친들 해는 저물고 행인은 끊겼으니 뉘라서 건져주리.
마침 이때 몽운사 화주승이 절을 새로 지으려고 시주책을 둘러메고 내려왔다가, 바람결에 애처로운 소리가 들렸다. “사람 살려!” 화주승은 자비한 마음에 소리나는 곳을 찾아가니, 어떤 사람이 개천에 빠져서 거의 죽게 되었다. 급한 마음에 뛰어들어 심봉사 고추상투를 덥벅 잡아 들어올려 건져놓으니, 전에 보던 심봉사였다.
화주승이 심봉사를 업어다 방안에 앉히고 빠진 까닭을 물었다. 심봉사는 신세를 한탄하다가 전후 사정을 말하니, 그 중이 봉사더러 하는 말이, “딱하시군요. 우리 절 부처님은 영험이 많으셔서 빌어서 아니되는 길이 없고 구하면 응답을 주신답니다. 공양미 3백 석을 부처님께 올리고 지성으로 불공을 드리면 반드시 눈을 떠서 성한 사람이 되어 천지 만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심봉사가 집안 형편은 생각지 않고 눈 뜬단 말에 혹하여, “그러면 3백 석을 적어 가시오.” 화주승이 바랑을 펼쳐 놓고 제일 윗줄 붉은 칸에 ‘심학규 쌀 3백 석.’ 이라 적어 가지고 인사하고 갔다.
그런 뒤에 심봉사는 화주승을 보내고 다시금 생각하니 시주쌀 3백 석을 장만할 길이 없어 복을 빌려다가 도리어 죄를 얻게 되니 이 일을 어이하리. “애고 애고 내 팔자야, 망녕할사 내 일이야. 공양미 3백 석을 호기있게 적어 놓고 백 가지로 생각한들 방법이 없구나.”
한창 이리 탄식할 제, 심청이 바삐 와서 아버지 모습 보고 깜짝 놀라 발을 구르면서 온 몸을 두루 만지며 자초지종을 여쭈니 심봉사가 그제야 사연을 털어놓았다. 심청이 그 말을 반겨 듣고 아버지를 위로한다. “아버지 걱정 마시고 진지나 잡수셔요. 아버지 눈을 떠서 천지 만물 보신다면 공양미 3백 석을 어떻게 해서든지 준비하여 몽운사로 올리지요.” “네가 아무리 애를 쓴들 이런 어려운 형편에 어찌 할 수 있겠느냐?” “왕상은 얼음 깨서 잉어를 얻었고,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니, 공양미는 얻을 길이 있을 테니 깊이 근심 마셔요.”
8. 남경 뱃사람과의 거래 — 몸을 파는 심청
갖가지로 위로하고, 그날부터 목욕재계하여 몸을 깨끗이 하며 집을 청소하고 뒷곁에 단을 쌓아, 밤이 깊어 사방이 고요할 때 등불을 밝혀 놓고 정화수 한 그릇을 떠 놓고 북쪽을 향하여 아버지의 눈이 밝아지기를 빌었다.
이렇게 빌기를 계속하던 중에, 하루는 들으니, ‘남경 장사 뱃사람들이 열다섯 살 난 처녀를 사려 한다.’ 하기에, 심청이 그 말을 반겨 듣고 귀덕어미를 사이에 넣어 사람 사려 하는 까닭을 물으니, “우리는 남경 뱃사람으로 인당수를 지나갈 제 제물로 제사하면 가이없는 너른 바다를 무사히 건너고 수만 금 이익을 내기로, 몸을 팔려 하는 처녀가 있으면 값을 아끼지 않고 주겠습니다.” 하기에 심청이 반겨 듣고, “나는 이 동네 사람인데, 우리 아버지가 앞을 못 보셔서 공양미 3백 석이 필요하니 나를 사 가는 것이 어떠하실런지요?” 뱃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효성이 지극하나 가련하군요.” 하며 허락하고, 즉시 쌀 3백 석을 몽운사로 날라다 주고, “오는 3월 보름날에 배가 떠나기로 되어 있습니다.” 하고 갔다.
심청이 아버지께 공양미를 구했다고 여쭙기를, “장승상댁 노부인이 저를 수양딸로 삼으려 하셔서 쌀 3백 석을 내어주시기에 수양딸로 팔리기로 했습니다.” 심봉사가 물색도 모르면서 이 말만 반겨 듣고, “그렇다면 고맙구나. 언제 가느냐?” “다음 달 보름날에 데려간다 합디다.” “어허, 그 일 매우 잘 되었다.”
9. 이별을 준비하는 심청
심청이 그날부터 곰곰 생각하니, 눈 어두운 백발 아비 영 이별하고 죽을 일과 사람이 세상에 나서 열다섯 살에 죽을 일이 정신이 아득하고 일에도 뜻이 없어 식음을 전폐하고 근심으로 지내다가, 다시금 생각하기를, ‘엎지러진 물이요, 쏘아 논 화살이다.’ 날이 점점 가까워오니, ‘이러다간 안 되겠다. 내가 살았을 제 아버지 의복 빨래나 해두리라.’ 하고, 춘추 의복 상침 겹것, 하절 의복 한삼 고의 박아 지어 들여놓고, 동절 의복 솜을 넣어 보에 싸서 농에 넣고, 청목으로 갓끈 접어 갓에 달아 벽에 걸고, 망건 꾸며 당줄 달아 걸어 두었다.
배 떠날 날을 헤아리니 하룻밤이 남아 있다. 밤은 깊어 삼경인데 은하수 기울어졌다. 촛불을 대하여 두 무릎을 마주 꿇고 머리를 숙이고 한숨을 길게 쉬니, 아무리 효녀라도 마음이 온전하겠는가. ‘아버지 버선이나 마지막으로 지으리라.’ 하고 바늘에 실을 꿰어드니, 가슴이 답답하고 두 눈이 침침, 정신이 아득하여 하염없는 울음이 가슴 속에서 솟아나니, 아버지가 깰까 하여 크게 울지는 못하고 흐느끼며 얼굴도 대어보고 손발도 만져본다.
“날 볼 날이 몇 밤인가? 내가 한번 죽어지면 누굴 믿고 사실가? 애닯다, 우리 아버지. 내가 철을 알고 나서 밥 빌기를 놓으시더니, 내일부터라도 동네 거지 되겠으니 눈치인들 오죽하며 멸시인들 오죽할까. 무슨 험한 팔자로서 초칠일 안에 어머니 죽고 아버지조차 이별하니 이런 일도 또 있을까?”
어느덧 동방이 밝아오니, “닭아 닭아, 우지 마라. 제발 덕분에 우지 마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죽기는 설쟎아도 의지 없는 우리 아버지 어찌 잊고 가잔 말이냐?” 어느덧 동방이 밝아오니, 심청이 아버지 진지나 마지막 지어드리리라 하고 문을 열고 나서니, 벌써 뱃사람들이 사립문 밖에서, “오늘이 배 떠나는 날이오니 수이 가게 해 주시오.” 심청이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없어지고 손발에 맥이 풀리며 뱃사람들을 겨우 불러, “잠깐 기다리면 진지나 마지막으로 지어 잡수시게 하고 말씀 여쭙고 떠나게 하겠어요.”
10. 아버지와의 마지막 이별
심청이 들어와 눈물로 밥을 지어 아버지께 올리고, 상머리에 마주앉아 아무쪼록 진지 많이 잡수시게 하느라고 자반도 떼어 입에 넣어 드리고 김쌈도 싸서 수저에 놓으며, “진지를 많이 잡수셔요.” 심봉사는 철도 모르고, “야, 오늘은 반찬이 유난히 좋구나.”
심청이 사당에 하직하려고 들어가 울며 하직 인사를 올렸다. “못난 여손(女孫) 심청이는 아비 눈 뜨기를 위하여 인당수 제물로 몸을 팔려가오매, 조상 제사를 끊게 되오니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울며 하직하고 사당문 닫은 뒤에 아버지 앞에 나와 두 손을 부여잡고 기절하니, 심봉사가 깜짝 놀라, “아가 아가, 이게 웬일이냐? 정신 차려 말하거라.”
심청이 여쭙기를, “제가 못난 딸 자식으로 아버지를 속였어요. 공양미 3백 석을 누가 저에게 주겠어요. 남경 뱃사람들에게 인당수 제물로 몸을 팔아 오늘이 떠나는 날이니 저를 마지막 보셔요.” 심봉사가 이 말을 듣고, “참말이냐, 참말이냐? 애고 애고, 이게 웬말인고? 못 가리라, 못 가리라. 네가 날더러 묻지도 않고 네 마음대로 한단 말이냐? 네가 살고 내가 눈을 뜨면 그는 마땅히 할 일이나, 자식 죽여 눈을 뜬들 그게 차마 할 일이냐? 나는 뉘를 찾아갈까, 눈을 팔아 너를 살 터에 너를 팔아 눈을 뜬들 무엇을 보려고 눈을 뜨리? 돈도 싫고 쌀도 싫다, 네 이놈 상놈들아!”
심청이 아버지를 붙들고 울며 위로하기를, “아버지 할 수 없어요. 저는 이미 죽지마는 아버지는 눈을 떠서 밝은 세상 보시고, 착한 사람 구하셔서 아들 낳고 딸을 낳아 후사나 전하고, 못난 딸자식은 생각지 마시고 오래오래 평안히 계십시오. 이도 또한 천명이니 후회한들 어찌하겠어요?”
뱃사람들이 그 딱한 형편을 보고 쌀 2백 석과 돈 3백 냥이며, 무명 삼베 각 한 동씩 마을에 들여 놓고 동네 사람들에게 심봉사 생계를 부탁했다. 무릉촌 장승상댁 부인이 그제야 이 말을 듣고 심소저를 불러 쌀 3백 석을 다시 내어줄 테니 뱃사람들 도로 주고 당치 않은 말 다시 말라 하시니, 소저 여쭈었다. “당초에 말씀 못 드린 것을 이제야 후회한들 무엇하겠습니까? 남에게 몸을 허락하여 약속을 정한 뒤에 다시 약속을 어기면 못난 사람들 하는 짓이니, 그 말씀을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부인의 하늘 같은 은혜는 저승으로 돌아가서 결초보은하겠습니다.”
심소저가 울며 부인께 이별의 글을 썼다.
사람의 죽고 사는 게 한 꿈 속이니, 정에 끌려 어찌 굳이 눈물을 흘리랴마는
세간에 가장 애끓는 곳이 있으니, 풀 돋는 강남에 사람이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라.
심청이 돌아와서 아버지께 하직하니 심봉사가 붙들고 뒹굴며 괴로워하여, “네가 날 죽이고 가지 그저는 못 가리라. 날 데리고 가거라.” 심청이 아버지를 위로하기를, “부자간 천륜을 끊고 싶어 끊사오며 죽고 싶어 죽겠습니까마는, 액운이 막혀 있고 생사가 때가 있어 하느님이 하신 일이니 한탄한들 어찌하겠어요?” 하고 저의 아버지를 동네 사람에게 붙들게 하고 뱃사람들을 따라갔다.
11. 인당수를 향하여
소리내어 울며 치마끈 졸라매고 흐트러진 머리털은 두 귀 밑에 늘어지고 비같이 흐르는 눈물 옷깃을 적신다. 엎더지며 자빠지며 붙들어 나갈 제 건넛집 바라보며, “너희는 팔자 좋아 양친 모시고 잘 있거라.” 동네 남녀노소 없이 눈이 붓도록 서로 붙들고 울다가 마을 어귀에서 서로 손을 놓고 헤어졌다.
한 걸음에 돌아보며 두 걸음에 눈물지며 강머리에 다다르니, 뱃머리에 판자 깔고 심청이를 인도하여 빗장 안에 실은 후에 닻을 감고 돛을 달아 여러 뱃사람들이 소리를 한다.
어기야, 어기야, 어기양, 어기양.
소리를 하며 북을 둥둥 울리면서 노를 저어 배질하며 물결에 배를 띄워 떠나간다.
― 하 권 ―
12. 남해로의 항해 — 소상팔경을 지나며
망망한 너른 바다에 거친 물결이 이니, 물 위의 갈매기는 갈대 숲으로 날아들고 북쪽의 기러기 남으로 돌아온다. 출렁이는 물소리는 고깃배 소리가 분명하나, 굽이친 물줄기에 사람 자취 보이지 않고 산봉우리만 푸르렀다. 부르는 뱃노래에 온갖 근심 담겨 있다 함은 나를 두고 한 말이리라. 황학루를 당도하니,
해 저문 저녁 날에 고향은 어디인가, 강산에 아지랑이 내 마음 시름겹네.
하던 최호의 유적이요, 소상강 들어가니 악양루 높은 누각 호수 위에 떠 있고, 동남으로 바라보니 산들은 겹겹이 쌓여 있고 강물은 넓고 넓다. 소상팔경이 눈앞에 벌여 있어 찬찬히 둘러보니 물결이 아득한데, 아황 여영의 눈물이요, 대나무에 어린 반점 점점이 맺혔으니 ‘소상강 밤비’가 이 아니냐.
서산에 다다르니 풍랑이 크게 치고 찬 기운이 돌며 검은 구름이 두르더니, 오나라 충신 오자서의 혼이 나타나 한을 토하고, 또 초나라 굴원의 혼이 나타나 말했다. “나는 초나라 굴원이라, 충성을 다하다가 이 물에 빠졌더니 그대는 부모 위해 효성으로 죽고 나는 충성을 다하더니, 충효는 일반이라 위로코자 내 왔노라. 바다 만 리 먼먼 길에 평안히 가옵소서.”
심청이 생각하기를, ‘죽은 지 수천 년에 혼백이 남아 있어 사람의 눈에 보이니 나도 또한 귀신이라. 나 죽을 징조로구나.’ 하며 슬피 탄식하기를,
가을 바람 쌀쌀하게 저녁나절 일어나고, 너른 세상 환하여 밝게 빛난다.
지는 노을 외로운 갈매기와 나란히 날고, 가을에 맑은 물은 하늘과 한 빛이네.
13. 인당수 — 심청의 투신
한 곳을 다다라 돛을 지우고 닻 내리니 여기가 바로 인당수라. 거센 바람 크게 일어 바다가 뒤누우며 어룡이 싸우는 듯, 벽력이 일어난 듯, 너른 바다 한가운데 일천 석 실은 배, 노도 잃고 닻도 끊어지고 용총도 부러지며 키도 빠지고, 바람불고 물결쳐 안개 비 뒤섞어 잦아진데 갈 길은 천리 만리 남아 있고, 사면은 어둑하고 천지가 적막하여 간신히 떠오는데 뱃전은 탕탕, 돛대도 와지끈, 순식간에 위태하니, 도사공 이하 모두들 겁을 내어 정신이 달아나고, 고사 제물 차릴 적에 심청을 목욕시켜 흰 옷으로 갈아입혀 상머리에 앉힌 뒤에, 도사공이 앞에 나서 북을 둥둥 울리면서 고사를 지냈다.
고사를 마치고, “심청은 시각이 급하니 어서 바삐 물에 들라.” 심청이 거동 보소. 두 손을 합장하고 일어나서 하느님 전 비는 말이,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느님 전에 비나이다. 심청이 죽는 일은 추호라도 섧지 아니하여도, 병든 아버지 깊은 한을 생전에 풀려하고 이 죽음을 당하오니 명천은 감동하사 어두운 아비 눈을 밝게 띄워 주옵소서.” 눈물지며 하는 말이, “여러 선인님네 평안히 가옵시고 억십만 금 이문 남겨 이 물가를 지나거든 나의 혼백 불러내어 물밥이나 주시오.”
하며 안색을 변치 않고 뱃전에 나서보니 티없이 푸른 물은 뒤둥구리 구비쳐서 물거품 북적찌데한데, 심청이 기가 막혀 뒤로 벌떡 주저앉아 뱃전을 다시 잡고 기절하여 엎딘 양은 차마 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심청이 다시 정신차려 할 수 없어 일어나서 온 몸을 잔뜩 끼고 치마폭을 뒤집어 쓰고, 종종걸음으로 물러섰다 바다 속에 몸을 던지며,
“애고 애고, 아버지 나는 죽소.”
뱃전에 한 발이 지칫하며 거꾸로 풍덩 빠져 놓으니, 꽃 같은 몸이 풍랑에 씻쓸리고 밝은 달이 물 속에 잠기어 너른 바다 속에 곡식낱이 빠진 것 같았다. 새는 날 기운같이 물결은 잔잔하고 광풍은 삭아지며 안개 자욱하여 가는 구름 머물렀고, 맑은 하늘 푸른 안개 새는 날 동방처럼 날씨 명랑했다. 도사공 하는 말이, “고사를 지낸 후에 날씨가 순통하니 심낭자 덕 아니신가?”
14. 수궁의 심청 — 수정궁에서의 생활
이때 심낭자는 너른 바다에 몸이 들어 죽은 줄로 알았는데, 무지개 영롱하고 향내가 코를 찌르더니, 맑은 피리 소리 은근히 들리기에 몸을 머물러 주저할 제, 옥황상제 하교하사 인당수 용왕과 사해용왕 지부왕에게 일일이 명을 내리셨다. “내일 출천 효녀 심청이가 그곳에 갈 것이니 몸에 물 한 점 묻지 않게 할 것이며, 수정궁으로 모셔들여 3년 받들고 단장하여 세상으로 돌려보내라.” 명이 내리니 사해용왕과 지부왕이 모두 다 놀라 두려워하며, 심낭자가 물로 뛰어들기에 선녀들이 받들어 가마에 올렸다.
수정궁으로 들어가니 인간세계와는 다른 별천지였다. 고래 뼈를 걸어서 대들보를 삼으니 신령스런 빛깔이 햇빛에 빛나고, 물고기 비늘을 모아서 기와를 삼으니 상서로운 기운이 공중에 어린다. 값진 보물로 치장한 궁궐은 하늘의 빛과 어울리고, 유리 소반 옥돌 상에 유리 술잔 호박 받침, 자하주 천일주에 기린포로 안주하고, 옥돌 소반에다 반도 복숭 담아 있고, 한가운데 삼천벽도 덩그렇게 고였는데 신선 음식 아닌 것이 없었다. 수궁에 머물 적에 옥황상제의 명이니 거행이 오죽하랴. 사해용왕이 다 각기 시녀를 보내어 아침 저녁으로 문안하고, 사흘마다 작은 잔치, 닷새마다 큰 잔치를 베풀면서 심청을 받들었다.
이때 무릉촌 장승상 부인이 심소저의 글을 벽에다 걸어두고 날마다 살펴보아도 빛이 변치 아니 하더니, 하루는 글 족자에 물이 흐르고 빛이 변하여 검어지니 ‘심소저가 이제 물에 빠져 죽었는가?’ 하여 한없이 슬피 탄식하고 있는데, 이윽고 물이 걷히고 빛이 도로 황홀해지니 부인이 이상히 여겨 ‘누가 구하여 살았는가?’ 하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날 밤에 장승상 부인이 제물을 갖추어 강가에 나아가, 심소저를 위하여 혼을 불러 위로하는 제사를 바치며 통곡하니 천지 미물인들 어찌 아니 감동하리.
15. 어머니 곽씨와의 수궁 재회
하루는 광한전 옥진부인이 오신다 하니 수궁이 뒤눕는 듯, 용왕이 겁을 내어 사방이 분주하였다. 원래 이 부인은 심봉사의 처 곽씨 부인이 죽어 광한전 옥진부인이 되어 있었는데, 그 딸 심소저가 수중에 왔단 말을 듣고 상제께 말미를 얻어 모녀상면하려 하고 오는 길이었다. 이윽고 가마에 내려 섬뜰에 올라서며,
“내 딸 심청아!” 부르는 소리에 어머니인 줄 알고 왈칵 뛰어 나서며, “어머니 어머니, 나를 낳고 초칠일 안에 죽었으니 지금까지 15년을 얼굴도 모르오니 천지간 한없이 깊은 한이 개일 날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이곳에 와서 어머니와 다시 만날 줄을 알아서 오는날 아버지 앞에서 이 말씀을 여쭈었더라면, 날 보내고 설운 마음 저윽이 위로했을 것을…. 우리 모녀는 서로 만나보니 좋지마는 외로우신 아버님은 뉘를 보고 반기시겠습니까? 아버지 생각이 새롭군요.”
부인이 울며 말하기를, “나는 죽어 귀히 되어 인간 생각 아득하다. 너의 아버지 너를 키워 서로 의지하였다가 너조차 이별하니 너 오던 날 그 모습이 오죽하랴. 너의 아버지 가난에 절어 그 모습이 어떠하며 아마도 많이 늙었겠구나. 그간 수십 년에 재혼이나 하였으며, 뒷마을 귀덕어미 네게 극진하지 않더냐.” 얼굴도 대어 보고 손발도 만져 보며, “귀와 목이 희니 너의 아버지 같기도 하다. 내 끼던 옥지환도 네가 지금 가졌으며, 수복강녕 태평안락 양편에 새긴 돈 붉은 주머니도, 애고, 네가 찼구나.”
“오늘 나를 다시 이별하고 너의 아버지를 다시 만날 줄을 네가 어찌 알겠느냐? 광한전 맡은 일이 너무도 분주해서 오래 비워두기 어렵기로 다시금 이별하니 애통하고 딱하다만, 내 맘대로 못 하니 한탄한들 어이 할소냐? 후에라도 다시 만나 즐길 날이 있으리라.” 하고 떨치고 일어서니 소저 만류하지 못하고 따를 길이 없어 울며 하직하고 수정궁에 머물었다.
16. 심봉사의 방랑과 뺑덕어미
이때 심봉사는 딸을 잃고 모진 목숨 죽지 못하여 근근히 살아갈 제, 도화동 사람들이 심소저가 지극한 효성으로 물에 빠져 죽은 일을 불쌍히 여겨 타루비(墮淚碑)를 세우고 글을 지었다. 강가를 오가는 행인이 비문을 보고 아니 우는 이 없고, 심봉사는 딸이 생각나면 그 비를 안고 울었다.
마을 사람들이 심맹인의 돈과 곡식을 늘려서 집안 형편이 해마다 늘어갔다. 이때 그 마을에 서방질 일쑤 잘하는 뺑덕어미가 심봉사의 돈과 곡식이 많이 있는 줄을 알고 자원하여 첩이 되어 살았는데, 양식 주고 떡 사먹기, 베를 주어 돈을 받아 술 사먹기, 마을 사람더러 욕설하기, 온갖 악증을 다 겸하였으되, 심봉사는 여러 해 주린 판이라 그 중에 동침하는 즐거움은 있어 아무런 줄 모르고 집안살림이 점점 줄어드니, 심봉사가 생각다 못해서 물었다. “여보소, 뺑덕이네. 우리 형편 착실하다고 남이 다 수군수군했는데, 근래에 어찌해서 형편이 못 되어 다시금 빌어먹게 되어 가니.”
약간 남은 살림살이 다 팔아서 이고지고 타향으로 떠돌이 생활에 나섰다. 하루는 서울에서 맹인잔치를 베푼다는 소문을 듣고 뺑덕어미더러, “사람이 세상에 났다가 서울 구경 한번 해보세. 낙양 천리 멀고 먼 길을 나 혼자는 갈 수 없으니 나와 함께 가는 것이 어떠한가?” 하고 그날로 길을 떠나 며칠을 가서 한 역촌에 이르러 잠을 자게 되었다.
마침 그 근처에 황봉사라 하는 소경이 있었는데 집안 형편도 넉넉한 편이었다. 뺑덕어미가 음탕하여 서방질 일쑤 잘 한다는 소문이 이웃 마을에 자자하여 한 번 보기를 평소에 마음속으로 원하고 있던 터에, 뺑덕어미도 생각하기를, ‘차라리 황봉사를 따라가면 말년 신세는 편안하겠구나.’ 하고 심봉사 잠들기를 기다려 도망하여 달아나버렸다. 심봉사는 잠을 깨어 옆을 만져보니 뺑덕어미가 없으니 혼자 탄식하며, “여봐라, 뺑덕어미 날 버리고 어디 갔는가. 서울 천리 먼먼 길에 뉘와 함께 벗을 삼아 가리오.” 울다가 혼자 꾸짖어, “아서라 아서라, 이년! 공연히 그런 잡년을 정들였다가 살림만 날리고 도중에 낭패하니 이 모든 것이 나의 신수소관이라.”
사람 데리고 수작하듯 혼자 궁시렁거리다가 날이 밝으니 다시 떠나갔다. 더위는 심하고 땀은 흘러 등을 적시니, 시냇가에 의관과 봇짐을 벗어놓고 목욕을 하고 나와 보니 의관과 봇짐이 간 데 없었다. 강변을 두루 다니며 사면을 더듬더듬 더듬는 거동은 이리저리 더듬은들 어디 있을소냐. 심봉사가 오도가도 못하여 소리내어 울기를, “애고 애고, 서울 천리 멀고먼 길을 어찌 가리.”
한창 이리 울며 탄식할 제, 이때 무릉태수가 서울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이었다. 심봉사가 태수께 자기 신세를 아뢰니 태수가 불쌍히 여겨 의복 한 벌 내어주고, 노자돈과 담뱃대를 주시니, 심봉사 하직하고 황성으로 올라갈 제 대성통곡하며 나아갔다.
한 곳에 방아집이 있어 여러 여자들이 방아를 찧고 있었다. 심봉사가 더위를 식히려고 방앗집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여러 사람들이 보고, “저리 앉았지 말고 방아나 좀 찧어 주지.” 심봉사 대답하기를, “무엇이나 좀 줄라면 찧어주지.” “그러면 고기나 줄까?” 심봉사가 ‘하하-‘ 웃으며, “그것도 고기지. 주기가 쉬울라고?” “줄지 아니 줄지 어찌 아나. 방아나 찧고 보지.” “옳지, 그 말이 반허락이렸다.” 방아에 올라서서 ‘떨구덩 떨구덩’ 찧으면서 심봉사가 방아소리를 한다.
어유아 어유아 방아요. 이 방아가 뉘 방안가, 각댁 한님 가죽방안가.
떨구덩 떨구덩, 허첨허첨 찧은 방아 강태공의 고작 방아.
우리 성상 착하옵서 국태민안 하옵신데, 하물며 맹인 잔치 고금에 없었으니
우리도 태평성대에 방아소리나 하여보세. 어유아 방아요.
흥에 겨워 이렇게 해 놓으니, 여러 여종들이 듣고 ‘깔깔-‘ 웃으며, “애그, 봉사님 그게 무슨 소리오.” 그럭저럭 방아를 찧고 점심을 얻어먹고 봇짐에다 술을 넣어 지고 지팡막대를 쥐고 나서면서, “자 마누라들 그리들 하오. 잘 얻어먹고 갑네.” 심봉사가 거기서 하직하고, 성 안에 들어가니 억만 장안이 모두 다 소경들로 가득하여 서로 ‘딱딱’ 부딪쳐 다니기 어려웠다. 심봉사가 한 여인의 집에서 안씨맹인이라는 여인을 만나 하룻밤을 함께 지냈다.
17. 강선화(降仙花)로 귀환하는 심청
하루는 옥황상제께서 사해용왕에게 말씀을 전하시기를, “심소저 혼약할 기한이 가까우니, 인당수로 돌려보내어 좋은 때를 잃지 말게 하라.” 분부가 지엄하시니 사해용왕이 명을 듣고 심소저를 보내실 제, 큰 꽃송이에 넣고 두 시녀를 곁에서 모시게 하여 아침 저녁 먹을 것과 비단 보배를 많이 넣고 옥 화분에 고이 담아 인당수로 보내었다.
남경 갔던 뱃사람들이 억십만 금 이문을 내어 고국으로 돌아오다가 인당수에 다달아 배를 매고 제물을 깨끗이 차려 용왕에게 제를 지내고 심소저의 혼을 불러 위로하는데, 한 곳을 바라보니 한 송이 꽃봉이 너른 바다 가운데 둥덩실 떠 있으니 가까이 가서 보니 과연 심소저가 빠졌던 곳이어서 마음이 감동하여 꽃을 건져내어 놓고 보니, 크기가 수레바퀴처럼 생겼고 두세 사람이 넉넉히 앉을 만했다. “이 꽃은 세상에 없는 꽃이니 이상하고 고이하다.”
이때 송 천자는 황후가 별세하신 후 간택을 아니하시고, 화초를 구하여 상림원에다 채우고 기화요초 벗을 삼아 지내실 제, 남경 뱃사람이 대궐 안 소식을 듣고 인당수에서 얻은 꽃을 옥분에 옮겨 심어 대궐 문 밖에 이 뜻을 아뢰니, 천자께서 반기시어 그 꽃을 들여다가 황극전에 놓고 보니 빛이 찬란하여 해와 달이 빛을 내는 것 같고, 크기가 짝이 없고 향기가 특출하니 세상 꽃이 아니었다. 그 꽃 이름을 ‘강선화(降仙花)’라 하시고, 화단에 옮겨 놓으니 모란화 부용화가 다 아래 자리로 돌아가니, 매화 국화 봉선화는 모두 다 신하라 이를 지경이었다.
18. 황후가 된 심청
하루는 천자께서 당나라의 옛 일을 본받아 친히 달을 따라 화단을 배회하시는데, 밝은 달은 뜰에 가득하고 산들바람 부는 중에 문득 강선화 봉오리가 흔들리며 가만히 벌어지고 무슨 소리 나는 듯했다. 천자께서 몸을 숨겨 가만히 살펴보니 예쁜 용녀가 얼굴을 반만 들어 꽃봉이 밖으로 반만 내다보더니, 사람 자취 있음을 보고 도로 헤치고 들어갔다. 천자께서 가까이 가서 꽃봉이를 가만히 벌리고 보시니 한 처녀와 두 미인이 있기에 천자 반기며 물으시기를, “너희가 귀신이냐 사람이냐?”
천자 마음속으로 생각하시기를, ‘상제께옵서 좋은 인연을 보내신 것이로구나. 하늘이 내리신 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런 좋은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하시고 소저를 황후로 봉하여 혼인을 하기로 작정하시었다. 꽃봉오리 속에서 두 시녀가 소저를 부축하여 모셔 나오니 북두칠성에 좌우보필이 갈라서 있는 듯, 궁중이 휘황하여 바로 보기 어려웠다. 나라의 경사라, 온 나라에 사면령을 내리고, 남경 갔던 도선주를 특별히 무장태수로 임명하시었다.
심황후의 덕과 은혜가 지중하여 해마다 풍년이 들어 태평 세월을 다시 보니 태평성대가 되었다. 심황후는 부귀 극진하나 늘상 마음속에 숨은 근심이 아버지 생각뿐이었다. 가을 달은 밝아 산호 발에 비쳐 들고 귀뚜라미 슬피 울어 방 안에 흘러들어 무한한 심사를 점점이 불러낼 제, 높은 하늘 외로운 기러기 울면서 내려오니 황후께서 반가운 마음에 바라보며,
오느냐, 너 기러기. 거기 잠깐 머물러서 나의 한 말 들어 봐라.
도화동에 우리 아버지 편지를 매고 네 오느냐, 이별 3년에 소식을 못 들으니
내가 이제 편지를 써서 네게 전할 테니 부디부디 잘 전하여라.
하고 방 안에 들어가 상자를 얼른 열고 두루마리 종이 끌러 내어놓고 붓을 들고 편지를 쓰려 할 제, 눈물이 먼저 떨어지니 글자는 먹칠이 되고 말마디는 뒤바뀐다. “슬하를 떠나 온 지 해가 세 번 바뀌오니 아버님 그리워 쌓인 한이 바다같이 깊습니다. 불효녀 심청은 뱃사람을 따라갈 제, 하루 열두 시에 열두 번씩이나 죽고 싶었으나 틈을 얻지 못하여 대여섯 달을 물 위에서 자고, 마지막에는 인당수에 가서 제물로 빠졌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도우시고 용왕이 구하셔서 세상에 다시 나와 이 나라 천자의 황후가 되었습니다. 부귀영화는 다함이 없사오나, 간장에 맺힌 한 때문에 부귀에도 뜻이 없고 살기도 바라지 아니하고, 다만 바라기는 아버님 슬하에 다시 뵈온 후에 그날 죽사와도 한이 없겠습니다.” 날짜를 얼른 써서 가지고 나와보니 기러기는 간 데 없고 아득한 구름 밖에 은하수만 기울어졌다.
황제께서 내전에 들어오셔서 황후를 바라보시니, 두 눈 사이에 근심스러운 빛을 띄었으니 황제께서 물으셨다. “무슨 근심이 계시길래 눈물 흔적이 있는지요?” 황후 다시금 꿇어앉아 여쭙기를, “제가 사실은 용궁 사람이 아니오라 황주 도화동에 사는 맹인 심학규의 딸로서, 아비의 눈뜨기를 위하여 몸이 뱃사람에게 팔려 인당수 물에 제물로 빠졌었습니다.” 하고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히 여쭈니 황제께서 들으시고, “그러하시면 어찌 진작에 말씀을 못하시었소? 어렵지 않은 일이니 너무 근심치 마시오.” 하시고 황주로 관리를 보내어 심학규를 부원군으로 대우하여 모셔오라 하였더니, 황주자사가 장계를 올렸는데, “분명히 본주의 도화동에 맹인 심학규가 있었으나 1년 전에 떠난 뒤로 사는 곳을 알 수 없습니다.” 라고 되어 있었다.
19. 맹인 잔치 — 아버지를 찾아서
황후께서 크게 깨달으셔서 황제께 여쭈었다. “저에게 한 계책이 있사오니 그대로 하옵소서. 이 땅의 모든 백성이 다 임금의 신하이온데 백성 중에 불쌍한 사람은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늙은이 네 부류의 사람일 것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이 병든 사람이며, 병신 중에도 특히 맹인이오니 천하 맹인을 모두 모아 잔치를 하옵소서. 그러하면 그 가운데 혹시 저의 아버님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니, 이는 저의 소원일 뿐 아니오라 또한 나라에 화평한 일도 될 듯하오니 이 일이 어떠하온지요?” 천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크게 칭찬하시기를, “과연 여자 중의 요순이로소이다. 그렇게 하십시다.” 하시고 천하에 반포하시기를, “높은 관리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맹인이면 성명과 거주지를 기록하여 각 읍으로부터 기록해 올리도록 하라. 맹인 하나라도 명을 몰라 참례치 못한 자가 있으면 해당 도의 감사와 수령은 마땅히 중한 벌을 받을 것이다.” 명령을 내리시니 나라의 각도와 각읍이 놀라고 두려워 성화같이 시행하였다.
이때 심봉사는 뺑덕어미를 데리고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던 차에 하루는 서울에서 맹인잔치를 베푼다는 소문을 듣고 길을 떠났다. 안씨맹인이라는 여인을 만나 하룻밤을 함께 지내고, 그 다음날 대궐 문 밖에 다다르니 벌써 맹인잔치에 들라 하기에 궁궐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 심황후는 여러 날 동안 맹인잔치를 하면서 맹인 명부를 아무리 들여놓고 보아도 심씨맹인이 없으니 혼자 탄식하다가, 마지막 날에 뒷동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셔서 맹인잔치를 구경하시는데 풍악도 낭자하며 음식도 풍성했다. 잔치를 다 끝낸 뒤에 맹인 명부를 올리라 하여 의복 한 벌씩을 내어주시니, 맹인들이 모두 사례하는데 명단에 들지 못한 맹인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황후께서 보시고, “저 사람은 어떤 맹인이오.” 하고 상궁을 보내어 물으시니 심봉사가 겁을 내어, “저는 집이 없어 천지로 집을 삼고 사해로 밥을 부치어 떠돌아다니오니, 어느 고을에 산다고 할 수가 없어서 명단에도 들지 못하여 제발로 들어왔습니다.”
20. 부녀상봉과 개안 — 대단원
황후께서 반가워하시면서 가까이 들라 하시니 상궁이 명을 받아 심봉사의 손을 끌어 별전으로 들어갔다. 심봉사는 무슨 영문인 줄 모르고 겁을 내어 더듬거리는 걸음으로 별전에 들어가 계단 아래 섰는데, 황후께서 보시니 과연 아버지였다. 황후가 울며,
“아버지! 저 심청이옵니다!” 하고 달려 내려와 두 손을 잡으니, 심봉사가 깜짝 놀라, “심청이가? 네가 살아있느냐?” 하는 순간, 눈에서 무언가 확 트이는 느낌이 들더니, 심봉사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내가 보인다! 세상이 보인다!”
심봉사가 앞이 밝아져 황후를 바라보니, 과연 심청이가 황후가 되어 있었다. 부녀가 서로 붙들고 통곡하니 그 광경을 보는 이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천자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더욱 기뻐하시며 심학규를 부원군으로 봉하여 높이 우대하시고, 잔치에 모인 맹인들도 모두 눈이 떠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온 나라에 경사가 가득하고 백성들이 기뻐 환호하였다.
심황후는 부귀영화 속에서도 아버지를 극진히 모시며 효도를 다하였고, 천자와 함께 태평성대를 이루어 만민이 그 덕을 칭송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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